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아톤에서 초원 엄마 경숙 역할을 맡아던 영화배우 김미숙씨.

나는 영화나 그림이나 어떤 이미지를 본후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어느날 갑자기 그 이미지가 떠오르고 그것이 쓰고 싶어진다. 말아톤도 그런 경우이다.

말아톤은 초원이가 주인공이지만 또 한사람의 주인공 초원의 어머니 경숙이도 있다. 초원이와 경숙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대단히 자연스럽고도 한국적 정서로보면 운명적이다.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없는 몸 불편한 자식과 어머니의 관계. 감독은 경숙을 참 대단한 어머니로 그려내고 있다.

나는 종종 '내가 경숙이었다면 초원이를 어떻게 길렀을까' 아니 어쩌면 '어머니는 나를 어떻게 기르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곤한다. 우리의 가치관이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것이 마치 전쟁을 치르듯이 길러야 되는 세상인지라 말아톤은 그래서 초원이와 경숙을 실제의 대상보다 더욱 아름답게 그려지고 보여졌는지 모르겠다.

경숙이 한때 잠시 얼룩말이 있는 동물원에 데리고가서 초원이를 버리려고 했다. 초원이가 동물원에 갔던 것을 기억해 내는 것을 본 후 경숙은 그것을 몹시 가슴 아파하며 자신을 자책한다. 잠시 잘못 생각할 수도 있을 생각뿐인 것을. 나(너)는 경숙의 입장에서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내가 경숙이라면 초원이를 좀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잘 안되는 일인데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길러야 된다는 공식은 없잖아. 경숙은 초원이를 어떻게 키워야하나 말고할 겨를도 없이 초원이와 같이 던져진 채 온통 초원이를 중심으로, 초원이..초원이..나 같으면 그렇게 못살 거 같아. 그럼 어떻게 기를 건데?

있는 그대로..지켜보면서 신경은 써야 되겠지. 절대로 아이의 성격만은 밝게 키우고 싶다. 어떻게하면 밝은건데? 음..그건말이지.. 음..암튼 절대로 남편도 둘째도 잃어버리지않고 그렇게 살거다 - 모두가 행복해야 아이도 점점 닫힌 마음이 열려 대상을 인식할거구,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말도 안돼..네가 어떻게 안다구, 초원이를 어떻게 키웠는데..

"초원이가 저보다 하루 먼저 죽는게 소원이예요."

"200시간이 아니라 20년을 벌 받으며 사는 기분을 알아요?"

경숙의 이런 말이 나는 싫다. 요즘도 이런 말하는 엄마가 있다는게 너무 싫다. 초원이가 잘 자라 주어 다행이고 초원이는 엄마가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을거다. 정말 그럴까..

나는 경숙(어머니)이가 젤로 마음에 밟힌다.

내 어머니, 우리 어머니..나 어떻게 키웠어요?

-------------------

영화는 참 깔끔하다. 영화 말미에 초원이 어머니는 초원이가 또다시 버림받을까봐 한번도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며 그래서 힘들어도 참고 달렸던 거라고한다. 사실은 초원이가 달리는 것을 좋아해서 죽도록 달린거 뿐인데 경숙은 초원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몰라요" "쟤 마음속을 누가 알겠어요"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초원이 초코파이를 버리는 장면이다. 영화는 늘 자신의 상황보다 그 감정이 더 부풀어지기도 하는데 아마 나도 그랬던거 같다. 구질구질 하지도 않고 비틀지도 않고 장애 극복기같은 훈계도 없다. 초원과 주원, 명품 핸드백 사건, 코치와의 에피소드, 얼룩무늬 치마사건 관객에게는 웃을 장면이 더 많다.

사람들은 이 영화에 대해 감동적인 영화라고 한다. 영화를 본 후 장애인을 보는 시각에 도움이 되었다거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였다는 등 조금은 엉뚱한 반응이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감상이다. 영화적 사실과는 다른 자신의 상황에서 본 감상을 늘어 놓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도대체 장애인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를 얼마나 잘 만들어야지 이런 엉뚱한 감상이 나오지 않을 것인지 이 밝은 세상에 내가 주문하는 영화적 감상이 너무 지나친 것일까.

아버지는 아무런 존재도 아닌가벼, 무슨 아버지가 어둡고 무표정한 얼굴로 잠깐 나오다 마는걸까..곳곳에 어머니 경숙이 초원이에 대한 고민과 기쁨과 서러움에 대해 힘차게 사회와 맞서는 장면은 통쾌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2%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영화 말아톤의 포스터. 초원이와 엄마 경숙씨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다.

초원의 어머니 경숙씨에게

초원이 어머니가 초원이에게 어떤 대상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려는 장면이 있는데, 설리반이 본능뿐인 헬렌켈러에게 흙을 한 줌 손에 쥐어주며 이것은 흙이고 이것은 물이고..하는 장면이 왜 떠 오르는지 모르겠다.

초원이 어머니 경숙은 오로지 초원이에게만 온갖 정성과 관심과 사랑을 기울인다. 둘째아들 주원이는 "엄마에게는 초원이 뿐"이며 자신에게 무관심하다며 항의하는데 주원의 불만은 엄마는 매사를 엄마 방식대로 단정하고 자식을 대한다는 것이다. 엄마의 그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아빠도 떠났고 주원이 자신도 지겹고 그래서 초원이는 불쌍하다는 거다.

-------------------

초원이 어머니 경숙처럼 초원이를 인간답게 키우기위해 모든 것을 불사하면서 얻는 것은 무엇이며 잃는 것은 무엇일까. 경숙이 원하는것은 초원이가 인간세상에서 자신이 없어도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는것이다.

불편한 자식을 둔 많은 경숙(어머니)은 보통 그 아이에게 매달리거나 기적을 바라기도 한다. 이러한 지나친 관심으로 가족은 복합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거나 가정이 삭막해지는 것을 본다.

현실적으로 경숙과 같은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실재로 많은 수의 경숙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의사의 진단을 들으면서 처음은 '아이 설마 내 아이가 그럴려구..'라며 부정한다. 또는 절망하고 그 다음은 좋다는 치료나 기도원에서 기적을 바라고..그렇게 지쳐간다. 어느날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포기한다. 이것이 보통의 사례들이다.

내 주변의 경숙은 대부분 비장애 자녀들에게 더 각별하다.

경숙씨, 아니 초원이 어머니, 당신은 대단히 훌륭해요.

내가 하고싶은 말은 초원이 어머니처럼 자녀를 길러낼 것을 종용하지 말자.

그러나 또다른 초원이를 몸성한 아이들에게 하는 만큼은 종용하고 싶다.

초원이가 좋아하는 얼룩말이 등장하는 영화 말아톤의 포스터.

지전 김종순은 태어나 첫 번째 생일이 되기 바로 전 소아마비를 앓았다. 어릴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지전은 몇 번의 그룹전을 하고 난 후, 그냥 그림 그리는 일이 심심해져서 첫 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1000호의 화선지위에 올라타고 앉아 음악을 그리는 일(퍼포먼스)을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지전의 화두는 '청각적 시각, 촉각적 시각'이다. 그녀는 음악을 그리는 일은 새로운 방식의 일이어서 일상에서 거의 유배된 생활 같아 가끔은 마음이 저릴 때도 있지만 많은 예술가들의 삶을 쓰면서 위로 받게 되었다고. 최소한 평등한 인간의 모습을 성실하게 기록함으로써 이웃과 소통하며 그녀가 소망하는 평등한 세상이 비록 희망뿐이더라도 그 표현의 여러 기록중 하나이고 싶기 때문이다. 18회, 19회 미협에서(국전) 2번 입선. 이화여대 경영연구소 蘭谷書會 강사.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