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링∼, 띠리링"

"여보세요?"

"혀어엉, 나∼아야"

무심결에 받은 전화 속에 음성은 쉽게 알아들을 수 없지만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뇌성마비 장애로 발음이 부정확한데다 술까지 흠뻑 취해 혀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그는 벌써 15년째 사귀고 있는 동생이다.

"으파하하∼ 혀어엉, 자∼아았 써"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치켜세우며 벽시계를 바라보니 2시 2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가 뱉어낸 언어들은 술에 찌들어 비틀거리며 춤을 추고 있지만 춤사위 사위마다 베어있는 송장같은 외로움 때문에 화도 내지 못하고 허리를 곧추 세운다.

그는 상당히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완고한 집안 탓으로 초등학교 문턱도 넘지 못하고 집안의 뒷방에서 성장해 왔고 벌써 불혹의 나이를 넘겼음에도 연애 한번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의 갇힌 세계를 토대로 시집을 3권이나 세상 밖으로 쏟아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혀∼엉! 시×, 나-- 빠바-빨리 자-잔-장가 안 보내줘?"

술 힘에 의지해 천근만근이 되었을법한 수화기를 들었을 그 동생은 나한테 응석을 부리는 단골 메뉴중 언제나 1번이다.

"야 임마! 니가 구해. 장애인단체에 여기 저기 참석해 보고 자꾸 왔다갔다 해야 니 맘에 든 아가씨도 발견하기도 하고. 니 좋다고 따라 올 아가씨도 있을 거 아니야. 텔레비젼 보면 너보다 훨씬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결혼 잘만 하더라. 니가 안 돌아다녀서 그런 것이라니까"

나도 항상 똑 같은 대답을 하면서 책임회피를 해 보지만 마음 한 켠에는 맷돌을 올려놓은 듯 답답하기 그지없다.

"야 시끼야! 직업이 있어야 중매를 해도 할 거 아냐? 직업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또 니가 성한 사람 같으면 뭐라도 붙여보지. 여자한테 뭐라고 하면서 너를 소개 하냐? 거지 시인? 너도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냐?"

"그러니까 형한테 부탁하는거 아냐? ×팔"

그는 말 한마디를 뱉어내려면 목구멍에서 두 세번은 걸려 자빠져야 나오는데도 '×팔'은 꼭 추임새 마냥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전화기를 잡은지 이미 1시간을 넘어가자 오히려 거슴츠레했던 나의 두 눈에 힘이 들어가고 음성이 커지기 시작하자 옆에서 자고 있던 집사람이 상황이 파악되었던지 베개를 들고 아이들 방으로 건너가 버린다.

시를 좋아하던 그는 서점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 어엿한 서점주인이라면 결혼도 할 수 있고 본인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새로운 활력소가 될 듯 하여 나는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지원되고 있는 창업지원을 요청하라고 몇 번이나 설득했지만 그의 집에서 반대해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사실, 그가 사람 사는 세상 속으로 탈출하기 위해서는 가족으로부터 지난 세월의 배제와 차별의 사슬을 끊고 도망이라도 쳐야 한다. 그래서 비록 혼자서는 밥한 술 떠먹지 못하지만 이 사회와 따로 격리되지 않고 시민의 권리를 가진 당당한 국민의 한 주체로서 독립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아감이 당연한 것이다.

이는 그가 자립을 의미하는 것이며 곧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을 해야만 진정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가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중증장애인의 인권적인 접근으로 자립생활을 말한다. 지난 2003년의 장애인계는 중증장애인들이 자립과 독립을 외치며 장애인운동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음을 쉽게 판독해 낼 수 있다.

이처럼 최근 급속도로 번져가고 있는 ‘자립생활’과 ‘장애인당사자주의’ 등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중증장애인들의 권리찾기 운동은 2003년을 기점으로 장애인운동의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도 중증장애인이 한국 장애인 운동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중증장애인들의 독립선언문'이 귓가에 쟁쟁하다.

“이제 우리 중증장애인은 이 정부와 사회가 중증장애인들에게 가해온 지난 세월의 배제와 차별을 말하려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인간적인 모순들을 당당하게 투쟁으로 타도할 것임을 선언한다. 그리함으로 중증장애인들도 이 사회와 따로 격리되지 않고 시민의 권리를 가진 당당한 한 인격의 주체로서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해 나갈 것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