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모여서 끼리끼리 뭔가는 도모(?)하는 사람들, 면세점에서 기념품을 사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비디오를 보기도 했다. 필자는 창가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데 안내 방송이 나왔다. 5시에 어어도를 지날 예정이니 선상에 나와서 구경하라는 것이었다. 그냥 무심코 넘어 갔다가 이어도라니? 귀를 의심했다. 에이 마라도라면 몰라도 이어도가 어디에 있다고 이어도를 보라니 잘못 들었겠지.

귀빈식당에서 NGO평가회의.

이어서 NGO사절단의 평가회의가 있다며 8층 귀빈식당으로 모이라고 했다. 운영위원회에서는 NGO 사절단으로서 9박 10일 동안 동북아 평화를 위해 배를 타고 3국을 다녔으니, 그 기간동안 이루어진 성과를 바탕으로 부산항에 입항하면 '평화 메시지'라도 전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몇 사람의 발표가 있었고 운영위원회에 일임하기로 했다.

그러자 이어도 옆을 지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챙겨 선상으로 달려 올라갔다. '정말 이어도가 보여요.' 필자도 반신반의하며 사람들 틈에 섞여 선상으로 나갔다. '저게 이어도야?' 평가회의를 하는 동안 배는 이미 이어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어도는 우리 나라에서 설치한 해양과학기지라는 것이다. 얼기설기 철구조물로 보이는 멀어져가는 이어도를 보면서 필자의 무식함을 한탄했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이어도'는 제주도 사람들에게 전설로 전해지는 환상의 섬이었다. 오래 전 읽었던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가 생각났다. 피안의 이상향이란 현실의 고난과 갈등에서 해방된 지극히 아름답고 행복스런 복락과 구원의 땅이다. 그러나 제주도 뱃사람들에게 이어도는 죽음의 섬이기도 하다.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어도로 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 나라 최남단 제주도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 떨어진 곳에 수중 암초인 파랑도가 있다. 파고가 10m 이상이 되면 파랑도를 볼 수 있다는데 파랑도를 본 사람이라면 살아 돌아오기 어려웠을 테고 만약 살아서 돌아 왔다면 맑은 날 다시 파랑도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해양관계자들은 이 파랑도를 이어도라고 보았던 것이다.

해양수산부는 파랑도 즉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건설을 추진하여 해양연구원이 사업을 맡았고 현대중공업이 1995년에 착공하여 2003년 6월 10일 완공하였는데 총 사업비는 212억원이 들었다. 이어도의 위치는 북위 32.07도, 동경 125.10도이며, 총면적은 400여 평이고 높이는 수중 암반으로부터 76m(수상 36m)이다. 2층 구조물로 되어 있는데 관측탑과 송신탑 헬리콥터 이착륙장 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어도가 과학기지로 자리잡은 가장 큰 이유는 태풍이 제주도에 상륙하기 10시간 전에 미리 태풍의 진로와 세기, 강수량을 측정해 전달해 준다는 것이다. 이어도에는 온도계 풍향계를 비롯하여 초음파파고계 대기자동분석기 등이 있어 이곳에서 관측한 자료는 인공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해양수산부나 기상청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선상에서의 마지막 밤.

저녁부터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선상에서는 평화사절단의 마지막 마무리를 위한 '아시아의 평화와 미래의 밤'을 위한 행사가 열렸다. 평화사절단에는 문화사절단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했다. 국악팀으로 라운아라, 사물놀이의 남산놀이마당, 퓨전클래식의 화이트폭스, 한국무용의 하연화무용단, 힙합그룹 스텝, 노래패 발해를꿈구며, 마술팀으로 매직포유가 참여를 했는데 마술만 빼고 문화사절단 전원이 공연을 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으나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등 마지막 밤을 아쉬워했다.

저 멀리서 어둠 속에서 하나둘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불빛은 점점 많아졌다. 마라도 그리고 근처의 어선들이었다.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았음에도 배가 나아갈수록 환하게 불을 밝힌 오징어잡이 배들은 점점 많아졌다. 첫날밤 독도를 지날 무렵에도 엄청난 오징엇배를 만났는데 제주도 부근에도 오징어가 잡히는 모양이다. 언젠가 오징어잡이 배를 탔던 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높은 파도 속에서도 밤을 세워 오징어를 잡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목이 움츠러들었다.

부산항 컨테이너 부두.

마라도를 지나자 휴대폰이 가능해져 몇 군데 전화를 했다. 떠날 때 휴대폰 로밍을 하지 않았기에 휴대폰 통화가능권은 독도부근 그리고 마라도를 지나자 가능했고, 마라도를 한참 지나자 부산근해에 이를 때까지 휴대폰은 다시 불통이었다.

휴게실에는 여기저기서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는 술자리가 벌어졌다. 부산장총, 심장장애인협회 등 우리도 전을 펴고 이번 뱃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시 아침이 오고 선상에 올라가니 멀리 육지가 보였다. 밤사이에 바람도 잠을 잤는지 하늘은 맑고 바다는 고요했다. 아침을 먹고 각자 짐을 챙겼다. 11시쯤 부산항에 닿을 것이라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 돌아간다는 설레임으로 선상에서 가을햇살을 받으며 서성거렸다. 고작 9박 10일인데. 뱃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해파리가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부산이 가까워지자 바다 속은 온통 해파리천지였다.

오륙도.

멀리 보이는 육지에서는 곳곳에 고층 아파트가 늘어서 있었다. 저기가 어디쯤일까. 남해 통영 거제 마산 진해 그리고 드디어 부산항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바라보는 부산항은 온통 주황색이었는데 나중에 가까이서 보니 컨테이너 크레인이었다.

이어서 오륙도가 보이고 부산시 전경이 들어왔다. 오륙도는 부산의 관문으로 5개의 돌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밀물 때가 되어 물이 차 오르면 제일 왼쪽의 섬이 두개로 갈라진다.

부산항에서 바라본 코모도호텔(중앙)과 충혼탑(우).

12시쯤 부산항에 도착했다. 모두가 내릴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데 트랩(trap)을 설치하는데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처음 부산항을 출항할 때 화물칸의 '개구멍' 같은 곳으로 들어 갔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그 개구멍을 이용했고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하이에서 처음으로 외부 트랩을 이용했는데 그 트랩은 우리 배 즉 대룡페리호에 있는 것을 부두의 크레인으로 설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산항에 트랩을 옮길 크레인이 마땅치가 않은 모양이었다.

시간이 점점 지체되자 여기저기서 휴대폰이 쉴새없이 울렸다. 부두에 마중 나온 사람들이 기다리다 지친 아우성이었다. 다시 안내방송이 나왔다. 8층 식당에 점심식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하는 수없이 식당으로 올라가니 닭죽이 나왔다. 점심은 예정에 없었는데 웬 닭죽이람, 우리가 내리고 난 다음에 승무원들이 먹으려고 준비한 것이란다.

부산항에서 하선모습.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배에서 내릴 수 있었는데 우리가 내린 곳은 컨테이너가 빽빼하게 들어 선 화물 하역부두였고 입국장과 멀어서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버스에서 내려 입국장으로 가는 곳도 별로 깨끗하지 못했다. 우리팀이 거의 마지막 순서였는데 입국심사를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입국 심사대가 비어 있음에도 이렇게 기다리게 하다니. '블라디보스토크 하나도 욕할 것 없네' 여기저기서 볼멘소리들이 터져 나오자 비어 있는 심사대에서도 심사를 시작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입국심사가 늦어진 것은 관계자들이 286(?)쯤 되는 컴퓨터로 여권 내용을 일일이 기입해야 했고, 아침 8시부터 입국수속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했는데 기다리는 것은 우리 사정이고 그들은 9시에야 업무를 시작했고 점심시간이라고 가버렸던 것이다.

평화사절단 입항식.

후쿠오카 상하이 그리고 부산에서는 여권을 스캐너로 바로 읽을 수 있어 심사대를 통과하는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국장을 나오면서 한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그래도 부산이 국제부두이고 더구나 부산 APEC을 앞두고 새단장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입국장을 나오니 입항식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평화사절단 송기인 대표와 부산시 김구현 행정부시장이 인사를 하고 '평화사절단은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물론 세계 평화의 실현을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 할 것을 다짐한다'는 평화실천 선언문이 낭독되었다.

이로써 11월 1일부터 11월 10일까지 9박 10일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일본의 후쿠오카, 중국의 상하이 등 동북아 3개국을 돌아보는 '평화의 희망의 뱃길'의 공식행사는 모두 끝이 났다.

필자(좌) 부산장총의 김광자 과장(중앙)과 전현숙 부장(우).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낯선 곳에서의 어려움이 함께 따르기 마련이다. 영어로 여행이 travel이고 travail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고통, 산고라는 의미이다. 우리말에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는데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장애인복지일을 하다보니 이번 '평화사절단'이 좋은 프로그램의 멋진 여행이었지만 비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장애인의 여행은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에 기회가 되면 시설이나 일정 등을 장애인들에게 맞추어 여행 해 볼 수 있었으면 싶다. '집 떠나면 고생'을 각오하는 장애인 모험가들로.

이번 평화사절단은 광복60주년을 기념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 그리고 부차적으로 크루즈 사업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기획이었다는데 처음의 목적과 취지에 얼마나 부합하였는가는 주최측이 평가할 일이고, 함께 했던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는 엄두도 못 낼 프로그램으로 동북아 3국을 돌아 볼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광복 60주년 기념사업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집 떠나서 한배를 타고 9박 10일동안 생사를 같이 한 평화사절단 여러분 수고하고 고생하였습니다. 제각기 개성이 독특한 400여명을 인솔하고 평화사절단을 무사히 이끌어주신 대표단을 비롯하여 운영위원회 그리고 상황실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400여명의 건강을 보살펴 주신 김종삼 한의원의 김종삼, 김재홍 두분 선생님, 고신대복음병원의 김영식 선생님과 변성민 간호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아참,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거의 날마다 공연이 있었는데 사회를 맡아 수고해 주신 한상훈, 오대웅 두분 MC님 정말 멋진 솜씨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실습생으로 참여한 대학생 승무원 여러분께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끝으로 평화사절단 주마간산기를 쓰는데 좋은 사진을 제공해 주신 부산일보 이현우 기자님, 부산심장장애인협회 송순조 사무처장님, 국제장애인협의회 박영희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끝-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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