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를 받은 터키의 축구선수

“「장애」를 정의하지 마라!”

지난 1월 초에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최된,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워킹그룹회의에서 워킹그룹 초안 제3조 ‘정의(Definitions)’ 부분에 관한 협의 중, 일부 의견으로 「장애」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말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는 곧 반대 의견에 직면하게 되었지만 결국 일부 의견이란 토가 달려서 각주에 명기되었다.

"장애인권리조약을 이야기하면서 「장애」를 정의하지 말라고?"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의 ‘정의(Definitions)’ 조항에서는 「접근성(Accessibility)」, 「장애(Disability)」, 「차별(Discrimination)」, 「언어(Language)」, 「정당한 편의제공(Reasonable Accommodation)」,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등, 핵심적인 주요 개념들을 정의하게 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장애」란 개념이 무엇인지를 정의하지 말자고 하는 주장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펼쳤던 사람들은 ‘장애의 복잡성과 조약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장애」의 정의는 그동안 많이도 바뀌어 왔음을 알 수 있다.

1975년 UN은 「장애인권리선언」에서 장애인을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불완전함으로 인하여 일상의 개인적 또는 사회적 생활에서 필요한 것을 자기자신으로서는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정의함으로써 장애는 곧, 손상(Impairments)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었다.

국제장애인권리조약 관련 국제회의의 모습

1980년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손상, 능력장애, 사회적 불리의 국제장애분류(ICIDH :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Impairments, Disabilities, and Handicaps)를 통하여 장애인에 대한 개념적 틀을 발표함으로써 장애를 각각 3단계의 보다 확대된 개념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2001년 5월 22일 제54회 세계보건회의(WHO 총회)에서는 환경요인이 강조된 보다 진보한 개념의 생활기능과 장애의 국제분류(ICF :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and Disability)를 만장일치로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장애에 대한 정의는 세월을 지나면서 계속되어 진보되어 왔으며,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진보해나갈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만들어야할 국제장애인권리조약에다가 제정 당시의 개념으로 한정하여 정의를 싣게 된다면, 세월이 흐른 후 우스운 꼴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아마 그러한 반대의견에 포함되어있을 것이다.

최근에 자립생활이 많이 논의된다는 것이, 자립생활을 주장하는 한 사람으로서 매우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점들도 많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립생활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잘못된 이해 중의 하나는 자립생활을 하나의 ‘서비스 모델’ 쯤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것처럼, 장애인복지에 있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접근 모델이 나온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자립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서의 장애인을 바라보는 이념이자 철학이다. 그 이념을 실천하는 과정 속의 한 방법론으로서 자립생활의 서비스가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에 자립생활이 하나의 서비스 모델에 국한되는 것이었다면, 미국에서 태동되어 30여년이나 지난 지금에, 머나먼 한국 땅 장애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지금 이 시간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자립생활」을 정의하지 마라!”

이는 곧 자립생활의 개념을 제한하고 축소시켜서 받아들이려는, 편협한 사고의 소유자들에 대한 경고가 담긴 역설(逆說)일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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