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세기경 서양에서 환부를 치료하고자 다리를 절단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

발과 다리에 선천성 기형이 있어 십여차례나 교정 수술을 받고도 잘 낫지 않아 고생하던 우리나라 아이가 더 나은 치료를 받고자 미국으로 건너 간 뒤 단 한번의 수술로 친구들과 뛰어 놀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고 미국 의사가 자랑하기에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니 기형이 있던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차고 있었다고 한다.

그 아이의 부모 입장에서는 미국의 선진 의술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절단을 순순히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만약 똑 같은 방식으로 우리나라 의사가 치료하고자 하였다면 그 의사는 적잖은 곤란을 겪었을 것이 예상된다.

자신의 신체 부위를 대하는 시각에도 동, 서양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서양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보면 환부를 하루라도 빨리 제거하고 의족을 착용하여 일상에 복귀하는 것이 합리적인 일일 것이다.

그에 반하여 동양적인 사고 방식으로 보면 <효경>의 처음 구절의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훼상함이 효지시야라' 즉 '내 몸과 피부와 터럭(머리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헐어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니라' 라는 글귀에서 보듯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예로부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를 소중히 여겨 감히 이를 손대는 것을 금기시 해왔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입장에서 환자를 위해 불가피하게 팔이나 다리 등의 신체 일부를 절단해야 할 경우라도 말 꺼내기가 어렵고 또한 어렵사리 말을 꺼내어도 환자나 보호자의 대부분은 절단하지 않고 치료할 수는 없는지 두번 세번 물어보며 결정을 망설이기 마련이다.

러시아의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인 일리자로프 박사가 개발하여 전세계에 보급한 둥그런 모양의 외고정기기(일명 일리자로프 기기)를 이용한 변형교정술이 199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사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복잡한 기형이나 심한 외상의 후유증을 앓고 있던 다리나 발에 대해 그 치료가 마땅치 않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 일부를 절단할 수 밖에 없었던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천재적인 한 러시아 의사 덕분에 신체일부를 절단하지 않고도 교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우리나라 사람 입장에서는 이제 더 이상 불효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의료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미국에서도 가끔 너무 합리적인 생각을 앞세워서인지 우리가 보기에는 교정을 시도해봄직한 정도의 기형도 쉽게 절단을 하고 의족을 채우는 경우가 가끔 있다.

환자의 상태로 보아 꼭 절단이 필요한 상태인데도 무조건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거나 시일이 좀 걸리지만 일리자로프 외고정기구로 충분히 교정을 시도해 볼만한 상태인데도 절단을 쉽게 결정하는 양 극단의 치료방식은 모두 피해야 할 것들이다.

환자를 위하는 마음이야 동서양이라 하여 차이가 있을 수 없으니 만큼 자신을 담당하는 의료진을 신뢰하고 서로 충분한 대화를 한 뒤 여러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중히 결정하는 인내와 중용의 미덕이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부산에서 태어난 박수성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에서 소아정형, 사지기형교정 및 뇌성마비 담당교수로 재직중이다. 장애 아동에 대한 배려가 선진국에 훨씬 못 미치는 현실에서 다리에 생긴 기형이나 뇌성마비로 인해 보행이 힘든 이들을 치료하여 장애의 정도를 최소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이 칼럼을 통하여 장애와 연관된 여러 질환들에 대한 유익한 의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 또는 그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한다. ◆ 홈페이지 : www.hib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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