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테레즈의 초상 Portrait of Marie-Thérèse. 1937 Oil on canvas.

창조의 원동력은 가난에있고 굶주림속에 예술정신이 살아 움직인다는 정설을 무색하게

한 피카소는 그림 그리는 일외에도 사방 팔방 관심이많아 다채로운 영역의 사람들을 만

났습니다.

19세기 후반 파리의 인상파화가를 비롯해 시인이자 평론가인 막스쟈콥, 아폴리네르, 쟝 콕토, 브르통, 엘뤼아르와 화가 마티스, 브라크, 드랭, 미로 , 쟈코메티, 그리고 발레의 디아길레프, 음악의 스트라빈스키 등, 외에도 교류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특히 시인 폴 엘뤼아르와 깊은 정신적 교감을 나누었다고 하는데요.

폴 엘리아르는 자신의아내 '갈라'를 달리(화가)에게 뺏기게되죠.

당시는 초현실주의라는 그림으로 세계가 술렁거릴때 였습니다.

갈라는 달리의 전생애에 걸쳐 예술적 영감을 준 여인이었지만 악명 높은 여인이기도 했습니다. 피카소도 여러점의 스케취를 남겼고 볼라르 판화집에도 갈라가 등장하는거 보면 그 당시 문인 화가들에게 무척 매력적인 여인 이었던가 봅니다.

올가의 초상 Portrait of Mme Olga Picasso. 1922-23. Pastel

피카소는 나이 40이 되어서야 첫 아들을 얻었습니다.

피카소의 여인중 가장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질투도 심했다는 올가(Olga).

그 올가가 낳은 아들은 '폴' 이었고 피카소는 '폴'을 모델로한 여러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올가의 자화상1923 을 그릴 무렵은 올가와 자주 다투었다고 하는데요. 고뇌하는 올가의 모습 같습니다.

어떠세요?

가난하고 암울했던 젊은날의 피카소에게 붙어다닌 청색시대의 청색과는 비교할수 없을만큼 밝은 청색이지만 피카소는 올가의 비탄을 청색으로 칠했습니다.

올가를 만난것은 퍼레이드란 공연에서 피카소가 무대미술과 의상을 맡게되었는데 퍼레이드의 희곡을 쓴 쟝 콕토의 소개로 마린스키의 발레리나 였던 올가를 만나게 되었지요. 당시 올가는 남편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올가는 피카소의 구애를 받아들였고 파리에서 막스 쟈콥, 쟝 콕토등 친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올가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피카소에겐 올가가 세번째(공식적으로)여인 이었이었습니다.

여인들의 영혼이 창작의 양식이되어 예술적 영감을 받는다는 피카소.

그는 1920년을 전후하여 초현실주의 그림들을 주로 그렸는데 그러한 미술사조에 함몰되

지않고 여러 이미지가 중첩되는 특징있는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마리 테레즈 초상' 은 그런 그림의 한 예로 볼수 있겠습니다.

피카소가 네번째로 만난 여인 '마리 테레즈'는 여인이라기보다 어린 소녀 였습니다. 마리 테레즈는 17세의 금발미인으로 미술이나 인문쪽의 관심보다 운동으로 단련된 건강미인 이었습니다. 게다가 피카소의 여인중 가장 어린 나이였고 마리 테레즈가 피카소를 만났을때는 그의 나이는 46살이었지요.

피카소는 마리 테레즈가 18살이 될때까지 기다려 올가가 사는 집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마리 테레즈의 거처를 마련 했습니다. 마리 테레즈는 피카소가 싫었는지 좋았는지 알길은 없지만 피카소의 프로포즈를 반년정도 끌다가 받아들였습니다. 피카소는 그녀의 성적 환상을 주제로 조각,그림,판화를 통해 다른 어떤 여인들을 그린것보다 많은

작품을 제작 했습니다.

한편 올가는 너무나 슬펐겠지요. 아들까지 낳고 버림받게 되었으니요. 피카소는 낭비벽이 심하다며 올가를 멀리 했습니다. 그즈음 피카소는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고. 결국 올가와 1928년에 헤어지게 됩니다. 피카소와 헤어진 뒤에도 올가처럼 피카소의 주변을 맴도는 여인들도 여럿 있었다고 하는데요.

피카소와 동거하던 마리 테레즈(1927)는 피카소를 만난지 8년이 지나 첫 딸을 낳았습니다. 당시 피카소의 곁에는 새로운여인 도라 마르가 있었습니다.

꿈(마리테레즈) Pablo Picasso Dream1932

마리 테레즈 Marie-Therese Walter. 1937. Oil on canvas. 마리 테레즈의 슬픔이 보이지요. 눈동자가 청색으로 눈 바깥으로 나와 있네요. 눈물이 쏟아질거 같아요.

2003년 호암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예술과 사랑'이라는 전시가 있었습니다. 판화전은 피카소가 죽기 5년전의 작품과 마리 테레즈와 동거할 무렵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전시작 중 '피카소의 작업실'이라는 연작을 보면 벌거벗고 여인과 침대에 누워있고 늙은이는 마치 신화에 나오는 제왕처럼 묘사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것은 제왕같은 늙은노인이 바라본 눈의 촛점이 벌거벗은 젊은 여인이 아니라 자신이 제작한 조각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늙은 노인을 피카소로 본다면 여인은 조각의 대상에 불과하고 자신이 창작한 조각작품에

더 많은 애정을 기울이고 있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보여준 판화에서

피카소를 거쳐간 일곱 여인중 그 어떤 여인도 사랑한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미노타로우스 연작은 인간의 신체와 황소의 머리를 가지고 미로와 같은곳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메고 있었으며 그 모습은 피카소 자신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나는 미리세워 놓은 미학의 기반에서 선택하지 않는다. 하느님도 사실은 또 하나의 예술가일 뿐이다.그는 기린과 코끼리와 고양이를 발명하셨다. 그는 여러가지를 시도했다."

- 피카소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 피카소, 92살 그의 전생애을 통틀어 사랑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뿐, '하느님도 또 하나의 예술가일 뿐이다' 라고한 피카소를 일컬어 광기의 화가라고 했습니다.

October 17, 2005 JeeJeon

지전 김종순은 태어나 첫 번째 생일이 되기 바로 전 소아마비를 앓았다. 어릴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지전은 몇 번의 그룹전을 하고 난 후, 그냥 그림 그리는 일이 심심해져서 첫 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1000호의 화선지위에 올라타고 앉아 음악을 그리는 일(퍼포먼스)을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지전의 화두는 '청각적 시각, 촉각적 시각'이다. 그녀는 음악을 그리는 일은 새로운 방식의 일이어서 일상에서 거의 유배된 생활 같아 가끔은 마음이 저릴 때도 있지만 많은 예술가들의 삶을 쓰면서 위로 받게 되었다고. 최소한 평등한 인간의 모습을 성실하게 기록함으로써 이웃과 소통하며 그녀가 소망하는 평등한 세상이 비록 희망뿐이더라도 그 표현의 여러 기록중 하나이고 싶기 때문이다. 18회, 19회 미협에서(국전) 2번 입선. 이화여대 경영연구소 蘭谷書會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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