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연말에 송년모임에 다녀오다가 음주운전자한테 교통사고를 당했었다. 그래서 부실한 다리 대퇴뼈(보통 허벅지 뼈라고 함)가 부러지는 골절상을 입어서 수술을 했는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사연이 길다.

중앙선을 넘어서 달려온 차와의 정면충돌치고는 그다지 큰 사고가 아니었음에 먼저 깊은 감사를 드렸는데, 병원에 실려가고 나서부터는 갑자기 처음의 감사함이 빠른 속도로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사연인즉슨, 부실한 다리의 뼈가 너무 가늘고 약해서 뼈를 접합시킬 기구를 삽입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래저래 수술날짜는 미루어지고, 답답해진 나는 연세 재활병원의 박창일 원장님께 전화로 이런 저런 사정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요청했더니 소아골절의 전문의이신 김현우 박사를 소개해주셨다.

급기야 엠브란스를 타고 다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엘 옮겨가야 했는데, 역시 삽입할 만한 뼈의 조건이 못되어서 '외고정술'이라는 기법으로 바깥에서 허벅지 살을 뚫고 쇠심 여섯 개를 뼈 속에 박아 볼트로 죄어서 고정시켜놓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멀쩡한 살에 못박혀 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의 고통이 이러할 것인가, 정말이지 숨 쉴 수도 없을 만큼 아프고 또 아팠다. 그러나 그 통증보다도 더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뼈가 붙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석달이 지나도록 연약하기 이를데 없는 내 부실한 다리의 뼈에서는 골진 하나 나오지 않았다. 집 가까운 곳으로 옮겨온 병원의 정형외과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볼 때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재수술 이야기만 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넉달이 지나면서부터 미미하나마 약간의 골진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일곱달을 다 채운 후에야 비로소 쇠심을 뽑아낼 수 있었다. 일곱달 동안 살과 뼈를 관통하고 있던 쇠심은 내가 움직일 때마다 찢기고 또 찢기면서 얼마나 참담한 흔적을 남겼는지, 그러나, 죽은 듯이 미동도 없던 그 뼈가 늦게나마 움직이기 시작하여 서로 붙었다는 것이 나한테는 감격이었고 은총의 도가니였다.

뒤에 한벗 센터에서 알게 된 서주관씨라는 분은 어릴 때 심한 류마티스를 앓아서 누운 상태로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져버린 분이다. 이 분은 차를 타고 가다가 급정거되는 바람에 나처럼 대퇴가 부러졌다. 나보다도 더 약하고 온몸이 가늘어서, 게다가 제대로 된 간호조차도 받을 수가 없는 형편이라 어쩌나 하고 가슴을 졸였는데 이 분도 역시 7개월 만에 깁스를 풀었다.

보통 사람인 경우에는 두 달이면 너끈히 뼈가 붙고, 길어도 석 달이지만 나나 이분처럼 한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부실한 다리는 일곱달 만에 붙은 것이다.

그러나 일곱달이 아니라 여덟달이 걸리더라도 붙긴 붙으니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의 상황을 너무 절망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붙긴 붙습니다.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예요.

그러나 이렇게 쇠심을 뽑았다고는 해도 이것으로 끝난 건 아니었다.

가뜩이나 약한 뼈는 더욱더 약해져 있었고, 나같은 경우에는 그 약한 뼈 사이로 엄지손가락 굵기만한 구멍이 여섯 개나 뿡뿡 뚫려 있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일곱달 동안 꼼짝하지 못하는 상태로 뻗쳐 있던 다리는 무릎도 고관절도 굽혀지려고 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천천히 물리치료를 시작해야 할 때였지만, 내 다리는 어떤 물리적인 힘도 가할 수가 없다고 손을 홰홰 내저었다.

그래서 거의 반년 동안 절대 안정만 취하고 있었다. 넘어지면 절대로 안되니까.

그러고 난 다음에 시작한 운동이 목욕탕을 다니는 일이었다. 그동안에도 할 것이 없으니깐 유일하게 한 것이 무릎아래부터 발까지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에 번갈아 담그는 족탕을 했었다. 그나마 혈액순환이 좋아지겠지 그러면서 말이다.

마침 우리집 앞의 목욕탕은 요즘 유행하고 있는 찜질방이어서 시설도 좋고 초대형이었다. 벼루고 벼루어서 마침내 찾아간 목욕탕 안에서 나는 물방울이 풍풍 올라오는 월풀탕에 몸을(배를) 띄워놓고 개구리처럼 다리를 열심히 흔들어재끼는 것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나마 하체를 이렇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동작을 어디서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월풀탕의 부력을 이용하여서 손으로 발목을 잡고 통통 뛰어오르거나 다리를 양쪽으로 쭉 뻗쳐놓고 몸을 위로 넘실넘실 띄우는 운동을 했다. 그리고 따뜻한 물에서 유연해진 상태를 이용하여 무릎을 굽히거나 고관절을 굽히는 동작을 반복했다.

다음에는 물 밖에 나와, 상대적으로 빈약한 엉덩이 밑에 타월을 받쳐서 척추를 반듯하게 잡아놓고 스트레칭을 한다. 팔을 위로 쭉-쭉- 뻗치고, 목과 허리를 돌려주고 팔도 뒤로 앞으로 비틀어준다.

그 다음엔 냉수탕으로 간다.

그러나 갑자기 냉수탕으로 첨벙 들어가는 것은 무리다.

일차적으로 바깥에서 조심스럽게 찬물을 끼얹어서 내 몸한테 냉온탕할 것을 미리 준비시킨 다음 온탕에 들어갔다가 다음부터 냉탕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온 살이 얼어붙는 것처럼 고통스럽지만 몸을 최대한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복부와 허리, 부실한 다리 쪽이 제일 못 참겠다고 고통을 막 호소해오기 때문에 사랑과 용기를 담아서 북, 북 손바닥으로 열심히 문질러준다.

그리고 나서 걷기 시작.

목발 없이 걸을 수 있는 것은 이 물 속뿐이다.

부실한 다리의 무릎을 한손으로 눌러서 한 발짝, 한 발짝........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가 된 것처럼 정성을 기울여 한발자국씩 떼어나간다.

그러나 이 동작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추위가 사라지지를 않는다.

그런데도 냉탕에서 걷는 이유는 거기만이 허리까지 수위가 높기 때문에 부력을 이용하여 걸을 수 있고 또한 그 길이가 거의 20미터에 육박할 정도로 길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탕이 아닌 따뜻한 곳에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다음에는 덜 부실한 다리를 오그려서 오리걸음을 뒤뚱뒤뚱 걷기도 하다가 얼마 전부터는 일본 스모 선수들의 자세처럼 무릎을 완전 굽힌 상태에서 풍풍 뛰어다닌다. 뒤로도 뛰고 옆으로도 뛰고 앞으로도 뛰고, 뛰고 또 뛴다.

무릎을 굽힌 이유는 부실한 다리를 손으로 잡아서 고정시킬 수 있는 범위가 거기까지이기 때문인데, 이런 자세가 복부와 허리를 강화시킨다고 한다.

뛰다보면 이제는 온몸에서 열이 풀풀 나고 기분이 좋아져서 밖으로 나가고 싶지가 않다. 그러나 마냥 차가운 물 속에서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마무리 동작으로 난관을 잡고 발레리나처럼 한 다리에만 체중을 실어서 한 다리를 뒤로 쭉 뻗어주는 동작을 몇 번 되풀이한다. 이건 복근을 늘려주기도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다리에 체중을 실어주는 아주 중요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뼈에 밀도가 생기려면 무게가 실리는 운동을 해주어야 한다는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덜렁덜렁 매달려만 다녔으니 무슨 무게를 실어봤겠는가. 그래서 지난번의 골절에도 그토록 죽을 고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온탕으로 옮겨간다. 냉탕에서 나오면 시원하긴 하지만 온 몸이 얼음처럼 식어 있어서 이런 상태로 밖으로 나가는 것은 엄금이다.

목욕탕 안에서는 조그만 움직임조차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조심을 해야 하니까 처음에 나는 냉탕에서 가까운 보통 온탕에 들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그러나 속에까지 들어찬 냉기가 빠지지를 않아서 심하게 감기를 한번 앓은 다음부터는 그 온탕을 거쳐서 가장 고온열탕으로 옮겨가 냉기가 다 빠지도록 가만히 앉아 있는다. 그리고 다시 온탕으로 돌아와 흐르는 물에 어깨 마사지를 하기도 하고 물고기처럼 빙빙 돌기도 하면서 놀다가 천천히 밖으로 나온다.

원래의 냉온욕법은 냉탕에서 마무리하라고 되어 있지만 나같은 경우는 그러면 너무 힘이 들고 움직여야 되는 동선도 길어지기 때문에 온탕에서 나와 긴 의자에서 잠깐 쉬었다가 그냥 나오곤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애인에게 있어서 목욕법은 어떤 운동보다도 가장 뛰어난 방법인 것 같다. 우선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해주고 물에서는 어떤 동작이라도 쉽게 할 수 있으니깐 중증 장애인이라도 도우미가 도와주면 그나마 온몸을 사용하는 움직임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애인이 벌거벗은 몸으로 대중목욕탕을 이용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절박한 마음으로 동네 목욕탕에 다니기 시작한 지, 거의 일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사람이 많으면 주저하게 되고, 또 몸이 아무리 찌부둥해도 한가한 새벽시간이 아니면 가지지 않는다.

다행히 많은 장애인 복지관이 지역마다 세워지고 목욕탕 시설도 생겨나고 있느니 만큼, 목욕탕을 때 씻는 곳으로만 여겨서 협소하게 운영할 것이 아니라 노약자들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광의적인 건강시설로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주의점; 냉탕에서 열탕을 옮겨갈 때는 천천히, 몸의 상태를 살펴가며 아주 천천히 옮겨가야 합니다. 저는 온탕을 거쳐서 열탕으로 가는데도 심장의 박동이 커지고 온몸의 수축을 경험하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열탕에 몸을 적응시켜 나갑니다.

그리고 다시 온탕을 거쳐서 밖으로 나와 누워 있어도 온몸에서 땀이 쫙! 흐릅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신진대사의 양이 굉장하다는 뜻이겠죠.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들은 정말 조심해야될 것 같습니다.

참! 미지근한 생수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해야 땀을 보충할 수 있겠죠?

-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워 혼자서 살 궁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울며 불면서 억지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다음에 되고 싶은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서는 신체상의 결격으로 불합격되어 그나마 일년 남짓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한 적이 있고, 다음에 정립회관에서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2급 지체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87년에는 친구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았고 94년에 동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김미선씨의 글은 한국DPI 홈페이지(www.dpikorea.org)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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