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맨 위).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장애가 있는 학생의 경우 집 근처 학교에 지원할 수 있는 제도 덕분이었다. 그러나 양 목발을 짚은 내 걸음으로 등교를 하려면 족히 1시간 가까이는 걸려야 했다. 남들에게는 기껏해야 15분 정도 걸릴 거리였건만. 게다가 경사가 꽤 있는데다가 미끄럽기까지 한(적어도 목발을 짚은 내겐) 작은 고갯길도 하나 넘어야만 했다. 그래서 택한 대안이 뒷문을 통한 등하교였다. 뒷문으로 등하교를 하면 소요시간이 절반 이상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그 학교에 뒷문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어쩌면 중학교 진학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처럼 등하교는 내게 벅찬 일이었다. 무거운 책가방을 누군가 대신 들어줘야 하는 문제도 늘 상존해 있었고, 비나 눈이 올 때면 어려움은 몇 배로 커졌다. 비가 올 때는 우비를 입고서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눈이 오면 문제가 좀 달랐다. 자꾸만 미끄러져 넘어지기 때문에 한발자국도 나아가기가 힘들어지는 것이었다. 아버지나 엄마의 등에 업혀 등하교를 한 적도 몇 번 있었지만 정히 폭설이 심할 때는 등교를 포기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초중고 12년을 다니면서 개근상을 한번도 타보지 못했다. 나를 제외한 우리 형제들은 모두 졸업 때마다 3년 개근상, 6년 개근상을 받은 것과 비교될 일이었다. "개근상이 뭐 별 거냐, 공부만 잘하면 돼지…." 하며 엄마가 늘 위로해 주셨지만 내가 학교에 가기 싫어 그렇게 된 것과 내 의지와는 별개로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었다.

아니,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딱 한번 개근상을 받기는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를 유난히 아껴주시던 담임선생님이 조퇴와 결석을 몇 번 한 내게도 특별히 개근상을 주셨었다. “너는 학교를 끝까지 다닌 것만으로도 개근이야!” 하시던 선생님의 인자한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남아 있는 듯하다. 내겐 다른 기준을 적용해주셨던 선생님은 지금 생각해도 남다르게 앞선 사고방식의 소유자셨다. 사실 그땐 남들과 다른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선생님이 쓸데없이 오버한다고 여기고 좀 창피하게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어찌 됐든 뒷문으로 출입하게 되면서 내 학교생활은 남들과는 좀 다르게 전개되었다. 아침마다 규율부가 정렬을 한 채 복장이나 두발 상태를 점검하거나 혹은 지각 여부를 확인하는 정문을 통과하지 않고 뒷문으로 등교하는 것은 그저 등하교 시간을 줄여 준다는 의미 이상이었다. 처음에 나는 규율부의 매서운 눈초리를 감당하지 않고도 등교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리고 나한테 묻어서 뒷문으로 출입을 해보려는 친구들 때문에 내 주변을 늘 북적였었다. 그러나 뒷문을 지키고 있던 수위아저씨가 여간 깐깐한 것이 아니어서 나보고 그렇게 떼를 지어 다니려면(기껏해야 서너 명일뿐인데) 정문으로 다니라고 호통을 치셨다. 나중에는 내 가방을 들어주던 친구 한명과의 동행까지 금지해버리는 바람에 내 등하교길은 점차 쓸쓸해지기 시작했다.

뒷문을 통과해 교실로 향하는 뒷길은 빼어난 산책로였다. 나무와 꽃이 우거진 그야말로 작은 숲이자 호젓한 산길이었다. 나는 그 길을 거의 매일 혼자서 다녔다. 처음엔 꽤 무료했지만 차차 적응이 되어 갔다. 봄이면 진달래와 개나리가 만발하고, 오뉴월에는 라일락 향기로 숨이 막힐 듯하며, 가을에는 낙엽이 꽃처럼 예쁜 그 길을 지나다니면서 나는 혼자에 익숙해져 갔다. 친구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며 떡볶이도 사먹고 쇼핑도 하고 이 친구의 집, 저 친구의 집으로 몰려다니면서 떠들썩하게 지내는 것 같았지만 나는 학교가 파하기 바쁘게 혼자 뒷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왔기에 그런 친구들의 부류에 끼일 수 없었다. 게다가 학교에 갔다 집에 돌아오면 늘 파김치가 되어 있던 나로서는 또래들과 어울릴 여유를 허락치 않았다. 내게 중학교 시절은 학기 내내 힘들게 보내다가 방학이 되어야 겨우 여유를 찾는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김효진씨는 현재 한국장애인연맹 기획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지체 3급의 장애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을 '자기결정권'이라는 한마디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바 있어 DPI에 입문한 대책없는 센티멘탈리스트라고 소개했다. 또 그녀는 섹시하지 않다느니 의존적이라느니 무능력하다느니 하는 허위의식을 유포해 장애여성을 화형(?)시켜버리는 폭력적인 세상에 도전하는 백발마녀(일명 흰머리소녀)라고 덧붙였다. 그녀의 특기는 독설이며, 특히 편두통이 심할 때는 굉장한 마녀로도 변신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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