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 5년차인 강지훈씨.

뒤돌아 갈 수는 없지만 뒤돌아 볼 수는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공간 속의 시간들.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없는.

10월은.. 또 다른 의미를 전해 주는 것 같다.

꿈... 어릴 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이젠 행복하나만으로 만족하고 있다. 행복을 갖기 위해 꿈을 가지는 거고 결국 꿈이 현실이 되면 행복이란 종착역에 도달하는 건 아닐까….

제 글을 읽는 독자들도 기억하실 거다. 지난해 5월. KAIST 풍동 실험실에서 일어난 '폭파 사건'. 그 사고로 한 학생은 사망하고 나머지 한 학생은 두 다리가 잘리는 대형 사고가 났었다. 많은 사람들이 뉴스를 통해 막연하지만 함께 가슴아파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때 그 사고의 주인공 '강지훈'씨를 만나봤다.

폭발 사고가 발생한지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사고 후 얼마만큼 재활을 이뤄가고 있을까 여러 가지 궁금한 마음에 찾아가 봤다.

사실 그때 그 사고는 교내 이공계 대학 실험실의 안전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든 사건이었고, 현실적인 뒷받침이 어려운 환경에서 열악하게 연구하는 대학원생들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

풍동사고는 당사자와 가족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 주었을 뿐 아니라 아마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가족들이 와선 난리였죠. 왜냐하면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나와 살았고, 간간히 1년에 한 두 번 보다가 갑자기 연락을 받았는데 다리를 다쳤다고 하니까 놀래서 와 보니까 다리가 다친 정도가 아니라 없어져 버리니까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사고나고 보름 넘게 3주 가까이를 저까지 다섯 식군데 1인실 병원에서 같이 살았죠. 그 정도로 가족들의 충격은 컸어요.”

하고 짧게 이야기를 하는 강지훈씨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목소리가 작고 힘이 없었다.

강지훈씨가 다니는 KAIST.

집에서 나와 혼자 생활하며 공부하던 아들이 당한 사고. 그것도 연구하던 연구실, 학교 내의 사고라는 사실에 아마 가족들이 받은 충격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강지훈씨의 사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목숨을 잃은 조정훈씨와 함께 실험에 쓸 질소통을 구하려고 실험실 통로를 막고 있던 가스통을 들었다가 폭발이 일어났다고 한다.

평소에도 실험실 안에 가스통을 쌓아두는 것이 예사였던 탓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고, 길을 막고 있는 가스통을 들었던 것인데 그 당시 약간의 스파크만 일어도 폭발 위험이 있는 혼합가스가 다른 가스통들과 함께 뒤섞여 있었던 거다.

결국 안전부주의 때문에 일어난 사고.

이후 문제가 되었던 가스통들은 건물 밖 고압가스 캐비넷으로 옮겨졌다고 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안전을 위한 정비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고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는 강지훈씨는 폭발하는 순간 포각이 날아간 몇 초 정도만 정신을 잃었고, 그 후에 바로 깨어서 보니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서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 지고 누워 있으니까 꿈인지 생신지 당황하고 몸을 일으켜 상황을 파악하고 그때서 자신에게 닥친 사고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듣는데 왜 내 몸이 닭살 돋듯 파르르 떨리고 추워지는지 순간, 강지훈씨의 사고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사고 순간에는 서 있었는데 몇 초 사이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일어서려고 하는데 일어설 수 없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좌절했을까. 당사자가 갖는 충격은 다른 사람들은 아마 상상할 수 없는 일.

두 다리를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장애인이 된 것인데 상황을 빨리 알았다고 해도 받아들이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다.

음, 뭐라고 할까. 어찌보면 일반적인 세상 관점으로 보면 앞길이 정해진 흔히 하는 말로 탄탄대로의 미래를 앞에 두고 있는 최고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셈이 아닌가.

많은 후천적 장애인들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장애인이 되고 나면 그것을 극복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고 한다. 부정하다가 받아들였다가 다시 반복되는 갈등. 그런 시간이 길게는 5∼10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강지훈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병원에 있다보면 날씨가 안 좋아서 아프고 그럴 때 보면 '왜 나한테 이런 사고가 났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들고, 병원에 있을 때 의족을 하지 않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은 부담을 느끼게 했다. 병원은 아픈 사람들만 있는 곳이고 아픈 사람들을 보호하는 보호자들이 거의 대부분인데 그런 사람들조차도 시선이 그러니까 '아, 내가 밖에 나가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또 어떨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인터뷰하면서.

강지훈씨는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상태로 의족을 착용하고 있다. 다행히도 최첨단 의족을 착용함으로써 잘 생활하고 있고 활동하는 데는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지훈씨의 경우 한쪽은 무릎 위 일명 대퇴이고 한쪽은 무릎 밑 하퇴다. 거기다 하퇴인 다리는 무릎 연골판이 크게 다쳐서 15도 각도로 고정을 해놓은 상태라 더 걷기가 힘든 상태라고 말하는데 다행히도 최첨단 의족을 하면서 잘 걷는 것은 물론 다치기 전 좋아하는 아이스하키까지도 할 수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돌아올 무렵 혹 같은 장애를 가진 장애들인들이나 후천적 장애로 고생하는 장애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 이제는 내가 못하는 일이 많겠구나' 이것보다는 '뭔가 보람 있는 일들을 내가 더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생기겠구나'라고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 맞다. '이젠 내가 못하는 일들이 많겠구나' 라는 생각에서 '아, 이제 나도 보람있는 일들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작은 차이처럼 느껴지겠지만 얼마나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행복해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아주 큰 차이인 듯.

그런 강지훈씨의 자세가 아마도 다른 비장애인들에게도 도전을 주지 않을까 싶다. 10년 뒤, 20년 뒤 강지훈씨의 미래. 너무도 기대가 된다.

사람 만나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칼럼리스트 김진희씨는 지난 97년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사고를 당하기전 280명의 원생을 둔 미술학원 원장이기도 했던 필자는 이제 영세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에게 재활보조기구나 의료기를 무료로 보급하고 있으며 장애인생활시설에 자원봉사로 또 '지구촌나눔운동'의 홍보이사로 훨씬 더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는 현재 방송작가로 또 KBS 제3라디오에 패널로 직접 출연해 장애인계에는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음식을 아주 재미있고 맛있게 요리를 할 줄 아는 방년 36살 처녀인 그녀는 장애인 재활보조기구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이트 deco를 운영하고 있다. ■ deco 홈페이지 http://www.uk-or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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