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남편이 회사 바로 앞에 있는 묵정 공원에서 꽃씨를 받아왔다. 주차장이 공원 지하에 있어서 휠체어를 타고 매일 그 공원을 들락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꽃이 있어서 가을에 그 씨를 받아온 것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것은 먼지처럼 희미한 씨앗이었다.

올봄 늦게서야 베란다 구석에 포개져 있던 작은 화분에다 그 씨를 뿌렸더니 연한 실같은 싹이 아른아른 돋아났다. 이걸 큰 화분에 옮겨주어야 될텐데....... 볼 때마다 중얼거리기를 거의 한달 가까이 하다가 드디어 화원에 가서 큰 화분을 구해다 옮겨 심었다. 너무 가늘어서 손끝으로 만지는 것조차 애처롭더니 이제는 제법 튼실한 꽃나무가 되었다. 더 크기 전에 화분 한 두 개를 더 구해 와서 서로 널찍하게 옮겨 심어주어야만 가을까지 마음껏 자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베란다 아래에도 갖가지 나무들이 초록의 군락을 이루고 그 아래 흐르는 조그만 개천에도 푸른 풀들이 물결처럼 바람에 흔들리면서 초록의 향연을 마음껏 펼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렇게 자라나는 초록빛 생명을 볼 때마다, 이게 어디서부터 왔는가 싶어진다. 어디서부터 와 이렇게 무성하게 자라고, 색색의 화려한 꽃을 피워내고 가을에는 자신의 몸이 휘어지도록 열매를 맺는가, 싶어진다.

지금 우리 집의 이 꽃나무도 잎들이 이제 어른 엄지손가락 만큼이나 자라서 앞다투어 피어나고 있는데도 물을 조금만 심하게 뿌리면 옆으로 휘청 넘어질 정도로, 아직도 하얀 뿌리가 얕고 가늘다.

그렇다면 이들이 누리는 자양분이란 햇빛과 공기, 그리고 내가 수도꼭지에서 받아다주는 수돗물뿐일 것이다.

나는 또 이렇게 아주 간결하게 살고 있는 초록빛 생명을 볼 때마다, 우리 인간들이란 왜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먹고 마셔야 되는가 싶어진다.

주로 바깥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시장을 봐오는 내 손에는 매번 시장바구니와 비닐 봉다리가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슈퍼에서는 반찬거리를, 싸게 파는 노점에서는 과일을, 빵집 앞에서는 빵을, 지나칠 때마다 사고 또 사지만 금방 또 동이 나고, 새로 사야할 것들로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체크되고 있다.

늘 간편하게 먹고 마시고 싶은 나는 혼자 집에 있을 때면 식은 밥에 우유를 넣고 끓여서 오이나 마른 멸치를 된장이나 고추장에 찍어먹곤 한다. 그리고 맑은 생수 한 컵 마시고 나면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가 않다.

그 대신 현미와 잡곡을 넣은 거무레한 밥이어야 한다. 겨울에는 주로 검정콩을 넣지만 요즘 초여름에는 완두콩을 한웅큼씩 넣어서 먹는다. 연한 연두빛으로 색깔도 어여쁜 그걸 씹을 때마다 달콤하고도 향기로운 즙이 톡 터져서 반찬이 없어도 심심하지 않고 영양면에서 부실하지도 않다.

조금 더 지나면 연보라색 동부콩도 참 맛있을 때다. 우리 시어머니께서 건강하실 때는 집 옆의 남는 땅에 동부를 키워서 가을까지 실컨 먹도록 갖다주곤 하셨는데 돌아가시고 난 지금은, 그 맛있는 동부콩을 먹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깐 나한테는 콩을 수북하게 넣은 잡곡밥이 가장 바람직한 인스턴트 음식이다. 조리법이 복잡하지도 않은데 그 밥만으로도 거의 대부분 영양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새삼 밥의 존재가 고마워진다.

그래서 나는 아들과 함께 마트에 가지 않는 한, 라면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살 기회는 거의 없다. 어쩌다 뭘 시켜먹을 때도 치킨이나 족발 하나를 시켜서, 집에 있는 밥과 같이 먹는다. 거기다가 된장찌개 하나만 더 곁들이면 더욱 만족이다.

그리고 기름에 튀기는 음식은 집에서 전혀 하질 않는다. 뒷설거지가 괴롭던 차에 몸에도 좋질 않다니, 얼씨구나 하면서 요리목록에서 아예 빼버렸다.

어떻게 하면 간편하고 빨리 할 수 있을까, 시시탐탐 그런 음식만 노리다보니 잡채를 해먹은 지도 오래됐다.

“잡채는 엄마가 한 것이 제일 맛있는데.......”

아무거나 잘 먹는 우리 아들이 모처럼 잡채타령을 하는 바람에 당면을 사다놓기는 했는데 못해준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내 욕심 같아서는 잡곡밥에, 생된장에, 생야채 한두 가지, 그리고 마른 멸치만으로 매끼를 먹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 집 남자들은 다양하고 맛있는 밥상을 원한다. 더욱이 한 남자는 일하느라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고, 어린 한 남자는 아직 더 튼튼하게 자라야 하고, 경험의 폭도 더 넓어져야하느니 만큼 벌써부터 정해진 식단만으로 딱딱하게 키울 수는 없을 것 같다.

고로 식사 준비에 대한 내 스트레스를 아직은 확 줄여버릴 수 없는 시점이다.

그래도 나는 햇빛과 공기, 그리고 물만으로도 넉넉하게 살고 있는 초록 생명들이 부럽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워 혼자서 살 궁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울며 불면서 억지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다음에 되고 싶은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서는 신체상의 결격으로 불합격되어 그나마 일년 남짓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한 적이 있고, 다음에 정립회관에서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2급 지체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87년에는 친구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았고 94년에 동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김미선씨의 글은 한국DPI 홈페이지(www.dpikorea.org)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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