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성교육 교재를 만들고자 하는데, 그들의 정신연령이 4~6세 아동의 수준이므로 그들에게 가르칠 성교육 교재는 아이들의 이해 수준에 맞추어 제작하면 되지 않겠냐는 질문의 메일을 필자가 받은 적이 있다.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을 적어 보내지 않는 대신 직접 만나 얘기 하자는 메일을 보냈다. 필자가 그 질문에 간단히 “네” 혹은 “아니오”라고 답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발달장애인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람들에게 필자의 짧은 답변이 잘못 오해를 일으킬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정신연령이 낮은 발달장애인들이 4~6세의 아동과 같다”는 생각을 흔히 갖고 있다. 또 다른 우려는 그 교재 집필자들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나 경험적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데 있었다.

필자에게 발달장애인 성교육에 관해 자문을 듣고자 한 교재 집필자들은 의욕적인 똑똑한 대학생들이었다. 발달장애인들의 성에 대한 이 젊은이들의 관심은 도가니 영화를 본 후에 생겼다.

그 이후 그들은 장애인 성폭력에 관한 기사들을 더 많이 찾아보면서 발달장애인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이처럼 영화나 뉴스와 같은 매체를 통해서였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일반 대중이 관심을 갖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매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매체들에서 표현되는 발달장애인과 그들의 성은 어떠한가? 그리고 그런 내용만을 접한 대중들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되겠는가?

성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여겨지는 발달장애인을 도와줄 성교육 교재를 제작하고자 하는 열정과 순수성을 지닌 이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 그들은 다양한 발달장애인들을 직접 만나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다양한 기능과 개성을 지닌 발달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알아야 하고 또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 학생들은 파악해 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 중 하나는 발달장애라는 범주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할 거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만큼 잘못된 통념도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발달장애인들에게 딱 맞는 성교육 교재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모든 발달장애인에게 딱 맞는 하나의 교재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교재 집필자들이 그 교재를 통해 배워야 할 사람들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어떻게 그들에게 효과적인 교재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이다.

먼저 사람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람들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을 만나야 한다! 그냥 만나는 게 아니고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접촉하고 교감해야 한다. 필자는 이것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에 있어 가장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재 제작에서도 역시 마찬가지 이다.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책을 지어내는 집필자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어떤 책을 만드는 사람은 그 책에 자신의 철학이나 신념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그 책은 그것을 읽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성교육 교재에는 집필자의 철학과 신념이 담겨 있어야 한다. 집필자는 그 교재가 발달장애인을 어디로 이끌어 가기를 바라는가? 왜 사람들은 교재를 통해 그런 저런 내용을 배워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교재 안에 담겨져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집필자가 발달장애인을 제대로 알지 않고서는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한 비전을 갖지 않고서는 그들을 위한 제대로 된 교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발달장애인들은 지능이 4~6세 된 아이들과 절대 같을 수가 없다. 발달장애인들의 생활한 경험, 그들의 기대와 희망, 그리고 그들의 슬픔과 좌절 등이 그들 삶의 현장에서 그들이 성적 존재로 살아오는데 어떠한 영향을 주어왔는지를 파악해 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이 한 인간으로서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인지에 대해 우리가 희망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현재의 모습과 희망하는 모습 간의 격차점이 발달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성교육 교재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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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의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20년 동안 조기교육실, 그룹홈, 생활시설, 요양시설, 직업재활시설 등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일하였다. 특수교육에서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주제로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사회복지에서도 석·박사학위를 지니고 있다. 9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발달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해 오고 있고, 부모교육과 종사자교육, 교사교육 등을 해 오고 있다.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에서 상·하반기에 걸쳐 발달장애인성교육전문가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숭실대학교, 단국대학교, 숭실사이버대학교 등의 외래교수로서 사회복지와 특수교육 관련 과목을 강의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서는 발달장애인의 성과 성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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