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소의 포스터.

누구나 존재의 이유나 실존의 문제에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실존의 필수조건이라고 믿었던 것이 예상치 못했던 고통에 맞닥뜨리게 되고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물음도 누군가에게 한번은 들어본 물음일 것이다.

지난 2월 동숭아트센터 하이퍼텍 나다에서 단관 개봉되었던 박경희 감독, 추상미 주연의 '미소'는 바로 그런 물음이 있는 영화다. 여기서는 장애란 매개체를 써서 이런 실존하는 모든 것들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주인공 소정을 통해 존재의 부조리함과 고통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으나 그 표현에는 큰 반전을 넣지 않고 아주 담담하고 일상적인 모습들로 구성되어 있다.

차츰 시야가 좁아져서 실명하게 될지도 모르는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린 사진 작가인 소정의 쓸쓸한 행로를 네개의 고리로 연결짓고 있다.

첫 번째 고리는 시야가 점점 좁아져서 끝내 실명할지도 모르는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린 소정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고 참으로 절망적이다. 애인 지석과 함께 계획했던 유학도 포기하고 지석과도 결별을 한다. .

두 번째 고리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에 내려간 그녀는 그곳에서 몸과 마음을 쉬려하지만, 가족들조차 안식처가 되어 주지 못한다. 육신이 아픈 어머니, 술에 취해 사는 아버지, 공격적이고 분열적인 오빠, 가족 모두가 불화를 안고 있을 뿐이었다.

세 번째 고리는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실험적으로 찍은 사진이 포커스 아웃된 것을 알게 된 소정은 사진작업에 위기를 느끼고 절망한다. 그 즈음 지석은 홀로 미국 유학 길에 오르고, 다시 그녀는 취재하러간 경주에서 오래된 고분 속의 벽화를 보며 세상과 단절된 듯한 죽음의 공간에서 그녀는 비상하고자 하는 열망을 느끼게 되고 이 열망은 초경량항공기를 배워 하늘을 날아 볼 생각으로 이어진다.

네 번째 고리는 경비행기를 배우러 나간 들판, 어디서부터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강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궂은 날씨 속에 서있는 소정. 그녀는 교관이 자리를 비운 사이 경비행기를 타고 강 위를 난다. 잠시 흐린 하늘에 회색빛 암전, 그 사이 비행기는 강물 속으로 추락하고 경비행기의 망가진 날개 위로 소정이 사력을 다해 기어올라온다. 찬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져 내린다

이 영화는 건조한 일상 속에서 곧 터져 버릴 듯한 소정의 내면이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해한 삶의 모습 그 자체임을 일러주고 있다. 하지만 소정이 절망하는 망막색소변성증은 실존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주면서도 새로운 출발을 암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추락한 비행기의 한쪽 날개에 의지해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소정처럼 사람들이 삶에 의지하는 것은 더 이상 내려 갈곳 없는 그곳에서 갖는 한 조각의 꿈이다. 깊은 통찰로 꿈꾸는 피안에 이르고자 하는 간절함과 이를 수 없는 실존의 슬픔에서 삶은 다시 시작하는 것임을...

우리는 자기인식의 좁은 한계에서 갇혀서 삶의 본질을 보지 못함은 물론 눈앞에 직면하고 있는 물리적인 실체도 깨닫지 못하고 인식의 한계에 갇혀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이 혼자인 것을 머리 속에서 인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연인도 가족도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절망과 고통에 동참할 수 없고 결국 자신의 몫임을 알게 해준다.

소정은 운명과 굳이 싸우려고 들지 않는다. 그녀는 비행을 배우고 점자 읽는 법을 배우며 빛을 볼 수 있는 기간 동안 최대한 자신이 원했던 일들을 하느라 애쓴다.

그리고 고통을 넘어 다시 서는 것 또한 삶에 함몰되지 않은 이들만이 얻을 수 있는 반가사유상의 미소처럼 스스로 깨닫는 것이지 누구에겐 가 의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미소는 페미니즘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위주의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영화는 아니다. 언제나 살아남으려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만들어 내려는 한 여성의 내면을 비춰보고자 했던 흔적이 묻어 있다.

이제 소정은 다시 한번 내게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강물에 빠져 부서진 비행기의 날개 위로 사력을 다해 기어오르던 자신처럼 아무리 부서져도 한 줌 희망으로 다시 일어서는 게 인생인 것을 잊지 말도록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지금도 강 가운데 추락한 경비행기의 날개 위에 앉아 온몸 속속들이 비를 맞고 있는 소정과 긴 대화를 나누려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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