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못해 먹겠다”

누구도 날 대신해서 나를 실현시켜주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하려면 무작정 덜덜덜 떨고 본다. 사람들이 나보고 이야기를 잘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구태여 떨 필요 같은 건 없다고 아무리 세뇌를 시키고 스스로 주입을 해도 이런 간절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몸이 저 혼자 사시나무처럼 덜덜덜 떨린다.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어릴 때는 정말 심했다.

초등학교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 읽는 것이 오죽 많았는가.

그때마다 목소리가 벌벌벌 기어서 나오곤 했는데 정말 자존심이 상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왜 이럴까, 혼자서 고민을 하다가 드디어 발견해낸 결론을 아이들 앞에서 막 떠벌렸다.

“나는 마음이 떨리는 것이 아니야. 한쪽 다리로만 서서 읽으니깐 몸에 중심이 안 잡혀서 그래. 그래서 목소리가 떨려나오는 거야”

나의 이 애절한 항변을 담임도 들으셨는지 다음부터는 앉아서 읽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한결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떨리는 마음을 시원하게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또 학교와 사회라는 것이 언제나 앉아서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어서 상황에 따라 앞에 나가 발표해야 할 때도 많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는 아마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학부모회를 하고 나서 각자 반으로 들어오신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반 반장은 아이들에게 노래를 시키는 것으로 이 시간을 때웠다. 처음에는 특별히 노래 잘 하는 아이를 시켰지만 점점 공부를 잘 하는 아이 쪽으로 슬금슬금 대상이 옮겨져서 이때 지명이 되지 않으면 공부 못하는 아이로 찍힐 판이었다.

상황을 보니까 나도 지명이 되어질 대상이긴 한데, 몸이 이러니 반장이 부를 것인가, 말 것인가 혼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드디어 내 이름 석자가 불리어졌다.

이 때 빼고 나가지 않으면 분위기 망치는 주범으로 질타를 받을 것이 뻔했지만 그래도 내 처지가 처지이고 보니 안하겠다거나 앉아서 하겠다고 하여도 그냥 넘어갈 일이었다. 그러나 오기 하나로 버티는 나는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떨리는 가슴을 억지로 부여잡고 앞으로 나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우우우∼♬♪

(이 노래가 그렇게 오래된 노래가 맞는지 모르겠다. 만일 아니라면 아마도 이 비슷한 노래였을 것이다)

힘차게 불러야 할 행진풍의 노래를 멋모르고 시작해놓고선 목소리는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으니 내 처지는 상대적으로 더 불쌍하고 처량맞게 보였을 것이다. 이 때는 정말 음성만 떨린 것이 아니라 몸통 전체가 덜덜덜 떨렸다.

-그래서 나는 성악가이신 최승원씨를 너무도 존경한다. 다리가 부실하면 아무래도 목소리를 끌어안아야 할 복부의 힘이 허약할 터인데 어디서 그런 힘찬 목소리와 대중 앞에서의 배짱이 나오는지,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그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옴마가 그러셨다. 아주 조심스럽고도 조용한 낮은 목소리로.

“니는 사람들 앞에 나가서 꼭 그렇게 안 해도 된대잉”

그렇게 신난고난하는 중에 내가 발견해낸 방법은 확, 웃어버리는 것이었다.

크던 작던 나가서 발표를 하려고 앞에 서면 근엄한 사람들의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이게 나처럼 소심한 사람한테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이걸 보지 않으려고 시선을 주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나는 그게 또 허용이 안 된다. 같이 눈을 맞추고서 같이 공유되지 않으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전혀 못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써먹는 방법이 솔직하게 나를 토로하는 것이었다.

“아! 잘해보려고 어제 밤샘까지 했는데 왜 이렇게 떨리기만 하지요?” (과장법까지 써서)

이 때 사람들은 경계의 시선을 놓아버리고 웃음을 터뜨린다.

이렇게 나도 웃고 상대방도 웃어주면 한 순간에 그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피본(?) 일도 있다.

대학 졸업 논문을 발표하는데, 그 때 여수에서 다리수술을 한 다음이어서 준비가 부실했다. 그런데다 장르를 현대소설로 택하다보니까 평소에 내가 좋아하지 않던 분이 지도교수가 되셔서 흥이 나지가 않았다.

어쨌든 나는 내가 발견해낸 웃음으로 시종일관하며 논문 발표를 마쳤는데 그때 그 교수는 내용의 빈약함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왜 실실거리며 웃느냐는 지적만 하셨다. 상당히 기분이 나쁘다는 어투였다.

이런저런 속사정을 가진 나로서는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그렇게 이해가 잘 될 수가 없다. 이해가 되다 못해 마치 내 속에서 나온 말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복잡다단한 온갖 관점과 온갖 시각에서 이쪽 저쪽 온갖 의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데 대통령이라고 해서 어찌 전지전능만 하겠는가? 더구나 이해관계가 엇갈려 있을 때는 어떤 결론을 내려도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여태까지는 우리나라의 권력구조가 대통령을 전지전능하게 보이게끔 온갖 무력과 시스템을 다 동원했다면 이번 대통령은 그런 것을 다 털어버린 벌거숭이 대통령이나 마찬가지 처지가 되었다. 정말 대통령 못해 먹겠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정말 못하겠기 때문에 못해 먹겠다라고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상황은 정말 어렵습니다라는 공감대를 끌어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역대 대통령들은 그런 말을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중을 향해 결코 웃지 않고, 결코 허튼 말을 하지 않으며, 빳빳하게 굳은 얼굴과 기계적인 음성으로 일방적인 의사만 전하는 것이 소위 공식적인 언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쳐다보면서 그냥 대화하는 것처럼 공식적인 말을 한다. 또 공식적인 말을 하기 전에, 정말 대통령 하기 어렵습니다, 라고 어리광부리듯이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걸 가지고 티를 잡는다. 소위 대통령이라는 분이 이토록 무책임한 말을 남발할 수 있는가, 그러면서 말이다.

심정적인 말과 무책임한 말이 왜 동의어로 사용되어야 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상대방의 심정적인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쪽의 심정은 어디로 다 가버렸는가!

내 떨림을 해소하기 위해서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약함을 호소했을 때, 그들은 비난한 것이 아니라 경계를 풀고 기꺼이 웃어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웃어준 분들을 가볍게 여기거나 내가 해야 할 발표를 적당히 얼버무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의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어서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까지 확장되는 경험을 종종 할 수 있기까지 했다.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말만 할 것이지 왜 쓸데없는 말을 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절대적인 권력에 의지하고 싶은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나는 여겨진다. 믿을 말을 해서 무조건 믿게 만들어야지 왜 나로 하여금 헷갈리게 하느냐는 추궁이다. 더 나아가서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지 혼자 알아서 무조건 잘 해야지, 왜 나까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느냐는 비난이다.

나는 이런 추궁과 힐난은 너무 순진하지 않은가 싶다.

이 세상에 그 누가 있어서 절대적인 전지전능함으로 절대 선과 절대 이익을 베풀어줄 수 있겠는가.

얼마 전에 장애인 권리조약을 준비하는 자리에서 한국 DPI 회장이신 이익섭 박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1981년, UN에서 장애인의 완전 참여와 평등이라는 기치로 장애인의 해를 선포했을 때 나는 시대적인 감격의 물결에 떠밀려 내려가는 것 같았어요. '봐라! 역사의 도도한 물줄기는 이렇게 완전한 통합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장애인의 고난과 소외됨은 끝났다'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20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 '나는 그 때 왜 그토록 순진했던가'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건 그냥 사탕발린 당위성일 뿐이었지요. 주체도 없고 뿌리도 없이 슬로건만 난무하는.

역사의 진정한 발전은 당사자의 주체적인 운동으로 뿌리내림이 없이는 그 누구도 대신 만들어줄 수 없다는 어쩌면 단순하고 소박한 진실만을 이제 믿을 뿐입니다”

정확한 전달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이렇게 이해를 했다.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나를 실현시켜주지는 않는다. 실현시켜주겠다고 큰소리치는 이가 있다면 이야말로 명명백백한 사이비임을 증명할 뿐이다.

설사 나를 대신해서 그 누가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 속에 내가 빠져 있었다면 그 결과를 향유할 수 있는 양은 결코 100퍼센트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난 정말 대통령 못해 먹을 정도로 이 상황이 어렵습니다.

라고 솔직하게 토로할 때, 저게 제 정신이야? 그럴려면 왜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섰단 말이야, 라고 냉소하거나 불안해하기보다는 함께 손을 맞잡고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낼 일이다. 지금 이 시대, 국민들의 피와 목숨을 바쳐 가까스로 일구어낸 이 탈권위적인 작금의 시대에서는 대통령이란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한 수장일 뿐, 전지전능한 신이거나 그의 대역이 될 수는 결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 나는 노대통령의 정책적인 결정이 옳다고 무조건 편을 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의 언어적인 성향이나 심정적인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음을 다시 한번 더 밝혀두는 바이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워 혼자서 살 궁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울며 불면서 억지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다음에 되고 싶은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서는 신체상의 결격으로 불합격되어 그나마 일년 남짓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한 적이 있고, 다음에 정립회관에서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2급 지체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87년에는 친구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았고 94년에 동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김미선씨의 글은 한국DPI 홈페이지(www.dpikorea.org)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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