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급 안면장애인이다.
이 사회가 제작년에 공식으로 인정해준 등급이다.
2종 보통 운전면허증처럼
공인된 장애인증을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닌다.
30년 동안 난 장애인이 아닌 일반인의 삶을 살았다.
그렇다고 일반인 대우를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
면접에서 700번 실패의 참담한 전적을 가지고 있는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희생량이 되어 왔었다.
그래서 난 나 자신을 이 사회로부터 분류를 해 놓았다.
일반인과 장애인 그리고 나와 같은 이방인의 범주를
하나 만들어 나를 그 속에 감금시켰다.
나는 비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을 책망하기 앞서 나를 버렸던 이 조국이 싫었고
나를 알아주지 못한 이 사회가 너무나 답답했다.
그러나 난 하나님을 통해서 내 잘못된 생각을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환경을 탓하고 상황을 탓하고 사회를 탓하기에 앞서
내 인생을 탓하지 못함을 뉘우쳤다.
내 상처받은 얼굴이 늘 치명적인 약점이고 최악의 단점이라고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건 나의 뼈아픈 실수고 과오였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내 얼굴에 감사할 수 있다.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적절하게 행복으로 이끌었고
내 약점을 강점으로 부각시키고 극대화시켜 왔다.
요즘은 내 얼굴을 주위에서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나를 메이커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인간 관계에서의 내 얼굴은 첫인상에서 실패를 안겨다
줄지 모르지만 커다란 장점 또한 내포하고 있다.
나를 한 번 보았던 사람들은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는 이상
나를 십년이 흘러도 기억해준다.
그리고 내 얼굴안에서 작은 웃음과 눈빛과 내 목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은 나를 만나면 희망을 얻고 간다는 이야기를
한다.나의 마스크가 남들에게 힘과 용기가 된다니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악성 베토벤은 귀머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음악가이다.
그가 귀머거리라는 음악가로서의 치명적인 장애를 딛고 이겨냈기에
지금까지 존경받는 베토벤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장애를 대처하는 3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장애를 이기지 못하고 굴복하는 패배자가 있다.
둘째,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종형이 있다.
그리고 셋째, 장애를 뛰어넘어 초월인생을 살아가는 살아가는
승자가 있다.누구나 큰 장애라고 인정하지만 본인 스스로
장애를 제대로 못느끼며 생활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장애 자체가 걸림돌이 되어 본 적이 없는
경우이다.
우리는 장애를 반드시 이기고 극복해 나가야만 하는 숙명적인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각본이고 법칙이다.
나는 이미 32년 전부터 인생의 위기가 찾아들었고 그 위기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도 했고
때때로 인식하며 힘들어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내 모습을 냉정하게 판단해 본다.
비굴하지 않았고 당당하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내 약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장애앞에서 더욱 의연한 모습 보일 것이다.
미완성인 나를 완성해 나가기 위해 끝없이 갈고 닦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