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이었지요
파아란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가리우던 그 어느 날.
거리에는 떨어진 낙엽이 뒹굴고
소용돌이치는 바람에
땅바닥에는 해일이 일고
나는 잠시 멈춰 있었습니다.
하나 둘씩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는 것
사람의 생에서
늘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요
어제도 그렇듯이 내일도 그리할 것인데
오늘 그 아픔을 잊지 못하여 잠시 서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사랑!
그 진부해 보이던 단어가
오늘은 왜 이리도 사무치게
가슴 속 깊이 박혀 튀어 나오지 않는 것인가요
사랑보다는 좋아한다는 말을 더 좋아하던
나에게
아직도 사랑으로 아파하는 여린 마음이 있었던가 봅니다.
아마 그래서
거리를 걷다가 돌부리에 채여서 넘어졌지요
가방은 저 멀리 도망가 버리고
나를 버텨주던 목발도
향방 없이 부숴졌지요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아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였기에
PASSION
열정과 고통.
나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저주할 수도 축복할 수도
없는 나의 삶을
종종 지팡이를 짚고 방황하는 이들을 볼 때면
그 속에 남아있는 나를 지우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 자리를 떠나지도 못한 채
하지만
이제 다시 발을 옮기려고 합니다
마치 걸음마를 시작하는
어린 아해처럼
세상의 빛을 처음 본 어린 생명처럼
더듬거리며 뒤뚱거리며
땅바닥으로부터 떨어지는 훈련을 시작합니다.
언제가 완전히 뛰어올라 땅을 밟지 않는
그 날을 향해서
이젠
땅거미가 온 땅을 가득 덮게 되었습니다.
저 검은 구름 아래
회오리 치는 바람과 아울러
메아리 치는 함성의 소용돌이
그리고 또 그곳을 떠나는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구름 위에 있는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무엇이 구름 아래서 일어나고 있는 지를
이제
밝은 아니 뜨거운 햇살이
나를 감싸 안아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