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경아

우리 엄마한테 널 부탁했어

넌 네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난 네가 머지 않아 떠날 것 이란 사실을 알고 있거든

폐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 정신 없이 쫒아가서

널 붙잡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울음을 삼키는 것 뿐이였지

'언니 이거 정말 너무 한거 아냐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억울한데 이젠 암 환자 라니

이게 뭐야 도대체'

넌 정말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지

그 노력이 너무 처절해서

난 때로 모르는 척 했었어

넌 내가 부럽다고 했지만

난 네가 부러웠어

넌 목발을 집고 걸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넌 누가 봐도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니까

엄마도 항상 너와 비교를 하시곤 했지

'숙경이는 시집 갈 수 있을텐데'

당신 딸은 너무 장애가 심해서 시집 보낼 엄두를 못냈던 엄마는

숙경이 정도만 돼도 하면서 널 부러워하셨어

그래서인지 네 안부를 자주 묻곤 하셨지

네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엄마는 자기 자식의 일인양 걱정을 하셨단다

엄마도 나도 주위 사람들도 모두

네 걱정을 하고 있는데

넌 천연덕스럽게

희망을 얘기하곤 했지

내가 너라면 그렇게 못했을꺼야

난 생명줄을 빨리 놓아버리고 말았을꺼야

암세포가 다리로 번지고

그것도 모자라 머리속으로 번지고 있는데도

의사가 더 이상 치료가 필요 없다고 처방했는데도

넌 의연하게 살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난 네 앞에 나설 용기를 잃어버렸어

널 만나면

"이 바보야 넌 죽어, 다른 사람들 다 아는데 왜 너만 모르니

이 바보야' 하고 소리를 지를 것 같아서

널 찾아가지 못하고 있는거야

바쁘다는 핑계로 병문안 한번 안가는 내가 원망스럽지

하지만 난 널 만날 자신이 없어

난 아직도 엄마 방 앞을 지날 때 엄마가 방안에 앉아있는 것

같아서 깜짝 깜짝 놀라곤 하거든

숙경아

이제 준비하자

이미 예정된 이별이야

우리 모두 떠날껀데

네가 조금 일찍 가는 것 뿐이야

근데 올해는 넘기자

내가 너무 힘들어

새봄에 따뜻해지면

그때 떠나

갈 때 너무 추우면 쓸쓸하잖니

널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아

우린 너무 오랜 시간 같은 모습으로 함께 했으니까

장애인 암환자

신은 왜 그토록 잔인한 걸까

만약 내가 너라면

너처럼 의연한 모습 보이지 못했을 꺼야

넌 참 대단해

그런 네가 난 부러워

엄마, 숙경이를 부탁해

28년 동안 방송계에 몸담고 있는 방송작가이자 방송을 직접 진행하는 방송인입니다. 장애인 문학 발전을 위해 1991년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 문예지「솟대문학」을 창간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습니다. 틈틈이 단행본을 19권 출간하고 있는데 주로 장애인을 소재로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우송대학과 의료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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