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12월입니다.

보름동안 심한 몸살 감기를 앓고 나니 12월의 날짜들이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고 어깨를 툭툭 칩니다.

하루는 길다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일년은 활을 떠나는 순간 가속도가 붙어 날아가는 화살과 같습니다. 정말이지 쏜살같은 세월입니다.

한해동안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공부하고, 일하며 자기 직분에 최선을 다하느라 수고하고, 가족과 친구,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하느라 애쓰며 기뻐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소중함과 따듯함을 실감하며 살고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날이 갈수록 우리 사회에 대한 시선과 사랑은 버석거리며 건조한 소리를 내며 메말라 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제 한해의 마지막 달 초입에 서서 하고싶었던 일, 즐겁게 했던 일, 못 다한 일, 미워하고 서운했던 일, 수많은 일 속에서 일어났던 갖가지 사연들이 떠오릅니다.

사석에서 나눈 나의 아이디어가 너무 평범하다고 하던 사람이 회의 중에 그 아이디어를 자신의 아이디어인양 이야기했을 때의 씁쓸한 기억, 본인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다른 동료나 중간관리자의 이야기만을 듣고 모든 걸 판단해버린 웃어른 행동에 가슴아파하던 친구의 넋두리,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여 쓴 경험을 하고도 사람이 겸손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는 이웃, 가을이 깊어가던 10월 하순에 장애인으로 산 삶 50년을 마감한 권선생 부인의 슬픈 소식들은 일년을 쓸쓸하게 했던 기억들입니다.

장애 때문에 차별 받고 주위 배경이 있고 없음에 다시 이중적 차별을 받는 장애인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했던 몇몇 일들은 너무도 가슴을 아프게 했었습니다.

지하철을 타려고 길을 묻는 뇌성마비인이 말을 마치기까지 기다렸다가 안내하여 지하철을 태워주는 역무원에게 받았던 작은 감동, 방송이나 신문에 나간 기사를 읽고 후원하고 싶다고 걸려온 전화 한 통에서 느끼는 보람, 매월 작은 금액의 후원하고 있는 동자원 아이들이 보낸 이메일을 읽으며 나 또한 뇌성마비인들을 돕는 후원회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함을 되새겼던 일, 뇌성마비인들 스스로가 자기의 목소리를 높이며 커 가는 모습들, 자신에 일에 관련한 공부를 늘 하라고 강조하시는 회장님께서 잔잔한 미소로 격려해주셔서 힘이 났던 일, 업무를 하는데 언론기자들이 준 보이지 않는 도움들은 보람 있고 기쁘게 1년을 살게 한 일들입니다.

돌아보면 아쉽고 슬펐던 일들보다는 기쁘고, 감사한 일이 더 많았습니다.

우리 사회는 나 혼자만이 사는 사회가 아니라 소중한 내 가족과 이웃이 더불어 사는 사회이기에 서로에게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나 또한 언제나 원망과 비판의 마음보다는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나이기를 반성해 봅니다.

올 한해 건강하게 아무 탈 없이 지내도록 열린 맘으로 함께 하여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알찬 이룸의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좀더 배우는 자세로 정진해야 한다는 다짐을 합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 '꽃을 보면 아름다움을 배우고, 돌을 보면 무거움을 배우고, 아이를 보면 사랑을 배우고, 어른을 보면 존경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참다운 배움의 방법이다. 높은 산을 보고 그 기상을 배우지 못하면, 그것은 피상의 앎은 될지언정 진정한 깨달음은 되지 못한다'를 생각합니다.

더불어 사는 이웃들을 잊지 말고 공부하는 자세로 힘있고 활기찬 새해를 맞게 되기를 다시 한번 기원해 봅니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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