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거든 너도 같이 죽자"던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9살 밖에 안된 어린 막내 아들을 이 땅에 남겨 두고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목발을 짚고 이 곳, 저 곳을 흔들거리면 학교를 오가던 아들을 이 땅에 홀로 남겨둔 어머니의 마음을 어떠했을까? 함께 가지 못할 길을 가야만 한다고 속으로 되뇌이던 나의 발걸음은 아직도 어머니 가실 길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어머니가 묻힌 그곳으로 올라가는 길이 더욱 험해 보였습니다. 묘지 관리인이 계단 까지 만들어준 배려로 인하여 전보다 수월했지만 몸이 무거워진 나의 발길이 어머니 곁으로 가기까지 많은 땀이 옷 속으로 스며들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금년에 어머니 곁으로 가신 아버지가 계신 곳이라 더욱 가는 길이 길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생각합니다. 어머니 등에 업혀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일을 기억합니다.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밀어주던 유모차에 몸을 싣고 학교에 등교하던 길을. 어느 날 어린 아해들의 장난으로 유모차가 없어져서 교실에 혼자 덩그라니 내팽겨진 채 학교 정문만을 응시하던 그 때를.

오늘도 산만한 장애아동을 등에 업은 채 상담하러 온 젊은 어머니를 봅니다. 철퍼덕 의자에 앉아서 손수건이 질퍽해지도록 눈물을 닦아내는 어머니에게서 나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멀리 남쪽에서 들려온 전화 목소리. 레트 증후군 장애자녀를 어떻게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시켜야 하는 지, 건강한 둘째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그리고 지친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어머니에서 한결 여유를 발견합니다. 젊은 어머니와 4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장애아동을 양육하는 어머니는 똑같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고 낙태를 시키는 세태에 우리는 살고 있지요. 생각지 못한 임신이라고 기꺼이 유산의 길로 들어서는 세상이 우리는 살고 있는 곳입니다. 어린이날 대공원에 가서 고의로 아이를 잃어버리고 시원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귀향하는 세상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장애인 생활시설 문 앞에 예쁜 쪽지와 함께 자신의 장애 자녀를 유기하고 편한(?) 마음으로 미래를 계획하는 부모들을 봅니다.

그러나 내가 만나는 장애아동 어머니는 장애아동을 양육하는 미래가 어떠한 지를 알면서도, 많은 돈이 들고 허다한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기꺼이 장애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는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이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훌륭한 어머니입니다.

대학에서 만난 발달 장애를 가진 청년들. 그들과 함께 공부하는 비장애 청년들은 지적능력과 정신적 능력에 관계 없이 이들을 "형, 오빠"라고 부르면서 통합된 사회를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비장애 청년들은 장애청년들에게서 '영화이야기, 가요, 그리고 문화"에 대한 스토리를 들으면서 사회적으로 재활된 모습에 감탄하곤 합니다. 그렇게 독립적으로 대학생활을 기꺼이 해내는 장애청년들에게서 어머니의 수고와 땀, 그리고 눈물을 읽어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절했던 그 고난의 연속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장애자녀의 삶을 어떻게 전개해 나갈 것인가에 대하여 기도하며 고민하는 존재 역시 어머니입니다.

출생 부터 장성한 이후의 모든 삶에 대하여 책임과 의무는 어머니에게 있습니다. 죄나 잘못 혹은 전생의 저주와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남다른 자녀를 두고, 그 자녀를 사랑하며 양육한 것이 전부일 뿐입니다. 이 땅의 저명인사 목록이나 위인전에 기록되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에는 여전히 장애자녀만이 거대한 산처럼 가득차 있을 뿐입니다.

때로는 장애자녀로 인하여 자신의 결혼 자체를 저주한 적도 있었겠지요. 함께 살을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는 남편을 원망도 했을 것이요,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슬픈 고뇌가 끊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자녀는 .....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인하고도 싶었겠고, 어디든지 당당하게 장애자녀를 데리고 다니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한탄하기도 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계속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장애자녀를 가슴에 안고 재활에의 열정을 식힐 수 없었던 것은 하늘이 준 모성애, 세글자 덕분이었습니다. 여전히 그 아이는 내 자녀였습니다. 그리고 나의 일부였습니다. 어머니는 아직도 미움과 원망이 발전하여 사랑이라는 이름의 수렁에 빠져 장애자녀와 뒹굴며 세상 바깥으로 나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이 계십니다. 어머니는 모두 위대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어머니들 중에 가장 위대한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입니다. 장애자녀를 사랑으로 보듬으며 눈물로 키우는 어머니, 세계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참으로 위대한 어머니입니다. 다시금 어머니를 불러봅니다.

어 ...... 머...... 니.......!

이계윤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과 사회사업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밀알선교단과 세계밀알연합회에서 장애인선교현장경험을 가졌고 장애아전담보육시설 혜림어린이집 원장과 전국장애아보육시설협의회장으로 장애아보육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예수와 장애인, 장애인선교의 이론과 실제, 이삭에서 헨델까지, 재활복지실천의 이론과 실제, 재활복지실천프로그램의 실제, 장애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펴내어 재활복지실천으로 통한 선교에 이론적 작업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이 칼럼난을 통하여 재활복지선교와 장애아 보육 그리고 장애인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자와 함께 세상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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