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태아를 반갑게 맞아들이려고 하는 환영식이 며칠 전에 한 임산부의 집에서 조촐하게 열렸다. 그 임산부가 누구인지 말하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귀한 것은 아껴서 잘 간직한다는 의미로 여기에서 구태여 밝히는 것은 자제함이 좋을 듯 하다.

그 환영회를 가지기 전에 어떤 모임에 나갔더니 그 임산부에 대한 경이로움과 반가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42살에 결혼하여 43살에 임산부가 되었으니 여성의 몸이란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가! 더구나 지체 장애 2급의 여성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반가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이 많은 임신에 대한 우려도 없잖아 있는 것 같았다. 그 우려는 많이 배우고 많이 알고 있는 남성일수록 쪼끔 더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를 낳아본 엄마들이라면 다 안다. 새 생명이란 논리와 이성을 뛰어 넘어버린, 완전한 새 토양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새로운 토양은 일반적인 나이와 일반적인 건강과는 상관없이 완전한 경이로움과 신비로운 감사의 축적물로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어제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 없던 존재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우리의 몸안에서 꼼지락 꼼지락 태동을 시작하더니 정말, 그 어느 날 불쑥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 으앙, 얼굴이 새빨갛게 되도록 울음을 터뜨리거나 천사 같은 웃음을 방글방글 피워내고 있는데, 그 어디에서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과 기술과 논리를 그 준거로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우리 엄마들이 뭉쳤다. 그 경이로움을 더욱 크게, 그 감사함을 더욱 확장시켜 새 생명이 마음껏 뛰어놀 만한 자리를 만들어 주고 환영받는 그 기운을 더 높여주자고 말이다.

**아프리카 동부 지역의 어떤 부족에게는 아이가 태어난 날이나 임신한 날을 생년월일로 치지 않는다고 한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아기 생각을 한 날, 즉 어머니의 자궁이 아니라 가슴속에 처음으로 자리잡은 날이 이 부족 사람들의 생일인 것이다.

그 부족 여자들은 아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정해지면 마을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나무 아래 앉아 자신이 임신하고 싶은 아기의 노래가 들려올 때까지 기다린다. 이윽고 그 노래를 듣고 나면 마을로 돌아와 아기의 아버지로 점찍어둔 남자에게 그 노래를 가르쳐 준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아기 생각을 하며 그 노래를 부른다.

아기를 임신하면 어머니는 자궁 속의 아기에게 그 노래를 들려주고 마을의 나이든 여인네들과 산파에게도 가르쳐 준다. 마침내 산통이 시작되면 그들 모두 그 노래를 합창한다. 노래는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계속된다. 아기는 자신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세상과 처음 만나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제는 모든 부족 사람들이 그 노래를 배운다. 그래서 아기가 다치거나 몸이 아플 때마다 그 노래를 불러 준다.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는 의식을 거행할 때, 결혼식에서도 그 노래를 부른다. 마침내 생을 마감할 때 친지들이 임종을 지키며 마지막으로 그 노래를 함께 부른다.**

이런 생을 살 수만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너무 행복해지지 않는가!?

드디어 뱃속에 자리잡은 태아를 환영하기 위해서 어떤 어머니는 아름다운 음악 CD를 준비했고, 어떤 어머니는 예쁜 책을 가져 왔으며 어떤 어머니는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위해 효소 쥬스와 건강식품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 모인 엄마들이 처음 아기를 낳을 때에 얼마나 놀랍고 경이로웠던 지에 대해서 마음껏 수다를 떨었다. 그 수다는 일상에서 잊어버리기 쉬운 그 순간을 생생하게 재생시켜 큰 기쁨을 만들어냈다. 마지막에는 모두가 손을 맞잡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환영사를 바치는 시간을 가졌다.

-애기야. 진심으로 환영한단다. 기뻐하면서 즐거운 자리가 되도록

언제나 우리가 지켜보고 바라봐 줄게.

-사랑해. 우리 애기님.....

-고마워, 그리고 반가워......

-애기가 우연히 이 자리에 뚝 떨어져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엄마를 선택했고, 이 환경을 선택해서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

역시 그대는 탁월한 선택을 했어.

따봉이야!!!

짝짝짝......

짝짝짝........

우리는 박수를 치면서 진심으로 즐거웠고

보이지 않는 아기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고

가슴에 안겨지는 것처럼

그 사랑스러움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자주 자주 태아 환영식을 가지자---

그리고 어머니가 되었던 그 순간을 잊지 말고 영원히 간직하자---

그럼, 어머니가 되었음을 기뻐하는(혹은,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모임을 가지면 어떨까?

그러면 아이한테 짜증을 부리지도 않을테고,

공부하라고 닦달하지도 않을테고,

자연히 어머니의 가슴은 언제나 늘 충만하게 채워져 있을테고..........

맞아, 맞아------

짝짝짝.......

우리는 또 한 번 박수를 짝짝짝.......치면서 빗속을 뚫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벅찼다.

**위의 시는 어느 사이트에서 옮겨온 ‘탄생의 노래’를 재인용한 것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워 혼자서 살 궁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울며 불면서 억지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다음에 되고 싶은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서는 신체상의 결격으로 불합격되어 그나마 일년 남짓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한 적이 있고, 다음에 정립회관에서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2급 지체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87년에는 친구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았고 94년에 동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김미선씨의 글은 한국DPI 홈페이지(www.dpikorea.org)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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