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변함없이 삼십년 지기 두 친구로부터 생일축하엽서와 선물이 각각 도착하였다. 그 친구의 선물을 받고서야 아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나 하면서 지나간 일들을 돌이켜 보았다.

내가 생활하면서 안개 속을 헤매듯이 힘들어 할 때면, 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내 손을 잡아준 친구였다. 고맙다는 인사말로 시작한 인터넷 속 대화는 못난 남편이야기와 만능인 아들이야기, 자신보다 잘나가는 아내이야기, 주말드라마에 나오는 괜찮은 배우이야기 등등 잡다한 이야기로 한시간 넘는 수다로 이어졌었다.

두 친구와 수다를 떨다보니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슬픔을 함께 등에 지고 갈 수도 있고 기쁨을 나누어 두배로 만들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것은 평안과 위안이 있는 따뜻한 집 한 채를 소유한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겨울의 초입에서 두 친구의 선물은 추운 날에 따듯하게 지필 장작을 마련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마당을 서성이다가 우체부를 만나면 이 순간의 마음을 적어 보내고 싶은 친구이나 아직 덜 되어서 무엇인가 더 되려고 헤매는 친구에게 "나의 천성적인 우울한 습성을 고쳐서 나의 청춘시절을 다치지 않고 신선하게, 새벽처럼 유지시켜준 것은 결국 우정뿐이었다"고 하면서 우정을 노래한 헤르만 헤세의 시 한편을 적어 보내고 싶다.

안개 속을 헤메는 것은 이상하여라!/ 숲이며 돌은 저마다 외로움에 잠기고 /

나무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다 혼자다.

나의 인생이 아직 밝던 시절엔/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건만, /

이제는 안개가 내리어 / 보이는 사람 하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모든 것에서/ 사람을 떼어놓은 그 어둠을 /

조금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현명하다 할 수는 없다.

이 시를 친구에게 보내려고 엽서에 옮겨 적으면서 우정만큼 친구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 시를 쓴 헤세는 우정도 작품을 쓰는 것만큼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같다.

헤세가 존경했던 횔덜린을 곁에서 돌본 그의 친구 싱클레어와의 우정은 헤세가 ‘데미안’의 주인공을 그 친구의 이름인 이삭 폰 싱클레어에서 따올 만큼 두터웠고, 1954년에 출간된 ‘헤세와 로맹 롤랑 서간 왕래’라는 책으로 서독의 호이스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을 정도로 로맹 롤랑과도 친했다고 하는 일화들이 전해진다.

그는 서정시인이자 탁월한 소설가이기도 했던 헤세의 수많은 시 가운데서 가장 많이 애송되는 시가 ‘안개 속을’ 등 우정에 관한 시들이 많고, 가장 사랑 받는 소설이 ’데미안‘이다. 헤세처럼 작품도 우정도 훌륭하게 지킨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람들은 친구를 통해서 우정을 쌓고 허문다.

또한 그는 또 다른 작품인 '수레바퀴 밑에서'나‘지와 사랑(또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도

어린 티를 벗고, 혹은 실존의 고민이 시작되는 스무 살의 시절과 그 시기를 지나 삶의 정점마저 지나친 이들, 스스로 이미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변치 않는 우정을 보내고 있다.

작가들의 우정은 다른 예도 많이 찾아 볼수 있다. 폴 세잔이 법학을 할까 미술을 할까 망설일 때, 에밀 졸라의 우정어린 격려의 편지를 받고 진로를 미술 쪽으로 돌려 본격적인 데생공부를 시작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의 30년 우정도 글을 쓰는 한사람으로서 참으로 간직하고픈 우정이다.

백수십 편이나 되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와 밀턴의 장시 ‘리시다스’, 테니슨이 수년에 걸쳐 쓴 130편이 넘는 ‘인 메모리엄’은 모두 단 한 친구를 위한 우정의 표현을 표현 시었다고 한다.

헤세의‘싯다르타’에서 감동적인 우정을 보여주는 수행자 싯다르타와 뱃사공 고빈다처럼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는 우정을 간직하고 싶다.

혹시 오래된 친구가 곁을 떠나게 된다해도 그 우정은 오래 잊지 못할 것이며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오늘 생각나는 친구의 이름이 있다면 "보고싶구나 친구야" 안부의 엽서를 보내보자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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