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첼로 뉴욕 1968년 5월.

이 바쁜 세상에 한국사회에서 예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호사스런 언어인가를 눈치 챘거든요. 그래서 이런 소재가 소통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야기를 늘어놔야 되다니요. 아, 그렇지만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예술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건 충분히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미술하나만 말하더라도 그리기, 새기기, 조각, 사진, 설치, 퍼포먼스 이런 것이 융합된 미술을 하는 세상을 살면서 이 분야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도 서로 소통이 안 되면 골치 아퍼한다니까요.

요즘 백남준을 다시 꺼내 읽으면서 플럭서즈 운동 당시 많은 예술동지들을 만났고 그 예술적 동지들은 이젠 다들 유명 미술인이 되어 자신도 모르는 권력에 오르게 되었더군요. 스타 예술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권력을 갖게 되는 거지요.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권력을 휘두를 줄은 모른답니다. 자연발생이라는 거지요. 아,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요즘 보니 백남준은 우리와 정서적으로 멀어 난감하거나 난해하다는 분들이 대세지요. 백남준을 다시 꺼내 읽다보니 그 당시에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가 재미있더군요.

저는 행위예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중 기존의 예술이 지배해온 개념에 대해 그 기존의 전통에서 물려주는 고상한 개념을 깨는 일에 더욱 비상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아 물론 그런 것이 애시 당초 생기는 일은 아니지요. 누구든지 기초를 견실히 다지다가 너무 긴 세월 고착된 것을 보면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다가 ‘왜 꼭 그래야만 돼?’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 기존의 양식을 깨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해 지는 거지요.

필획만 하더라도 5가지 서체에 율동적이고 다이내믹한 게 있는가 하면 조형적인 게 혼합되어 있지요. 마치 음악처럼 움직이는가 하면 입체로 새겨 넣고 그 틀 안에서 조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샬로트 무어만과 백남준의 ‘생상스를 위한 변주곡’ 퍼포먼스.

백남준이 케네디공항에 도착하였을 때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샬로트 무어만이었습니다. 그녀는 줄리어드 음악원을 나와 클리블랜드와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협연한 정통 클래식 첼로 연주자였는데 그녀는 존 케이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지요.암튼, 존 케이지에 의한 영향을 받고 실험음악으로 선회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살다보면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는데 백남준과 샬로트 무어만과의 만남은 비디오예술과 퍼포먼스, 음악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게 되었고 가장 중요한 미국 정착을 하게 된 동기도 샬로트 무어만이었습니다.

샬로트 무어만은 64년 6월 뉴욕에서 제2회 뉴욕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무어만은 이 페스티벌에 ‘괴짜들’이란 공연을 할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이 '괴짜들'을 작곡한 '슈톡하우젠'은 작곡을 할 때부터 백남준을 염두에 두고 작곡을 했답니다.

이 공연을 해낼 사람은 백남준밖에 없다고 하니, 공연 날자는 다가오고 '무어만'은 속이 타게 되었지요. 다급해진 무어만은 결국 케네디 공항으로 백남준을 마중 나가게 되고 거절하지 못하게끔 무어만은 공연 이야기를 줄줄이 한보따리 풀었다나요. 그래서 백남준은 뉴욕에 머무는 동안 별 일도 없고 해서 이 미인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답니다. 결국 백남준은 무어만의 마음에 쏙 들도록 공연을 해 주었고요.

당시 뉴욕미술계는 팝아트의 물결로 뜨거웠고 이것을 백남준 특유의 통찰력으로 응시하면서 활기찬 뉴욕의 분위기에 매료된 백남준은 새로운 작품을 여기서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거지요. 그런데 이 미인 아방가르드 연주가 '샬로트 무어만'과 '백남준'에 대해 두 사람의 개인적 관계를 포함해 어떻게 그런 환상적인 예술적 동반자가 되었는지 이런 것들이 궁금하기 짝이 없는 거지요.

어느 날 백남준은 무어만에게 음악과 섹스를 연결시킬 수 있는 퍼포먼스를 제안하게 되는데요..늘 백남준의 마음속에 그림과 문학에서는 자유롭게 섹스가 주제가 되는데 유독 음악에서 그것이 금기시 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무어만은 흔쾌히 응하였고 백남준이 작곡한 ‘생상스를 위한 변주곡’에서 무어만은 잠옷차림으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연주를 하면서 속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행위, 알몸을 투명 플라스틱으로 감싸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처음으로 음악도 섹스를 주제로 퍼포먼스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백남준은 일생을 통해 단 한번 정장을 차려입은 67년 2월, 무어만과 공연한 ‘오페라 섹스 일렉트로니크’는 음악과 섹스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였으며 이 퍼포먼스는 많은 화제를 뿌렸습니다. 무어만은 바늘이 달린 비키니를 입고 첼로를 연주했고 이 공연의 3장 ‘아리아’에서는 하반신을 벗은 채 머리에는 헬멧을, 상체에는 축구선수 유니폼을 입었고. 4장에서는 완전히 옷을 벗고 첼로 연주를 하였습니다.

그 이후 아시다시피 외설적 공연이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생겼는데요.. 당시 뉴욕 예술계는 예술과 외설시비로 옥신각신했고 그것을 차별하는, 예술적 표현자유를 두고 일련의 사람들은 이들의 재판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고 합니다. 넬슨 록펠러 주지사는 외설과 예술의 표현자유는 다르다는 최종판결을 하게 되어 당시 백남준과 샬로트 무어만은 그 분야의 영웅이 되기도 했지요.

백남준과 샬로트 무어만의 오페라 섹스 일렉토니크 1967

샬로트 무어만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나는 이 작업을 즐겼다. 나는 전갈좌이고 물이기 때문이다."

March.26.06 JeeJeon

지전 김종순은 태어나 첫 번째 생일이 되기 바로 전 소아마비를 앓았다. 어릴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지전은 몇 번의 그룹전을 하고 난 후, 그냥 그림 그리는 일이 심심해져서 첫 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1000호의 화선지위에 올라타고 앉아 음악을 그리는 일(퍼포먼스)을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지전의 화두는 '청각적 시각, 촉각적 시각'이다. 그녀는 음악을 그리는 일은 새로운 방식의 일이어서 일상에서 거의 유배된 생활 같아 가끔은 마음이 저릴 때도 있지만 많은 예술가들의 삶을 쓰면서 위로 받게 되었다고. 최소한 평등한 인간의 모습을 성실하게 기록함으로써 이웃과 소통하며 그녀가 소망하는 평등한 세상이 비록 희망뿐이더라도 그 표현의 여러 기록중 하나이고 싶기 때문이다. 18회, 19회 미협에서(국전) 2번 입선. 이화여대 경영연구소 蘭谷書會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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