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 스님!

봄을 맞고 있는 청량사 심우실 창가에 곱게 피어날 노란 생강나무꽃과 차 한잔 내려주시던 스님의 맑은 미소를 그려봅니다.

구름으로 산문을 지은 청량사의 풍경소리와 바람소리,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초롱초롱한 별빛. 폭포소리보다 장엄한 듯하다가 고요하게 노을 진 산중으로 퍼져가는 법고소리가 하루도 같지 않지 않음은 나의 마음이 늘 변화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음악가 바흐는 자신의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음악은 그저 표현되어 있는 음표(音表)에 따라 들려주는 소리일 뿐이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짧은 생애 속에서 치열한 음악정신을 가졌던 바흐는 인위적인 음악적 소리보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더 좋아하고 이미 그것을 깨우쳤었기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봄의 새싹이 돋고 꽃망울 터지는 소리, 한 여름의 소나기 소리, 깊은 가을의 낙엽 떨어지는 소리, 눈 오는 겨울밤에 창문을 흔드는 바람소리 등등 이런 자연의 소리를 깊이 인지하고 그 근원을 찾아 음악적 삶을 마무리 했던 것이었을까요? 마치 그것은 덕 높으신 큰스님이 열반에 드실 때에 남기시는 열반송과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스님께서는 찾아가는 사회복지 실천에 바흐의 음악정신에 못지않은 혼을 불어넣고 계신 듯합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그리고 (사)이웃을돕는사람들 등에서 노인,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등 경제적ㆍ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해 불교계의 인적ㆍ물적 자원을 개발 활용하고, 우리 모두가 “자비” “나눔”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살피고자 하고, 좋은 벗 풍경소리를 통해 불교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맑고 영롱한 아이들의 음성으로 노래를 전하는 일에도 전념하시는 모습은 항상 작은 일에도 불평하고 힘들어하는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최근 불교사회복지계에도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지난 2월 불교사회복지 정책 및 실천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교계 사회복지시설의 현황과 실태를 조사하는 한편 모범사례 발굴, 학술포럼 개최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불교사회복지의 독자성과 전문성을 재정립해나갈 불교사회복지연구소가 출범하고 창립 15주년을 맞은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과 (사)이웃을돕는사람들이 새롭게 출범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조계종이 작년 12월에는 불교사회복지진흥법 입법 예고하고 불교 사회복지시설 운영과 효율적인 관리·감독 강화를 위한 법제화 방안을 논의하는 간담회를 열었다는 소식은 불교사회복지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저의 기우를 말끔히 씻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장애인들이 사찰에 가기엔 접근권이 어려운 점도 많습니다. 윤회 사상에 기초한 교리도 그렇고 사찰이 대부분 산 중에 위치하여 편의시설이 많이 부족합니다. 법당에 들어가는 것부터 화장실에까지 장애인들이 접근하기는 산길을 걸어가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장애불자가 타 종교에 비하여 적은 것도 열약한 환경 때문인 듯 합니다.

수년 전 스님께서 가까운 곳에 사찰이 없어 절에 갈 수 없는 농촌의 불자들을 위하여 마을회관을 빌어 출장법회를 보시고 길이 멀어 법회에 참석치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경운기를 직접 몰고 집집마다 방문하시며 포교하시던 일을 상기해봅니다.

절에 와서 법회를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스님의 뜻이 장애인포교에도 전달되고 있으니 열약한 환경들은 차츰 개선되어 가겠지요.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이웃을돕는사람들이 새로운 날개를 힘차게 펴던 날 스님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 속에서 불교시민운동으로서의 목소리를 높여간다면 모두가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고 “진정한 보살행을 통해 모두가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다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하신 말씀을 새깁니다.

한편으로 살랑 살랑 봄바람과 함께 들에서, 산에서 연두 빛 잔치를 벌이고 있던 봄날, 마음 따라 떠났던 여행길에서 반가운 손님을 맞듯이 스님께서 내려주신 차 한 잔, 그렇게 청량사와 맺은 인연이 다시금 소중해집니다.

살면서 어려움과 역경을 자기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 때가 많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지은 허물임을 모르고 깊이 참회하지 못하는 제가 지금 뇌성마비장애인들의 어려움을 가셔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돌이켜 봅니다.

거대하고, 빽빽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열두 봉우리가 연꽃처럼 둘러쳐진 청량산의 연화봉 기슭에 꽃술처럼 자리 잡은 청량사가 일상에서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주고, 가슴 따뜻한 도반이 되어주었듯이 저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는 서원을 세워봅니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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