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끌림과 선택의 기준은...

타인에게서 성적 매력을 느끼는 끌림과 관계하기 위한 선택은 개별적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삶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끌림에 관한 우리들의 보편적 정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무의식적 활동이고, 일반적으로 그냥 마음이 가는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사람에 대해서 갖는 좋은 감정과 성관계를 하고자 하는, 끌리는 마음을 섬세하게 뜯어보면, 무의식의 자리에 깔려 있는 자의식의 관여가 미묘하게 영향력을 미친다.

자의식은 몸과 정신을 자신의 틀로 규정하고, 그것이 자신의 성 취향인양 인식한다. 자아를 인식하는 토대는 어머니. 아버지, 가족간의 관계와 개인적 경험들로 형성되고, 그것은 끌림과 선택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

거기다가 사회적 여러 조건이 결합되면서, 자아에 의해 의식된 끌림과 선택은 본질적 자아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세상에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소위 운명인 것처럼 내재화 한다.

그런 끌림과 선택에서 몸은 중요한 기준이고 매력의 조건이다. 또한 개인적 삶의 매력과 사회적능력이 끌림과 선택에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끌림과 선택에서 성욕이 부정되거나, 기능이 떨어질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과 사실로 끌림을 유발하거나, 혹은 끌리거나, 선택하거나, 선택을 받거나 하는 것에서 탈락하게 된다.(물론 사회적 능력이 부족함도 성적 매력을 저하시킨다. 사회적 능력은 장애인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그렇게 조장한다.)

그럼 장애인은 한 인간으로써 성적 매력으로 소위 끌림의 대상으로 선택되어지거나, 선택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

이 문제에 관한 주체적 노력은 매우 한계가 있다.

끌림과 선택이 외모와 개인 및 사회적 능력에 그 기반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고, 무의식/의식안에서 자의식의 왕성한 활동에 의해 결정된다면, 그 안에 장애인은 설 자리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미 그 보여지는 모습과 생활이 성적 매력을 보여주는 한계로 드러나서, 선택의 기회는 한정될 수 밖에 없다. 말로는 모든 모습은 아름답다고 하지만, 결국은 끌림과 선택에는 조건이 따른다. (물론 100% 일반화 될 수는 없다.)

사람에 대한 끌림은 인간의 개인적 선택이고, 기호이며, 선택의 자유로움은 개별적 인간 스스로에게 있는 기본적 권리이다.

허냐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써 이 점에 부딪히면, 많은 고민과 정치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정상의 몸에 거부당하는 장애인의 몸

성적 매력을 느끼고, 관계를 하는 과정은 개별적 단계로써, 우선적으로 성적매력에 대한 끌림은 심리·사회·정치적 상황이 강하게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성관계를 갖기 위한 발전적 관계설정은 외부의 여러 가지 요인(장애인과 성관계가 가능할까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갖을 수 있고, 성관계를 한다는 그 자체를 이상하게 볼 수도 있으며, 성관계 이후의 결과를 고민하게 됨으로 쉽게 성관계를 맺기가 힘들게 된다.)에 의해 미화되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 (여기서 성관계는 결혼을 전제하거나, 아니거나는 논외로 한다.) -

끌림은 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선택 또한 개인의 사적 영역이니, 사회적으로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미묘한 영역이지만, 장애인들이 가장 크게 소외되고 배제되는 영역이 사적영역이라고 생각하는 필자로써는 장애인의 섹스에서 중요한 화두인 것이다.

어느 중도 척수장애여성의 모습이 지워지지를 않는다. 섹스하고 싶은 남자를 꿈속에서 만나 황홀하게 관계한 이야기를 말 하며, 붉그레한 얼굴로 미소짓으며 웃었다. 그러다가 북받치는 감정에 어쩔 줄 몰라 순수한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의 표현을 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필자의 눈 안에 남아 있는 것이다.(물론 가재는 게편 일수도 있다.) 배변이 실수되어, 냄새가 흥건했지만, 그 남자와의 시간을 더 갔고 싶어서 집으로 달려가 다시 씻고 와서, 그 남자의 눈길을 찾아 헤매는 장애여성의 솔직한 모습을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부르스 한번추자는 떨리는 목소리를 외면당하며. 냉정하게 손을 뿌리치는 그 남자의 매몰찬 태도는 왜 이리도 사람냄새가 안 나는 것일까?

그 남성의 끌림과 선택의 중요한 요소는 극히 개인적인 영역이였지만, 척수장애여성과 선택된 또 다른 여성을 비교해보면서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경제·사회적 위치도 낮고, 미모·사람에 대한 배려도 약하지만, 그녀가 가진 순수한 감정과 성적욕망을 감히 누가 함부로 평가 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그녀가 부족하고 모자라도 선택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욕망을 품었었다.

인간의 끌림과 선택! 그리고 장애인!

그 현상적 관계설정과 교류의 이면에 자리한 인간 및 사회의 본질과 근원을 고민하게 한다.

성적 욕구 그 자체는 순수하다.

칼럼니스트 박지주씨는 중 2때 척수염으로 인해 학교를 중퇴하고 재가장애인으로 5년간 집에서 지냈다. 22살 운전을 배워 세상과 어울리면서 24살에 중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늦은 28살에야 숭실대학교에 들어갔다. 그 후 비장애 중심의 사회와 싸우며 장애인 학습권 침해에 대한 소송으로 세상에 정면도전함으로써 많은 장애인에게 당당한 권리를 알게 했다. 그녀는 그렇다. 산다는 게 행복한 여자. 때때로 밀려드는 어려운 고통들도 삶의 재료라고 여기며, 노래로 풀어버리는 여자다. 가장 은밀하면서도 사적영역으로 치부되어, 자유롭게 섹스이야기를 못하는 사회에 사는 중증장애여성.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 하면서, 인간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질 수 있는 편견과 차별을 되짚어보고, 억압된 성을 풀어헤쳐, 행복한 성을 누리기 위한 과감한 섹스이야기를 진하게 하려고 뎀비는 뜨거운 여자. “자! 장애인들이여! 우리 맘과 몸에 맞는 거 한 섹스 여러 판하고 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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