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이 별일 없지예?” “내사(나는) 아무일 없다. 일이 힘들제? 퍼뜩 집에 들어가 쉬어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오면서 서울사람이 된지 어언 20여년이 된 아들과 한 평생을 자식만을 위해 온갖 고생을 감내하며 살아오신 무뚝뚝한 경상도 어머니의 전화 통화 내용입니다.

워낙에 성격이 무뚝뚝 하다보니 자식에게 이러쿵 저러쿵 하신적이 없고 자식들도 마찬가지이다 보니 통화시간은 항상 2분을 채 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렇게 전화를 받으시던 고향의 조그마한 방 한쪽 벽면에는 빛바랜 해군 모자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습니다. 10여년전 당신의 막내 아들이 군복무를 위해 근무할 때 잠시 썼던 모자인데 들를 때 마다 그냥 치워 버리라고 말씀드려도 항상 벽면에 걸어둔 채 매일 바라보며 멀리 있는 자식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3월 초 어느날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빨리 내려올 수 있나?” 라는 누나의 울음섞인 소식은 그 동안 잘 버티어 오던 서울의 막내아들을 꼬꾸라 뜨려 버렸습니다.

어머님께서 평생 나의 곁에서 머물러 계실 것이라 착각하여 고향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하길 차일피일 미뤄왔던 나의 어리석음과 세상에서 하나뿐인 소중한 어머니를 이제 다시는 뵙지 못할 것이란 비통함과 죄인된 심정으로 어머니를 보내드렸습니다.

그날 몇 십년만에 내린 폭설로 인해 고속도로가 완전히 막혀 서울에서 문상을 오려던 많은 분들이 눈길에 막혀 장례식장이 있던 부산까지 오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셨고 “나 때문에 고생하며 여기까지 올 필요없다. 쓸데 없는 짓 하지마라” 어머니께서 항상 나에게 그랬듯이 다른 분들께도 폐를 끼치지 않으시려는 듯 밤새 눈이 쏟아졌습니다.

이제 용기를 갖고 다시 일어서려 합니다. 소중한 사람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에는 서로 다시 만날 것을 믿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살고자 해서 입니다.

부산에서 태어난 박수성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에서 소아정형, 사지기형교정 및 뇌성마비 담당교수로 재직중이다. 장애 아동에 대한 배려가 선진국에 훨씬 못 미치는 현실에서 다리에 생긴 기형이나 뇌성마비로 인해 보행이 힘든 이들을 치료하여 장애의 정도를 최소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이 칼럼을 통하여 장애와 연관된 여러 질환들에 대한 유익한 의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 또는 그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한다. ◆ 홈페이지 : www.hib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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