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느라고 아프다.

새 봄을 맞이하기 위해 온몸이 다 욱신욱신거린다.

봄은 저 들판에서도 달려오고 하늘 끝에서도 내려오고 강물에서도 실려 온다. 저 깊은 심해에서도 밤새워 자기 몸을 뒤척이고 내 몸도 또 한 번의 봄을 맞이하기 위해 숨가쁘게 바쁜 중이다.

나는 내 몸이 이렇게 힘든 줄도 모르고 투정을 부린다.

왜 이렇게도 신통찮은 몸이란 말인가!

잘 때마다 몸이 뻣뻣해져서 아침에 일어나면 오른쪽 견갑골의 아래쪽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뻐근하다. 그나마 일주일에 두 번 목욕탕에 운동하러 가는 것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질 못해서 못 간다.

가슴에 통증까지 생겨서 혹시 오래된 비염의 후유증인가 싶어 병원까지 간다. 다행히 그건 아니라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도 가슴이 아파서 일을 못하고 도로 일어난다. 혹시 운전 때문인가 의심을 해본다. 한 손은 핸들을, 한 손은 핸드 콘트롤을 잡고 두 세시간 꼼짝 못하고 앉아 있으면 어깨도 팔도 뻐근하다. 요새는 눈까지 아파서 틈틈이 눈가를 문지르느라고 운전하는 손이 더 바쁘다.

그래도 월경을 한다.

14살에 온갖 구박과 눈치를 다 받으면서 시작되었던 이것은 이제 35년째 줄기차고도 끈질기게 자기가 여성임을 주장하고 있다.

하기야 재작년 대퇴수술을 하고 숨도 못 쉬게 아픈 중에도 생리는 의연하게 자기 일을 다했다. 서른 살이 다 되어서야 성 경험을 하고 33살에 아들 하나 낳은 것으로 출산은 끝을 냈으니 이제 제 역할을 마치고 돌아갈 때도 됐으련만 끈질기게 자기를 주장하며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소아마비들은 대부분 짝궁뎅이라 자칫하면 출혈이 바깥으로 새어나와서 창피당하기 십상이건만 그래도 떨어질 수 없는 친구처럼 한 달에 며칠씩은 꼭 붙어서 다닌다.

전에는 생리통에다가, 생리전 증후군까지 있어서 한달에 반 가까이는 고통의 나날이었다. 심할 때는 배란일 때에도 통증이 있어서 이래저래 빼고 나면 한달에 빼꼼한 날은 1주일도 채 되지 않을 정도였다.

더구나 한동안은 죽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던 때도 있었다.

모든 일이 다 너무나 비관적이고 회의적이어서, 아무래도 죽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막 들어서 달력을 보면 생리일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곤 했다. 이른바 월경 전 증후군이라는 것이었다. 책에서 보니까, 복부 팽만감에서부터 정서불안, 여드름, 피로감, 가슴 팽창과 통증, 우울증, 불면증, 단 것 탐식증, 자살 충동, 구역질 등 아주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때의 내 건강은 최악이었고, 나는 다시 살아보기 위해서 풍욕, 냉온욕, 기운동과 명상, 스트레칭, 부정적인 의식의 전환 등등, 할 수 있는 짓은 다 했다.

그리고 건강해졌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건강하지 않은 몸까지 끌어안을 마음의 여유가 생겨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한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 내 몸은 그 이유를 받쳐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몸과 의식이 소통되어야 했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영혼은 영혼대로 따로 제각기 놀아서는 몸이 내 의식을 받쳐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소통의 자리에 월경이 있다.

몸과 마음이 안정을 찾으면서 내 월경주기는 정확히 28일이 되었다.

자연과 교감하는 여성의 몸은 달이 뜨면 함께 부풀어오르다가 보름달이 되면 배란을 하고 그리고 달이 기울어져서 사라지면 월경을 시작한다. 그래서 많은 고대 문화권에서는 여성들은 달과 호흡하는 중이라고 생각을 해왔다. 이건 대지의 주기이자 밀물과 썰물, 계절의 변화와 같은 자연의 주기가 여성에게는 월경주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배란이 되기 전의 생리 초기에는 새로운 생명을 배태해나가는 가장 외향적인 열정과 에너지로 충만해지는 때라고 한다. 이른바 봄인 것이다. 그리고 배란일을 맞이하여 절정에 올라 생기발랄해지다가 다시 달이 기울면서 월경을 시작하고 내면적인 시간으로 들어간다. 자연히 내성적으로 변하고 온몸에서도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체험한다. 바야흐로 겨울이다.

3월 들어 몸이 축, 축, 쳐지고 여기저기에서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해올 때, 그래도 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자신을 다잡아본다. 그러나 능률은 오르지 않고 짜증만 쌓여간다. 싸돌아다닐 일은 왜 그리도 많은지, 소득 없는 짓만 되풀이하는 것 같아서 자신이 한심해진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정처 없는 질문이 불쑥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이때 문득 창밖에 노란 산수유 꽃이 보글보글 맺혀 있는 것이 보인다.

얼마 전에 내린 폭설은 작은 시냇물이 되어 햇빛에 반짝이며 흘러가고 있었다.

저 연한 꽃을 피우려고,

견고한 땅속 얼음장을 깨고 저 보드라운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숨가쁘게 움직인 손길이 있었던가?

한겨울동안 움츠리고 있던 내 몸도 봄의 기운을 타고 지금 힘차게 가동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세포가 묵은 것을 벗겨내고 새 것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지, 내 심장이 얼마나 온힘을 다하여 전력질주하고 있는지, 그렇게 쏟아져 나온 폐기물을 처리하느라 내 간장은 또한 얼마나 몸살을 앓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내 속에 있는 내 것임에도 말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나마 자신의 몸을 바라볼 행운을 지닌 존재들이다.

달마다 치러지는 행사를 통해 사계절과 자연의 주기를 무의식중에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만물은 생성될 때의 활발함과 사라질 때의 적막함을 동시에 다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달이 지고나면 다시 초승달이 떠오르고 보름달로 완성되었다가 그믐으로 사라져버린다.

여성들이 자신의 몸 안에 뜬 달을 지워낼 때 다가오는 힘든 시기, 불안, 초조는 이러한 과정이 바깥으로 그 정체를 드러낸 것뿐이다.

이 때 내면의 소리가 바깥까지 들린다.

자신 속에서 함몰되고 상처받았던 그 무엇이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 외치고 있는 건강한 소리이다.

생산과 능률만을 향해 일률적으로 달려가는 사회의 분위기는 이걸 여성의 결점이라고 무시하거나 그냥 지나치라고 다그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소리가 아니다.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일찍 단명하거나 조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 소리에 신중하게 귀를 기울이다보면 진정 원하는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그 자아의 실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알게 되는 귀중한 자기 체험의 시간인 것이다.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하나로 되는 소통!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지지만, 더 좋은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워 혼자서 살 궁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울며 불면서 억지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다음에 되고 싶은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서는 신체상의 결격으로 불합격되어 그나마 일년 남짓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한 적이 있고, 다음에 정립회관에서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2급 지체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87년에는 친구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았고 94년에 동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김미선씨의 글은 한국DPI 홈페이지(www.dpikorea.org)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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