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네째주의 남산의 노을.

J 선생님, 2005년이 3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요사이는 어느 곳을 가든지 낙조는 참 아름답습니다. 혹자는 요즈음을 낙조의 계절이라 말하지만 과학적 근거를 따져보면 12월말의 낙조라 해서 다른 계절의 낙조보다 특별히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겨울 노을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한해의 끝자락에 서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오후에는 일몰을 카메라 렌즈에 가득히 담듯이 지난 한 해의 아쉬움과 며칠 후면 밝아오는 새해에 대한 희망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여 새로 단장한 남산의 N서울타워를 다녀왔습니다.

몹시 부는 바람에 대비하여 옷을 든든히 챙겨 입고, 카메라까지 챙겨들고 도착한 N서울타워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려 나들이 나온 가족들, 향수에 젖은 듯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머리 허연 노부부, 애정표현을 거리낌없이 하는 젊은 연인 등 남녀노소 구분 없이 붐볐었지요.

N서울타워에서 바라보는 한강 건너에서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려 하였다.

서울의 노을이 질 무렵 풍경부터 화려한 야경까지 렌즈에 담겠다고 지는 해를 배경으로 카메라 손질을 하는 친구의 모습도 참 좋아 보였습니다.

친구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노을지는 순간은 어떤 한 생명이 태어나 존재하다가 수명을 다해 사리지는 순간과 같기에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고 연민을 느끼게 한다" 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친구의 말처럼 우리의 모든 마음, 고통이나 슬픔, 행복마저도 유한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아무리 깊은 사랑과 만남이라도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하고 무엇이 머물던 자리에는 욕심과 회한, 아쉬움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는 꽃잎, 마른 낙엽, 스산하게 부는 바람, 붉게 지는 노을이 우리 가슴을 울리는 것은 영원할 수 없는 우리 자신에 대한 아쉬움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모든 상념들 가운데서 지는 해야말로 연말을 맞는 마음과 존재의 유한함에 대해 가장 깊게 느끼게 합니다.

2005년 12월의 서울의 야경.

친구는 지는 노을 속에 지우고 싶은 기억 한 가지를 털어 놓았습니다. 프리랜서로 뛰고 있는 어느 사보에 미담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 차 어떤 사회복지 기관을 방문하였다가 장애인과 장애인간의 편견, 조직 구성원간의 상하, 상호간에 선을 그어놓고 기준을 삼는 편견이 크게 존재하고 있음에 무척 놀랬던 일은 정말 잊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감사한 일도 많은데 하필이면 아쉬웠던 일을 먼저 생각하느냐고 되물으면서도 나 역시 그런 것을 느끼고 있으면서 무감각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년 전에 선생님께서 들려주셨던 뇌성마비제자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지인을 통해 조그만 법인체에 취업을 시킨 제자가 언어장애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이나 부당함, 똑같은 장애를 가진 상사가 더 제자를 이해 못하고 배제시키기도 하고, 가끔은 제자의 의사나 한 일이 똑바로 전달되지도 않고, 똑바로 평가되지 않아 가슴이 아팠다고 하신 말씀 기억하시는지요? 그리고 뇌성마비인들은 어떤 일에든 주눅들지 않고 편하게 말하고 일하도록 질책보다는 칭찬이 앞서야 하고, 이해와 기다림이 필요한데, 그들 곁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조차 그런 배려가 부족하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하신 그 말씀은 '나는 과연 어떠한가' 하고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한해의 끝자락에서 노을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만약에 일몰이 내일이 없는 마지막이라면 일몰은 그리 아름답다고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과거를 돌아보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 낙조를 새로움으로 채우기 위하여 낡은 것을 버리는 숭고한 의식이라 말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므로 낙조를 찾는 사람들의 가슴은 그만큼 커다란 새해 소망과 포부를 품고 있으리라 헤아려봅니다.

낙조가 아니더라도 조용히 일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묵은 해를 털어내고 새로운 희망과 기대로 찰 자리를 비워두어야 하겠습니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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