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계획의 자료들.

정부는 지난 2월 19일 오후 정부중앙청사에서 김석수 국무총리 주재로 장애인복지조정위원회를 개최하여,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시행될 '제2차 장애인복지발전5개년계획'을 확정·발표했다.

2월 19일 장애인복지조정위원회 회의자료 2장 “Ⅱ. 障碍人福祉의 基本方向”에서는 장애인 복지정책의 기본방향을 사진의 윗부분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한편, 장애인복지조정위원회에서 확정된 제2차 장애인복지발전5개년계획이라며, 지난 2월 26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 중, 같은 부분에 있는 장애인 복지정책의 기본방향은 사진의 아랫부분과 같다

두 개의 자료를 비교해보면, 두 군데가 수정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는 “생애주기별로 특화된 복지서비스의 개발·제공”이 하위목표에 추가 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위목표였던 “장애인이 대등한 시민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사회 실현”에 “통합적”이란 단어가 추가 되면서 상위목표로 바뀌었고, 먼저의 상위목표에서 “권리에 기반한 장벽없는”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전자의 자료가 2월 19일 열렸던 장애인복지조정위원회의 회의자료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날의 회의 중에, 5개년 계획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기본방향 상위목표의 “권리에 기반한 장벽없는”을 빼버리자고, 장애인복지조정위원들이 주장하여 빼게 되었거나, 그러한 사실이 없었음에도 누군가가 고의든 실수든 빼버린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

만약에 장애인복지조정위원들이 뺄 것을 주장하여 통과되었다고 한다면, 장애인복지발전계획수립기획단이 수개월동안을 작업하여 준비하고, 공청회를 통하여 논의된 안을 그렇게 슬그머니 빼버릴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으며, 그것이 장애인계를 대표하는 의견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또한, 그럴 리는 절대 없었겠지만, 장애인복지조정위원회에서는 기본방향을 바꾼 적이 없었는데, 어느 보건복지부의 관계자가 슬그머니 바꾼 것이라고 한다면, 이 땅의 모든 장애인들을 모독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002년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일본에서 열린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UN ESCAP)회의에서는 제2차 아태장애인 10년(2003~2012)동안의 행동계획안인 “비와코 새천년행동계획"을 채택했다. 이 행동계획의 정식 명칭은 ”아태지역의 장애인을 위한 통합적, 장벽없는, 그리고 권리에 근거한 사회를 향한 비와코 새천년 행동계획안(BIWAKO MILLENNIUM FRAMEWORK FOR ACTION, TOWARDS AN INCLUSIVE, BARRIER-FREE AND RIGHTS-BASED SOCIETY FOR PERSONS WITH DISABILITIES IN ASIA AND THE PACIFIC)“이다.

여기서의 키워드는 ”통합적(inclusive)“, ”장벽없는(barrier-free)“, ”권리에 근거한(rights-based)“의 세 가지이다.

2002년 가을에 장애인복지발전계획수립기획단이 제시한 제2차 장애인복지발전5개년계획의 초안을 접했을 때, 그 기본방향에 위의 세 가지 키워드를 그대로 인용한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실제로 그 세부계획은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너무 많지만, 기본방향에서라도 ”권리에 기반한“이라고 한 것에, 차후 계획에서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관문인 장애인복지조정위원회가 열린지 일주일 만에 ”권리에 기반한“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실 세부 계획이 비슷하면 되지, 기본방향이 조금 바뀌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 하고 얘기하거나, “대등한 시민”이 권리에 기반한 것이며, “통합적 사회”에 “장벽없는”의 개념이 포함된 것이 아니냐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5개년 계획의 기본 방향에 쓰여지는 단어의 신중한 선택이 중요하지 않다면, “불구자”라고 부르던 명칭을 굳이 “장애인”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는가 되묻고 싶다. 또,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장애계 대다수가 논의를 거쳐 만든 국가적 계획의 방향을 몇몇의 사람들이 임의로 바꾸는 의사결정과정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권리에 기반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든다거나, 사회의 개혁이 너무 많이 필요할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나 많은 장애인들이 ”권리에 기반한“ 사회를 요구하는 이유는 권리에 기반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리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자선이나 동정에 기반할 것인가?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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