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수록, 모든 일의 승패는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행복해지는 것도, 불행해지는 것도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감정의 교류가 부드럽고 원활한가, 그렇지 못한가에서 비롯되어질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 거기에만 매달려 있다면 그것 역시 본인에게 피곤한 일일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결코 좋은 호응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지난 번, 자기 성찰을 위한 어떤 소모임에서, 한 여성이 번번이 애인에게서 차인다는 고백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A도 찼고 B도 차버렸고 C는 더욱더 가혹하게 자신을 찼다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이었다. 외모도 예쁘장할 뿐 아니라 명문대학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여성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자기를 버리고 떠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고통스럽다는 것이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잘 해주고 사랑해주더니 갑자기, 혹은 시나브로 멀리하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간청하면 간청할수록 상대방은 더욱 가혹하게 자기를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그 고백을 하면서도 그녀는 아직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자기 머리를 뜯었다.

겉으로만 보아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속 내용을 알고 보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어릴 때 부모가 이혼을 하는 바람에 친척 집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 친척이 따뜻한 어른들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어린 아이가 너무 예민하여 적응을 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충분히 보살핌을 받아야 할 유년기에 사랑은커녕 부모로부터 버려졌다는 기억이 사랑에 맹목적으로 집착하게 만들었을 것이고, 요즘처럼 쿨하고 가벼울수록 그 매력이 더해지는 걸로 믿고 있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녀는 더 이상 만나주지 않는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길목에서 무작정 기다리기를 반복하고, 왜 그러냐고 길거리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급기야는 남자친구 부모를 찾아가기도 하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던 것이다.

난 이 아가씨를 보면서 내 젊은 날을 보는 듯 했다. 물론 이 여성처럼 용감하거니 솔직하지는 못했지만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고 결핍되어 있던 나를 채워줄 사람을 찾아 끊임없이 두리번거렸고, 막상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에 대한 환상과 믿음으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열중하다가 스스로 소진되어 뻗어버리기 일쑤였다.

인간관계는 억지로 잘 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어떤 균형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 같다.

이 관계의 미묘한 지점을 경쾌하고도 적확하게 짚어준 글이 있어서 함께 읽어보려고 했는데 나의 서설이 너무 길었다.

[ 이 우주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 속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기하학적 관계가 있다.

이를 황금율이라고 하는데 보통 5:8, 또는 1:1.618.....이런 비율로 표시된다.

소라고동의 아름다운 곡선은 이 비율로 자신의 껍데기를 키우기 때문이고, 암모나이트 조개의 환상적인 구조 역시 이 비율이 적용된 결과다. 많은 미술가들이 자연 속에서 발견한 이 황금률은 왜 선택되었을까?

가장 효율적인 구조였기 때문이다.

가장 안전하고, 실패할 위험성이 적고, 그러면서도 발전적인 구조가 이 황금율 속에 있었다.

이구조를 다시 정의하면 1: 1+0.618...가 된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중심을 자기 안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1:2가 되면 중심이 나와 밖에 반반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1:2가 넘으면 중심은 내 안에 있다기보다는 내 밖에 있게 된다.

1: 1.618은 중심은 내 안에 두면서도 발을 내뻗어 새로운 세계(0.618...)을 받아들이고 자기를 확장하는 동작이다.

이런 동작이 무술에도 자주 등장한다. 태극권에 보면 허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무게 중심을 자기한테 두면서 가볍게 발을 내뻗어 중심을 잡는 것이다. 이 발은 가벼움으로 거두어들이기도 쉽고, 앞으로 내 뻗기도, 좌우로 이동하기도 쉽다.

우리가 꿈을 꾸는 것도, 인간관계를 갖는 것도 자기를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무게 중심이 자기 안에 있지 않으면 우리는 곧잘 넘어지고 만다.

어떤 인간관계라도 이 중심을 잃지 않는 게 좋다. 그렇지만 우리는 누군가한테 기대면서 스스로 이 중심을 잃어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대, 자식에 대한 기대, 부모에 대한 기대, 친구들에 대한 기대...

그런 기대가 항상 통한다면 좋을 지 모르지만 우주는 그런 기대를 영원히 용납하지는 않는다. 잠시 뿐이다. 그 잠시에 감사할 줄 아는 것도 좋은 것이다. 그렇지만 보통 우리는 그런 감사를 넘어 다시 기댈 수 있기를 기대하고 그때부터 기대가 무너지는 슬픔과 아픔을 겪는다. 그렇게 넘어질 때마다 자신을 비하하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것이 기대의 진실이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고, 기댐을 허용할 수 있는 것은 삶을 더 아름답게 한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황금율이 존재하는데 그 기대가 1:1.618...의 황금율을 벗어나서 과도해지면 기대는 사람도 위험해지고, 기댐을 허용하는 사람도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기대는 사람은 무기력해지고, 기댐받는 사람은 자유를 잃게 된다.

인간관계에 황금율을 적용해보라. 친구에게도, 연인에게도, 부모와 자식에게도 이 황금율을 적용해보라. 그게 우리를 아름답게 할 것이다. 그 안에 진실한 사랑이 꽃피기 쉽기 때문이다. ]

-박승제님의 '인간관계의 황금률'에서 인용-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워 혼자서 살 궁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울며 불면서 억지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다음에 되고 싶은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서는 신체상의 결격으로 불합격되어 그나마 일년 남짓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한 적이 있고, 다음에 정립회관에서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2급 지체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87년에는 친구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았고 94년에 동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김미선씨의 글은 한국DPI 홈페이지(www.dpikorea.org)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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