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벗 J. H님! 새벽을 깨우는 닭의 울음소리만큼이나 희망찬 을유년이 시작되었군요.

올해도 보내주신 장문의 연하 편지를 읽으며 기쁜 맘으로 을유년 새해를 맞을 수 있었습니다. J. H님께서도 희망으로 한해를 맞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을유년이 의미하는 닭은 맨드라미와 함께 있다면 높은 벼슬을, 모란과 함께 그려지면 부귀를, 국화와는 장수를, 석류와는 다산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굳이 닭의 이런 의미를 찾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은 새해를 값진 1년을 보내기 위해 알찬 목표와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해마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이 종종 작심삼일, 용두사미가 되곤 합니다,

계획은 세웠지만 성실히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결심은 했으나 꾸준히 잇지 못하기 일쑤였기에 나의 모습은 작고 미약해 보이고 작심삼일이란 말이 괜한 말이 아니라고 내 스스로 나무래보기도 합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나아질게 없다고 합니다. . 나라 안팎이 마무리 안된 공사판 같아 뭐 하나 시원하게 매듭짓는 일이 없는 듯 합니다. 실천은 없고 논쟁과 논란의 흔적만이 남으니 사회의 모두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것들이 기를 펴지 못하고 잔득 움츠려 드는 게 당연한 일인 듯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만이 아니고 가정이나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그렇다 보니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낙관적 사고보다는 비관적인 사고를, 긍정적인 맘보다는 부정적인 맘을 가지고 있기에 이 사회나 개인의 희망을 노래를 찾기 어렵고, 미래 도한 불투명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 한해를 다시 돌아볼 때 우리 사회는 외환 위기 때보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더 나쁘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심각한 경제 상황을 그대로 이어받은 한 해의 시작이기에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이루는 사람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우리의 살림살이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도 이웃들의 어려움을 함께 하고자 하는 따뜻한 이야기들이 들려오고 있어 그나마 한파 속에 새로운 해를 맞은 우리들의 마음을 한결 푸근하게 녹여주고, 아직은 인정이 메마르지 않았음에 감사한 마음마저 듭니다.

얼마전 70대 할아버지가 20여년간 폐품을 팔아 40대 뇌성마비아들을 돌보아 온 뉴스가 나가고 난 뒤 바로 각계각층에서 두 부자에게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졌지요.

이것이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온정답지(遝至)로 이어진 것은 지역언론과 포털사이트가 함께 보도한 결과이며 또한 여기서 끝나지 않고 관공서와 사회단체에서도 동참하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의 인정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였지요.

이 땅을 떠나기 전에 늘 이웃을 배려하고 하나 되고자 하였던 J. H님의 욕심 없던 실천들도 새삼 떠올라 가슴이 찡해옵니다. 작은 동참에 선뜻 나서기도 주저하고, 겸손하지 못했던 행동 하나에도 반성하게 됩니다.

또 한편으로 도깨비노점상연합회에서 창신동 철거예정지의 주민들에게 사랑의 김치를 담가주고, 인천 환경미화원들이 고철수집으로 모은 돈을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 장애인 등에게 전달하였다는 소식을 들으며 바쁜 일과와 여타의 핑계로 내 이웃들을 돌아보지 못했음에도 부끄러워집니다.

생활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소리 없이 베푼 십시일반의 온정이 바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는 게 아니겠는지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그리고 추위가 연일 계속되는 한파 속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들이 금액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전부다 크고 아름다운 빛으로 빛나 보입니다.

올 한해 목적지까지 다다름이 더디고 눈앞에 보이는 게 적더라도 목표와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실천하고 행동하는 한해가 되길 기원해 봅니다. 그리고 올해도 이웃들의 어려움을 함께 하고자 하는 따뜻한 온정들이 모이고 모여 1년을 하루같이 밝은 세상 밝은 날이 지속되길 꿈꾸어 봅니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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