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비장애인이란 말이 생겨난지 그지 오래 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그전엔 장애자와 정상인이라고 했다.(물론 장애자라는 말 조차 없던 시절도 있었다) 벌써 단어만 봐도 얼마나 느낌이 다른가?
사람은 무조건 제대로 갖춰져야 하고 사회가 정해 놓은 틀에 그대로 끼여맞쳐질 수 있는 사람, 그야말로 말 그대로 정상인이여야 한다는 것.
본인들 스스로도 더욱 정상이라는 틀에 부합하려함은 물론이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본인을 둘러싼 사람들의 정상성을 향한 추구가 더욱 엄청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정상적이지 않으면 큰일나는 것으로 여기는 부모들….
얼마전 TV에 샴쌍둥이로 태어나 분리 수술을 했던 어린 자매의 이야기가 나왔다. 샴쌍둥이는 분리 수술을 하면 어느 한쪽이 희생 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을 감안해야 하는 수술이다. 그 아이들의 부모는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수술을 감행했다. 수술 후 동생인 아이는 상태가 매우 좋았고 언니인 아이는 예상대로 몸이 극도로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 토크 프로에서 죽은 아이의 존재는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비장애아등들속에 섞겨 생활하는 살아있는 아이에 대해 촛점을 맞춤은 물론 정상성에 가깝게 생활해 나가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는 분위기….
아이는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고 있었는데 사회자가 왜 특수학교를 보내지 않고 일반학교를 보냈냐고 하자 아이의 엄마는 특수학교를 보내 봤었는데 아이가 같이 공부하는 뇌성마비 아이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을 보고 힘들더라도 일반학교를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기가 막혔다. 아무리 아이 엄마가 장애인에 대한 의식이 없다 할지라도 그 방송을 뇌성마비 장애인들도 충분히 볼 수 있건만 어떻게 그렇게 특정장애에 대해 비하하는 말을 생방송 도중에 버젓이 할 수 있단 말인가?
큰 아이가 숨을 거두려하자 아이 엄마는 제발 눈만 뜨고라도 살아있어 달라고 아이에게 울면서 애원하는 화면도 나왔다. 같은 부모의 입장으로서 정말 가슴이 아프면서도 분노 또한 금할 길이 없었다. 부모들이 조금만 의식이 있었어도 그 어린 생명을 죽이지 않았으련만, 수많은 사람들의 정상성 추구가 충분히 살 수 있는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생각에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죽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드는 것이었다.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했다.그 아이의 부모들도 평생 그럴것이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허나 그러면서 평생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아이가 지금보다 더욱 정상적으로 살아갈지라도 그 답답함은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 답답함이 어떤 이유에선지 그 이유를 나중에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바로 한 아이가 희생됐어도 또 한 아이는 정상에 가깝게 살아간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며 살아가는 그 자체가 최선인 것으로 여기는 그 착각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의 정상성 추구는 많은 사람들을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 부모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사회적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이제 더이상 정상이라는 틀 속에 들어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