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영화나 책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남아 있는 기억 속의 정사 장면이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끝부분에 나오는 와타나베와 레이꼬 여사와의 관계일 것이다.

대학생인 와타나베는 가장 친하던 친구를 잃고 그의 애인이던 여자 친구 나오코와 애인 사이가 된다. 그러나 나오코는 이런저런 상황으로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정신병원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나오코를 사랑하던 와타나베는 이 요양원을 몇 번 방문하면서 그때마다 같은 환자로 나오코의 룸 메이트이자, 그녀를 돌보기도 하던 레이코 여사와 함께 시간을 지내면서 서로를 알게 된다.

나오코가 죽자 와타나베는 한동안 현실을 떠나서 유랑생활을 하게 되고 레이코 여사는 와타나베가 자책감에서 벗어나와 다시 현실을 되찾도록 도와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레이코 여사 역시 요양원에서 격리된 생활을 하고 있어서 외부세계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이코 여사가 드디어 요양원을 벗어나 와타나베를 만나러 온다. 7년 만에 복귀하는 외부생활이었다.

두 사람이 만날 수밖에 없었고 또한 만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는 물론 나오코 때문이었다. 와타나베의 자취집에서 두 사람은 맛있는 전골요리를 해서 먹고 그리고 레이코 여사가 말했다.

“당신이 나오코의 죽음에 대해서 무언인가 아픔같은 것을 느낀다면, 그 아픔을 나머지 인생을 통해 계속 간직해요. 그래서 만일 배울 것이 있다면 거기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요.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미도리와 둘이서 행복해져요. 당신의 아픔은 미도리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니까. 그러니 괴롭겠지만 강해져요. 좀 더 성장해서 어른이 돼야 해요. 난 당신에게 그 말을 하려고 그 곳을 나와 일부러 여길 온 거야.”

미도리는 와타나베를 좋아하는, 그리고 그도 나오코보다는 순위가 떨어지지만 그 역시 다른 느낌으로 좋아하는 여성의 이름이다.

와타나베가 대답했다.

“당신이 하는 말은 잘 압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아직 그 준비가 안 돼 있습니다. 으음, 그건 정말 너무나 쓸쓸한 장례식이었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죽는 것이 아닙니다.”

레이코 여사는 손을 뻗어 와타나베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우리들 모두 언젠가는 그렇게 죽는 거야. 나도 당신도.”

두 사람은 레이코가 걸어왔던 긴 여행의 여독을 씻기 위해 목욕탕을 다녀왔고 그리고 그의 툇마루에 앉아서 포도주를 마셨다. 두 사람 외에 또 하나의 잔에 포도주를 따라서 정원 석등 위에 올려다놓고 레이코 여사는 기타를 치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우리 둘이서 나오코의 장례식을 치르는거야. 쓸쓸하지 않은 장례식을 위해서 말이야.”

레이코 여사는 나오코가 좋아하던 디어하트,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 예스터데이........ 등등 50곡을 연주하고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충분합니다.”

“좋아요, 와타나베. 이젠 쓸쓸한 장례식은 깨끗이 잊어버려. 그리고 이 장례식만을 기억해요. 멋있었지? ”

마지막 덤으로 바하의 푸가까지 연주한 후에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와타나베, 나와 그거 해.”

그리고 두 사람은 당연한 일처럼 서로를 안고 서로의 육체를 갈구한다. 와타나베가 그녀의 몸을 애무하면서 따뜻하게 젖은 그곳에 손을 갖다대자 19살 연상인 레이코 여사는 농담까지 한다.

“거기가 아니야. 그긴 그저 주름일 뿐이야.”

“이럴 때도 농담밖에 못해요?

“미안해.”

“두려워, 난. 이미 오랫동안 안 했었으니까. 어쩐지 열 일곱 살의 여자아이가 남자 아이 하숙집에 놀러갔다 벌거숭이가 된 기분이야”

“정말로 열일곱 살의 여자아이를 범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다음 날 레이코 여사는 새로 정착할 곳을 향해 기차를 타려고 역에 나갔다. 기차역에서 울고 있는 레이코를 향해 와타나베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끌어안고 키스를 했다. 이 장면의 지문에서 와타나베는 이렇게 말했다.

“곁을 지나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우릴 훔쳐보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것엔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 있었고, 계속 살아가는 일만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요양원 바깥의 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오랫동안 지우지 못했던 레이코 여사는 마침내 이렇게 말하면서 새 삶의 현장으로 떠나갔다.

“행복해.”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소설에는 불화가 없다는 것이다. 그 무엇을 상실했지만 그 끝에서 그들은 더 깊은 화해, 더 넓은 삶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섹스라는 것도 이처럼 서로의 깊은 어루만짐, 깊은 만남에서 나오는 것이라야 진정 인간의 것, 더 나아가서는 신의 아름다움까지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워 혼자서 살 궁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울며 불면서 억지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다음에 되고 싶은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서는 신체상의 결격으로 불합격되어 그나마 일년 남짓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한 적이 있고, 다음에 정립회관에서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2급 지체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87년에는 친구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았고 94년에 동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김미선씨의 글은 한국DPI 홈페이지(www.dpikorea.org)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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