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부르는 것과 사진 찍기를 그 무엇보다도 싫어하다 보니 사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추억이 될만한 사진도 몇 장 없다. 서류에 붙일 증명사진을 찍거나 여행길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추억거리를 만들듯 찍곤 했지만 그 때뿐이고, 곧 잊어버리거나 미운 표정을 짓고있는 내 모습을 보곤 서랍 속에 넣고 닫아버린다.

하지만 여덟 살 적엔가 부모님과 두 여동생과 함께 찍은 빛 바랜 가족사진 한 장은 어릴 적 가족 사진이라고는 그것 한 장밖에 없어 애착이 가고 소중해진다. 이렇게 단순한 흑백 사진 한 장에도 깊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니 평생토록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진 한 장을 찾아 나서는 사진작가들이 있는가 보다.

토요일 늦은 오후, 미국에서 회사동료 3명과 잠시 귀국한 초등학교 동창생이 강화도의 역사를 둘러보러 가는데 함께 가자고 연락이 왔다. 조금은 쓸쓸하고 우울했던 기분을 풀고, 해안을 따라 붉던 노을도 다시 보고싶기도 하여 친구를 따라나섰다가 장화리 낙조마을에서 하루를 묶었다.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섬 속으로, 때로는 수백 여 척의 배의 품속으로 지기에 외롭지 않은 해, 수줍은 몸을 수평선 위에 황홀하게 태우고 서서히 스러지는 해를 바라보고 섰노라니 하루쯤 묵언을 하고 싶게 하던 온갖 상념들도 사라졌다. 옷섶을 풀어헤친 듯 슬그머니 바다 자락을 걷어올린 갯벌과 그 위에 드리워진 노을은 별다른 추억거리도 없는 옛날을 아름답게 해주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동료들과 사진을 찍던 친구는 사진 찍기를 사양하는 내게 오랜만에 본 노을지는 저녁풍경을 담아가지 않으면 섭섭하지 않겠느냐고 묻더니, 자신은 건축설계사답게 노을이 있는 집을 설계를 하고 있으니 마음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좋은 시 한편으로 인화하라고 하였다.

듣고 보니 옳은 말이었다. 밀물 때면 물결 잔잔한 바닷물을, 썰물 때면 드넓은 개펄을 아낌없이 붉게 물들이는 바다의 해질 녘 풍경과 "아!" 하고 터져나온 순간의 감탄사까지 담을 수 있고, 영원히 퇴색할 염려가 없으니 마음에 담는 사진만큼 좋은 게 없는 듯하였다.

우리들은 일생동안 "자신의 삶"을 테마로 사진을 찍고 있는 사진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귀로는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를 들어야 하고, 코로는 악취가 나든 향기가 나든 맡아야 하고, 눈으로 아름답든 추하든 모든 모습을 보아야 하고, 또 입으로는 쓰고 단 맛을 가려야 하는 삶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여과 없이 담아내는 것이다.

마음의 카메라는 날마다 너무 다양한 수만 컷의 사진을 찍는다. 그 중에 버릴 것은 버리고 둘 것은 기억 속에 두고 스스로 모든 것을 편집하면서 일체의 모든 행위와 생각들을 무의식 속에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나 속에는 근원을 찾을 수 없는 먼 과거로부터의 사진들이 저장되어 왔다. 전생의 나를 알고 싶다면 현재의 내가 처해 있는 모습을 보고, 다음 생의 나를 알고 싶다면 지금 내가 행동하고 있는 현재를 보라고 하였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을 중심으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 생각 하나까지 순간 순간을 담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초점을 어떻게 맞추는가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우리 인생도 구도의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또한 개개인마다 인생의 초점이 다르기에 동행하는 이에게 감동과 위로와 힘을 주는 사진으로 인화되는가 하면 아픔과 슬픔을 주는 사진밖에는 안 되는 수도 있다.

부정적 시선과 긍정적 시선 중 어느 것에 초점을 둘 것인지, 혹은 좁은 세상과 넓은 세상 어느 것을 클로즈업할 것인지,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기 위해 원근을 끊임없이 밀고 당기고 하면서 삶의 구도를 잡아가는 것이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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