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푸른빛을 더하며 흐르고 있다.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강은 저 혼자 묵묵히 흐르고있다.

그러나 말없이 흘러가고 있다해서 세상의 일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그저 생각도 없이 뜻도 없이 흐르고 있다고 말을 할 수 없다.

강은 강물의 깊이 만큼, 그리고 흘러간 길만큼이나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바위에 부딪쳐 포말로 부서지기도 하고, 흐르는 길을 잘못 들어 웅덩이에 고인 신세로 썩기도 하고 강둑이 폭풍에 유실되어 허리를 잘리기도 한다.

어디 그뿐이랴 인간들이 버린 폐수에 오염이 되어 물고기나 물 속 식물에게 예상치 못한 피해를 주기도 한다.

이처럼 갖가지 사연, 돌이킬 수 없는 눈물과 안타까움, 그리고 어찌 못할 분노를 안은 채 강물은 조용히 흐르고 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폭풍우 치고 오염된 강물과 같다. 잠시도 잔잔할 줄 모르고 출렁거리고 꿈틀거리다가 거품으로 사라지고 만다. 모든 일이 출렁거리고 거품으로 일어나면서 무슨 것인가 일을 낼 것만 같다가도 그것이 일을 낼 진실은 자취를 감추고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버려진 신문 한쪽 구석에서 나뒹구는 진실성이 배제된 기사가 보다도 못한 게 요즈음 사회의 모습이다. 장맛비 추적거리는 여름 뒷골목에서 썩는 하수구로 흘러가는 빗물처럼 세상의 일들은 흘러가는 것이다.

날에 따라 혹은 사람의 기분에 따라 하루를 사는 일이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하지만 하루,

또 하루 가 모여 이룬 세월은 강물처럼 침묵하며 유유히 흘러간다. 무수한 사람의 무리 속에서 한사람의 존재가 미미하고, 아우성치는 세상 속에서 한사람의 통곡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천둥 번개가 우르릉 쾅쾅거리며 무섭게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한사람의 생사의 빗줄기는 그냥 묻히고 만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노력한 하루가 모여 역사는 만들어지지만 그 하루를 산 보통사람들은 쉽게 잊혀지다가 곧 흔적조차 없어지고 만다.

머나 먼 이국 땅 이라크에서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젊은이가 이십 여일 넘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더니 그의 이름은 벌써 시간 속에 묻혀버렸다.

그의 생명을 지켜줄 줄 알았던 나라는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바람 앞의 등불마저 지키지 못하고 저버리는 꼴이 되었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어느 국민이 이런 나라를 믿고 살겠느냐고 통탄을 하고 파병을 하느니 마느니 논란을 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한 순수한 젊은이의 꿈을 무참히 꺾어버린 지금에서 파병을 한다고 해도, 파병을 안하다고 해도, 이미 죽은 그에게는 의미없고 부질없는 일이다.

아들의 비보를 듣고 오열통곡하던 가족들의 모습이 며칠 간 방송과 신문을 수놓았는데 장례를 치른 후 가십거리로 인터넷 속을 떠돌던 가족사에 관한 떨떠름한 이야기, 수억이나 되는 부의금에 정부와의 합의금 협상 등에 관한 불미스럽고 좋지 않은 소식은 절로 한숨이 나오는 소리다.

국가의 입장과 가족의 입장을 떠나고 언론의 시시비비를 옆으로 제쳐놓고 순수하게 꿈 많은 젊은이 한 개인의 절박한 심정으로 돌아가 보자.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와 꿈을 이루고자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로 달려갔던 그 절박한 심정을 다른 이유는 다 접어두고 헤아려 보자. 불우했던 성장환경을 탓하지 않고 꿈을 이루고자 애를 쓰던 그였기에, 있어서는 안될 세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일찍 가버린 한 젊은이의 죽음이 더욱 가슴 아프고 애처롭다.

그가 납치되었던 언저리에서 시작된 장마전선은 아직도 비를 뿌리고 있는데 가슴을 아리게 한 젊은이의 죽음은 벌써 우리 사회를 한바탕 뒤흔들다가 잊혀지는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 파도는 하나가 밀려오면 또 다른 파도가 계속 밀려오지만, 흩어져버린 앞의 파도는 잊어버리고 마지막 파도만이 보이는 바다에서 흩어진 파도의 포말에 불과하고, 순식간에 달아올랐다가 바로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냄비근성을 지닌 언론 기사로 끝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젊은이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강물로 흘러가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제발. 나는 살고싶습니다. 나는 한국에 가고 싶습니다."

초췌한 모습으로 절규하던 그의 외침은 아픔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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