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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endent Living』을 번역할 때, 「자립생활」로 할 것인가, 「독립생활」로 할 것인가에 대해, 지난 호 칼럼의 꼬리말로 질문을 던져주신 이계윤목사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의 의견들이 분분한 듯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립생활」이 더 적절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둘 중의 어느 하나를 '절대적으로' 찬성 또는 반대할 것까지는 없을 듯도 합니다. 어느 것으로 표현하더라도 『Independent Living』의 철학은 그 번역표현과 상관 없이 그 가치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제가 「독립생활」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사전적 의미(한영사전)에서 독립의 경우에는 분리(separation), 고립(isolation) 등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몇가지 이유가 더 있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이 문제와 관련하여 '삼애마당'에 기고했던 글을 아래에 싣습니다. 더 많은 후속논의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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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endent Living』을 한국어로 표기할 때, 「자립생활」로 할 것인가, 「독립생활」로 할 것인가에 대해 사람에 따라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둘 중의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본래 『Independent Living』의 의미를 떠올리게 되겠지만, 혼선을 막기 위해서는 어느 하나로 통일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에 필자는 「자립」, 「독립」 중에서 「자립」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하는 바, 그 이유를 몇 가지 제시해 본다.

첫째, 「자립」보다는 「독립」이 ‘물리적’인 느낌을 강하게 준다. 『Independent Living』이 물리적으로 떨어져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정신적으로 ‘independent’한 것을 강조한다고 보면 「자립」을 사용하는 것이 보다 적합하다.

「자립」과 「독립」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에서 보듯이 사전적 의미가 거의 비슷하다고 하겠다.

자립(自立)

〔자립만[-림-]〕ꃃ①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섬. ¶자립 경제/외세를 배척하고 자주 자립만을 고집하는 대감을 항상 눈엣가시처럼 못마땅하게 여기던 왜국의 사신이….≪유현종, 들불≫/은행에 취직이 되면서부터 윤구는 하숙을 얻고 나와 자립 생활을 시작했다.≪황순원, 나무들 비탈에 서다≫ ②스스로 제왕의 지위에 섬.

(표준국어사전)

독립(獨立)

〔독립만[동님-]〕ꃃ①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됨. ②독자적으로 존재함. ¶독립 초소. ③〖법률〗개인이 한 집안을 이루고 완전히 사권(私權)을 행사하는 능력을 가짐. ④〖정치〗한 나라가 정치적으로 완전한 주권을 행사함.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과 외국에 대하여 정식으로 한국의 독립을 선포하는 성대한 식전을 거행하였다.≪채만식, 낙조≫

(표준국어사전)

한편, 한영사전을 찾아보면, 비슷하면서도 약간의 차이를 보여준다.

자립(自立)

『독립』 independence; 『자활』 self-support[-reliance]. ∼하다 be-come independent; stand on one’s own feet; establish oneself; support oneself.

(한영 엣센스사전)

독립(獨立)

① 『자립』 independence; self-help (자조); self-reliance (자립); self-support (자활). ∼하다 become independent; stand on one’s own legs; stand alone; paddle one’s own canoe.

②『정치적』 independence; freedom. ∼하다 become free and independent.

③『분리』 separation;isolation (고립). ∼하다 be separated from; separate oneself from; be isolated.

(한영 엣센스사전)

영어 유의어 사전에서 ‘independent’의 의미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independent

a. autonomous, individualistic, self-reliant, unconstrained, free, self-governing, sovereign, affluent, solvent, wealthy, well-off, aloof, detached, separate

ant. dependent, enslaved poor

영어 유의어 사전에서 ‘independent’의 의미는 ‘self-reliant’나 ‘separate’의 의미로 바꾸어 표현되지만, 『Independent Living』의 이념을 만든 사람들은 ‘self-reliant’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지, ‘separate’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 아님을 이해한다면, 「독립」보다는 「자립」이 더 적절한 표현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영사전의 경우, ‘self-reliance’나 ‘self-support’의 의미는 「자립」과 「독립」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지만, ‘separation’나 ‘isolation’, 즉 ‘분리’나 ‘고립’의 의미는 「자립」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고, 오직 「독립」에만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독립」은 「자립」보다도 물리적으로 떨어져서, ‘분리’되고, ‘고립’되어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Independent Living』에 의미를 ‘분리’나 ‘고립’의 의미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서도 「자립」이 더 적절하다고 하겠다.

둘째, 『Independent Living』을 논할 때, 우리가 법하기 쉬운 오류 중의 하나는 『Independent Living』을 ‘자립(독립)해서 살아가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외형적으로 자립(독립)하는 것을 『Independent Living』으로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Independent Living』은 외형적으로 자립(독립)하지는 못한 상태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이념인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즉, 외형적으로 자립(독립)하지는 못하는 현실 속에서 부모의 슬하나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이나 정신지체장애인들 역시, 『Independent Living』의 이념을 갖고,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한계 내에서) 보장 받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상대적 자립(relative independence)'의 의미 역시 『Independent Living』의 이념인 것이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떨어지는 것의 의미가 강한 「독립」 보다는 「자립」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자립」과 「독립」의 한자표현에서 각각 한자의 어감을 살펴보면 자립의 ‘自’자는 긍정적으로, 독립의 ‘獨’자는 부정적인 느낌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independent’하게 살아가는 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임을 감안하면 「독립」보다는 「자립」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自’자와 ‘홀로 獨’자를 자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뜻풀이가 되어 있고, 그 한자를 사용하는 단어들에는 아래와 같은 것 들이 있다.

自(스스로 자)

스스로, 몸소, 자기, 자연히, 저절로, ~로부터

자가(自家), 자각(自覺), 자결주의(自決主義), 자급자족(自給自足), 자긍심(自矜心), 자기반성(自己反省), 자기소개(自己紹介), 자기결정권(自己決定權), 자립심(自立心), 자부심(自負心), 자아(自我), 자원자(自願者), 자유(自由), 자치(自治), ...

獨(홀로 독)

홀로, 홀몸,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 홀어미, 자손이 없는 사람, 어찌

독거(獨居), 독녀(獨女), 독자(獨子), 독단(獨斷), 독백(獨白), 독보적(獨步的), 독선(獨善), 독식(獨食), 독자(獨自), 독재(獨裁), 독점(獨占), 독주(獨走), 독창(獨唱), 독탕(獨湯), 독학(獨學), ...

넷째, 『Independent Living』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어, 사용되기 시작할 때 통상적으로 사용되었던 ‘자립생활’이란 표현을 이제 와서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에서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Independent Living』의 이념을 받아들여서 정착시켰고, 그 한자적 표기가 ‘自立生活’이며, 그것을 도입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인데,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다른 표현으로 바꿔야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단어는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전화기를 ‘핸드폰’이라고 쓰고 있는데, 실제로 이 물건은 ‘셀룰러 폰(cellular phone)'이나 '모바일 폰(mobile phone)’이라고 불러야 할 테지만, 우리가 ‘핸드폰’이라고 계속 사용하는 것은 ‘전부터 쓰여져 내려오던’ 관습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립생활’이라고 쓰여져 내려오던 관습을 존중하고, 지구촌 시대를 살면서 같은 한자문화권인 이웃 나라들과 공통적으로 표기하는 것이 유의미한 일이라면, 「독립」 보다는 「자립」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할 것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Independent Living』을 「독립」 보다는 「자립」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는 필자의 의견을 제시해 보았다.

『Independent Living』이 전파되어 나가려고 하는 시기에 혼선을 막고 통일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제는 우리나라가 그 시기에 와있는 듯하다. 이에 이 글에 나타난 필자의 의견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들이 제시되고, 논의되어 하루빨리 하나로 통일된 표현으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립」으로 표현하든, 「독립」으로 표현하든지 간에, 『Independent Living』이 처음 생겨났던 당시의 그 고귀한 뜻을, 훼손됨 없이 이 땅에 전파시키는 일이 아닐까 싶다.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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