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인생의 지표가 되어줄 만큼 존경하는 분이 있는 사람은 복받은 사람이다. 내게도 그런 분이 한 분 계시다.

그분이 바로 이 땅에 재활이라는 용어를 뿌리내리게 한 고 김학묵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전회장님이다. 뇌성마비인들의 재활과 복지는 물론 우리 나라 사회복지계의 선각자이며 최고 어른으로 계시다가 2년전 2001년 5월 15일에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꼭 10년을 곁에서 모신 분이다

타고나신 건강에 사람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지닌 눈빛과 목소리로 언제나 위풍당당하던 노신사, 빨간 나비넥타이와 중절모가 잘 어울리고 그 멋있는 외모에 걸맞은 매력과 유머를 지닌 그 분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연하게 떠오른다.

나비넥타이를 즐겨 매는 노신사의 매력과 유머를 늘 지니셨던 김학묵 회장님은 누구도 꺽지 못할 의기, 호탕한 웃음 뒤에는 너그러움이 늘 숨겨져 있어 늘 사람을 감싸주는 정다운 분이셨다.

늘 책을 가까이 두시고 새 지식과 새 생각들을 얻고자 노력하셨으며 "일신 우일신" 하라고 쩌렁쩌렁하게 호통치던 음성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듯하다.

언젠가 한번은 요사이는 살기가 어려운지 남을 돕는 일에 그리들 관심이 없다고 원망 섞인 말씀을 드렸더니, 김학묵 회장님은 세상 인심 탓하지 말라. 오히려 남의 인심이 나의 인심보다 낫고 모든 인간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네 자신 스스로가 먼저 실천하라고 호되게 야단을 치신 적이 있다.

결재를 맡으러 가면 뇌성마비인들에게 무엇이든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는 것은 바람직한 게 아니다. 아무리 불편한 몸이라도 하느님께서 주신 한가지의 재주는 꼭 있는 법이니 그것을 잘 발견하여 계발하고 살리는 게 중요하며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고 강조하시곤 하였다.

지난 5월 15일 돌아가신지 2주기를 맞이하였는데 김학묵 회장님을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나 역시 이제서야 충북 음성에 있는 그 분의 묘소에 다녀왔다. 그분이 마지막 세상과 이별하시던 눈물로 받쳤던 시가 그 분의 비석에 새겨져 있다. 내게 이 한편의 시를 바칠 수 있게 하신 것은 그분의 사랑과 뜻이 끝나지 않고 계속 되어짐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리라.

먼길 가시는 당신에게

- 중략 -

"당신은/우리에게 꿈과 희망의 싹을 틔워 주셨지요. / 이제 가지를 제법 뻗은 나무로 자라나 / 당신의 그늘이 되어드리기 위해 고개를 드니/당신은 이별의 손짓을 하며 먼길 가시려 합니다/ ' 이 생명과 힘을 눌린 것을 쳐들고 굽은 것을 펴는데 쓰리로다, 부리리로다' 하신 당신의 말씀만이 떠나신 자리에 더욱 형형 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 - 중략 -"

2년전의 그분의 떠나가심을 슬퍼하고 애도하는 눈물은 이제는 가셨지만, 아카시아꽃 향기 흩날리는 5월이 되면 병석에서까지 뇌성마비인들의 재활에 고심하셨던 그분의 참사랑과 봉사의 실천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비석에 새겨진 시어들이 비바람에 씻겨 없어진다 하더라도 그분의 의지와 뜻, 살아오신 흔적은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초석이 되어 남아있을 것이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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