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서 부부가 집에 들러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우리집 부근에 동서의 어릴 적 친구가 산다고 하여 같이 만난 적이 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중년의 그 부부는 밤늦은 시간이라 불가피하게 아이들을 집에 두고 외출을 하게 되었는데 수시로 집으로 전화를 하여 5살 먹은 늦둥이와 고등학교에 들어갈 큰 아이의 안부를 묻고 하였다.

그 부부의 말씀이 늦둥이를 보게 되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아이를 부모와 떨어진채로 집에 두고 나와 그런다고 양해를 구하였다.

중년에 늦둥이를 보는 부부가 가끔 있다는 말을 들은 터여서 그러려니 하였는데 가만히 사정을 들어보니 큰애가 경미한 정도의 뇌성마비를 앓아 둘째도 혹시 그럴까봐 걱정이 되어 둘째 아이를 아예 갖지 않으려다 보니 늦어지게 되었다는 말씀이었다.

사실 뇌성마비 아이를 가진 부모들로서는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런 이유에서 둘째 아이를 가지는 것도 망설여지는 것이다.

뇌성마비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출생 전후의 발달 중인 뇌 조직에 대한 손상이 원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약 35내지 40퍼센트는 조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뇌성마비의 가장 많은 원인을 차지한다.

조산으로 인한 미숙아에게서 뇌 손상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만삭아에 비해 뇌 혈관이 약하여 뇌 출혈이 일어나기 쉬운 까닭이다.

반면 유전적인 요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적어 첫째 아이가 뇌성마비라 하여 둘째 아이도 유전적인 원인에 의해 뇌성마비 아이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첫째 아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둘째 아이에서도 출생을 전후하여 뇌 신경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위험 조건 들이 남아 있어 재발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 조건들을 둘째 아이를 갖기로 마음먹기 전에 전문가의 도움으로 알아내어 예방하면 뇌성마비와 같은 합병증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조산이 원인이라면 조산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 내어야 하고 실제 조산의 약 50퍼센트정도는 철저한 산전 관리로 예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예정일 보다 조기에 자궁이 열려 조산이 되는 경우 산부인과적인 조치를 미리 취함으로써 예방할 수 있고, 산모가 당뇨를 앓고 있거나 알코올이나 약물을 복용한다든가, 헤르페스 같은 모체감염이 원인인 경우에도 산전 진찰과 관리를 통하여 조산을 예방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첫 아이가 뇌성마비라도 둘째 아이가 뇌성마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낮고 또 첫 아이가 가진 병의 원인이 어느 정도 밝혀져 다음부터 이를 예방하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둘째 아이를 가지는 것이 망설여 지는 것이 사실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보다 둘째 아이가 별 탈없이 태어나도 그 아이에게 충분한 애정과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여유가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경험이 있는 많은 부모님들께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새 생명의 탄생이 첫째 아이를 비롯한 가족 전부에게 미치는 효과가 매우 긍정적이고 평생을 같이 살아갈 형제 자매로써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둘째를 가진다는 것이 그다지 망설일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부산에서 태어난 박수성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에서 소아정형, 사지기형교정 및 뇌성마비 담당교수로 재직중이다. 장애 아동에 대한 배려가 선진국에 훨씬 못 미치는 현실에서 다리에 생긴 기형이나 뇌성마비로 인해 보행이 힘든 이들을 치료하여 장애의 정도를 최소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이 칼럼을 통하여 장애와 연관된 여러 질환들에 대한 유익한 의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 또는 그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한다. ◆ 홈페이지 : www.hib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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