관객 900만명을 단숨에 돌파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태극기 휘날리며'는 장애 코드와 어머니 코드를 적절히 혼합해 전쟁의 비극을 극대화하고 있다. <강제규 필름>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감독)를 보고난 충격은 일상생활에 묻혀 곧 가셨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당시의 강렬함은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한다.

이 영화가 지난 6일 개봉 31일 만에 912만8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한민국 영화사상 가장 큰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영화사적으로 볼 때 굉장히 역동적인 역사적 현장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내가 받은 충격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통일세대 젊은이로서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감흥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통일은 빨리 이뤄져야하며 전쟁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개인적인 다짐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이러한 충격과 다짐은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강렬했다. 이 영화의 장점 중의 하나는 바로 그 단순함과 강렬함에 있는 것 같다.

주인공 진태(장동건)와 진석(원빈)의 어머니(이영란)는 언어장애인이다. 이 역할은 바로 연극배우이자 경희대 연극영화과 조교수이기도 한 이영란(50)씨가 맡았다. 이씨는 말 못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몸짓과 표정으로 마음껏 표현해냈다.

영화에서는 어머니의 언어장애에 대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진태가 전쟁이라는 구조적 억압아래 자아를 상실해가자 진석이 형에게 충고를 하는 장면이다.

“오늘 형 보면서 되게 낯설게 느껴졌어 괜한 걱정도 되구. 아무튼 생각이 많았어. 형한테 한 가지만 부탁할게. 아직도 무공훈장 생각하고 있으면 제발 버려! 두 번 다시 그런 무모한 생각 안했으면 좋겠어. 형은 하나밖에 없는 내 형이잖아.

우린 반드시 같이 살아서 돌아가야 돼! 형 알지? 나 7살 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도 열병으로 언어장애와서 말 못할 때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하지만 형이 있어서 견딜 수 있었어. 형. 내일 모레가 형 결혼하기로 한 날이야. 항상 영신이 누나 영국이 영자 영민이만 생각했으면 좋겠어.”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언어장애인 홀어머니에 두 아들이라는 설정은 전쟁의 고통과 아픔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두 아들이 강제로 징집되어 가고 있음에도 소리 한번 질러보지 못하는 어머니. 아들이 죽음의 골짜기를 건너 당신 앞에 살아서 돌아왔을 때도 통곡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소리 없는 울림은 더 큰 감동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표정과 움직임만으로도 어머니의 고통과 사랑은 충분히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장애 코드는 비극의 극대화를 위한 것이다. 이 영화도 그 법칙에 충실하고 있다. 장애와 비극을 동일시하는 수법은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효과가 강렬하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다면 진석과 어머니의 해후 장면이다. 떠나가는 징집열차에 갇힌 아들과 플랫폼에서 아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이별 장면은 극의 전개상 적절했다. 반면 두 아들중 하나만 살아 돌아와 어머니와 해후하는 장면은 아쉬움이 남았다.

큰 아들 진태 소식을 물어보지도 않는 어머니, 곧바로 물을 길러가는 아들. 어딘가 어색했다. 전장에서 진태와 진석의 이별이 강렬했듯 어머니와 진석의 해후는 좀더 강렬했으면 하는 개인적 아쉬움이다.

어쨌든 감독은 장애 코드와 어머니 코드를 적절히 혼합해 전쟁의 비극을 극대화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이러한 코드들이 가진 어머니와 두 아들의 비극을 다룬 가족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성공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외에도 극중에서 장애 코드는 곳곳에서 쓰이고 있다. 주인공인 진석 또한 다리에 총상을 입은 장애인이 되며, 같은 소대의 허중사는 오른팔이 잘린 장애인이 된다. 이외에도 수많은 이름 없는 캐릭터들이 장애인이 된다.

잘려나간 몸의 일부분은 전쟁의 고통이자 슬픔을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적어도 영화는 장애인 양산하는 전쟁은 다시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언어장애인 어머니를 비롯한 각종 장애 코드는 영화에서 비극을 극대화하기 위한 상투적이면서도 진부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상투성과 진부함이 감동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독자 여러분들의 또 다른 시각의 리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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