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가들은 천재라는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로댕은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보통사람의 손으로 조각이 시작되었지요. 그러나 그는 신의 손을 지닌 인간으로 재탄생 되었지요.

오귀스트 로댕은 조각가로 알려져 있고 그의 조각은 위대합니다. 그러나 그의 누드화에 홀려 누드화만을 모아 보았습니다.

다리를 든 여인 무제

Nu aux jambes EcartEes (Nude with legs spread), circa 1900 - 1914

Graphite and watercolor on wove paper 19.3 x 20.8 cm

Achenbach Foundation for Graphic Arts purchase

"Elle semblait revenir..." (pg. 163) in the book Le Jardin des supplices (Garden of Torments) by Octave Mirbeau (Paris: Ambroise Vollard, 1902)., 1898

Lithograph on Japan paper overlaying lithograph (color) on wove paper

Gift of the Reva and David Logan Foundation

베르나르의 평전에서 '로댕'을 언급하기를 평생 조각과 여인에만 매달렸던 이 거장의 삶 구석구석을 냉정한 시선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누드 '상'의 주제였던 육체적 욕망은 일평생 그를 추동하고 괴롭혔던 화두였다고 합니다.

정원에서 고뇌하다무제

"Et le nom de Clara,..." (pg. 158) in the book Le Jardin des supplices (Garden of Torments) by Octave Mirbeau (Paris: Ambroise Vollard, 1902)., 1898

Lithograph on Japan paper overlaying lithograph (color) on wove paper

Image: 283 x 199 mm

Gift of the Reva and David Logan Foundation

"Une splendide crEature..." (pg. 9) in the book Le Jardin des supplices (Garden of Torments) by Octave Mirbeau (Paris: Ambroise Vollard, 1902)., 1898

Lithograph on Japan paper overlaying lithograph (color) on wove paper

Image: 121 x 73 mm

Gift of the Reva and David Logan Foundation

로댕의 드로잉 작업은 조각작품의 준비단계 라기보다 드로잉 그 자체로도 독자적인 작업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여성을 만났으며 그 많은 여성의 인체는 그가 창조해내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체의 유연한 움직임을 면밀하게 포착한 누드화를 보면, 그가 한때 수학을 잘하였던 수도사였다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수도원에 가게된 경위는. 로댕이 22살이던 1862년 누이의 사망으로 로댕은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수도원 생횔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인 자주색치마의 댄서

Femme nue assise et de dos 1899

by Auguste Rodin

Dancer in Purple Skirt-non authentic,19th - 20th century graphite under watercolor 35.3 x 25.1cm

Gift of Alma de Bretteville Spreckels

오귀스트 로댕은 1840년 11월 12일 파리 아르바레트가 에서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14세가 될 때까지 집안의 골치거리로 아주 열등한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로댕은 우연히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엮은 판화집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는데요.

그것은 로댕에게 예술가의 생을 좌우하게된 결정적 순간이었지요. 로댕의 조각은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그는 조각을 선택함으로서 사회적 장치인 제도라는 이름으로 그의 작업은 외면되었지요. 가난과 상처라는 예술가로서의 고된 일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로댕의 조각에 있어 "청동시대" 작품은 마치 인간이 숨쉬고 있는 듯한 사실감으로, 살아 있는 모델에서 직접 석고형을 뜬 것이 아니냐는 근거없는 비난과 의심을 받아야 했습니다. "청동시대" 이후 그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제작으로 20세기의 문을 활작 열어버린 걸작 '지옥의 문'(1880~1900)이 탄생하게 되는데요. 또한 로댕은 20년을'지옥문'과 씨름했지만 작업은 미완으로 남겨두고 갔습니다.

베일을 든 여인폭풍또는 파도

Nude Woman in the Movement of her Veils circa 1890

graphite, pen, inks, watercolour and gouache on paper

17,5 x 11 cm

D.4309

Auguste Rodin

La Tempete ou La Vague (The Tempest or The Wave)

circa1900?

graphite and watercolour on paper

32,6 x 23,6 cm

그는 전통조각을 탐구하기도 했지만 그가 표현해온 인간실존의 모습은 18세기이래 건축의 부속물로 취급했던 조각을 독립된 예술 영역으로 구축했습니다. 이것은 회화의 패러다임이 일어났던 시대(1800-1900)에 독립된 조각을 열어간 인간 로댕의 대서사시였지요.

그의 미술사적 업적은 한세기의 문을 열었지만 그는 사후에 평가받은 외로운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로댕은 뇌졸증의 후유증으로 1917년 11월 10일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누드캄보디안댄서

Auguste Rodin

Female Nude, 1906

Cambodian Dancer Seated

by Auguste Rodin

<지옥의 문>은 1900년 파리박람회에 공개된 이후 로댕의 스튜디오에 석고상태로 남아있으며 한국 로댕갤러리에 있는 <지옥의 문>은 7번째 에디션입니다.

전 세계에는 7개의 로댕미술관에 <지옥의 문> 소장처가 있답니다.

(고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로댕의 지옥의 문으로 치면 7번째 강대국이 된답니다.)

강대국,,,맞나요?

그림출처 :

allposters.com/galler

파리 로댕갤러리 musee-rodin.fr

오르세 미술관musee-orsay.fr/ORSAY/

서울 로댕갤러리 musee-rodin , kr/

필라델피아 로댕미술관

참고문헌

로댕-신의 손을 지닌 인간 : 엘렌 피네(이희재역)

로댕- 열화당 미술문고

로댕갤러리 홈페이지

음악:베르디의 춘희 中 지난날이여 안녕

March 24th 2004

지전 김종순은 태어나 첫 번째 생일이 되기 바로 전 소아마비를 앓았다. 어릴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지전은 몇 번의 그룹전을 하고 난 후, 그냥 그림 그리는 일이 심심해져서 첫 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1000호의 화선지위에 올라타고 앉아 음악을 그리는 일(퍼포먼스)을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지전의 화두는 '청각적 시각, 촉각적 시각'이다. 그녀는 음악을 그리는 일은 새로운 방식의 일이어서 일상에서 거의 유배된 생활 같아 가끔은 마음이 저릴 때도 있지만 많은 예술가들의 삶을 쓰면서 위로 받게 되었다고. 최소한 평등한 인간의 모습을 성실하게 기록함으로써 이웃과 소통하며 그녀가 소망하는 평등한 세상이 비록 희망뿐이더라도 그 표현의 여러 기록중 하나이고 싶기 때문이다. 18회, 19회 미협에서(국전) 2번 입선. 이화여대 경영연구소 蘭谷書會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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