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설(春雪)

내릴 때는 나풀대는 나비같더니

풀잎 뒤에 숨었던 아침이슬보다도

빨리 지는 님

살포시 가슴에 앉더니

한줌 눈물이 되더라.

매화꽃 고운 시절에

가난한 영혼의 등불로 내린 님

고작해야 반나절의 목숨

아지랑이로 피었다가

금세 사라질 생일지라도

언제나 님은

영원한 원형의 그림자

눈앞에서 나풀대던 나비인 양

귓가를 스쳤던 바람소리인 양

처음엔 그져 님이었던 것을

수식없는 가슴으로 맞은 님

봄꿈에서 깨지도 않아서

다시 보낸다.

춘란이 꽃을 피우면 반가운 소식이 오거나, 기쁜 일이 생긴다고 했던가요?

친구가 잠자리 날개 같은 모양을 한 꽃대들이 보이더니 꽃망울을 터뜨린 춘란 소식을 꽃샘바람 편에 실어보냈습니다.

여인의 깊은 향기 같은 춘란의 향기는 여전히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니 이제는 가슴으로 향기를 맡지 말아야 할까 보다고 합니다.

산책길에 매화꽃 한 송이 따가지고 와서 찻잔에 띄우니 거실엔 매화향기로 가득하고,

지난 2주전 춘설을 묵묵히 맞고 섰던 매화꽃이 꽃샘바람결에 어지럽게 지는 모양이 꿈속인 듯도 하고, 분분히 날리는 꽃일들이 마치 그 날의 봄눈 같다 합니다.

자신도 꽃샘바람 앞에 매화 꽃잎처럼 떨며 지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러다가 봄눈처럼 스러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올해도 봄을 타는 것 뿐인데 말입니다.

올 3월엔 꽃샘추위가 유난히도 매섭습니다.

꽃샘바람이 잦아들고, 매화꽃 모두 질 즈음엔 옹이 진 늙은 감나무에도 물이 오를 터, 꽃샘추위가 아무리 매워도 의연하게 꽃을 피우고 옹이 진 가지에 새잎을 돋게 하는 봄처럼 살아야겠다고 합니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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