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이미지

작년 12월 11일, 서울 여성플라자에서 개최된 제11회 RI KOREA 재활대회에서는, ‘IL 패러다임에서 Empowerment 패러다임으로’란 제목으로 대구대학교 나운환교수가 주제강연을 했는데, 그 강연을 통해서 나교수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놓았다.

▶ IL 패러다임이 목표로 하는 기대성과는 독립생활이나, Empowerment 패러다임은 모든 사람이 함께하는 다원화된 사회, 모든 지역주민이 진정한 생활의 질을 함께 구현하고 협력적인 의사결정이나 문제해결에 있어 한사람의 지역사회 성원으로서 자기결정이다.

▶ IL과 Empowerment 패러다임은 문제의 정의나 위치를 보는 시각은 같은데 성과에 있어 독립과 지역사회 통합이라는 차이가 있다.

이 두 문장을 보면, 나교수는 IL 패러다임에서 얘기하는 ‘독립’, 또는 ‘독립생활’ 이란 것을,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살아가는 것’에 배치되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관점은 위의 두 문장뿐만 아니라 원고의 전반에 걸쳐 흐르고 있다.

나교수뿐만 아니라 자립생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자립생활을, ‘(지역사회에 통합되지 않은 채) 물리적으로 자립하여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자립생활의 ‘자립’이란 것은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뜻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낀다.

자립생활에서 얘기하는 ‘자립’은 무엇으로부터의 ‘자립’인가? 라고 묻는다면,

‘타인의 통제로부터의 자립’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즉, 중증장애인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가 재활전문가, 가족 등, 타인에게 맡겨진 채, 살아왔던 것을,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다시 되찾아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 바로 자립생활인 것이다. 자립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지역사회에의 통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시설이나 집안에 격리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며, 지역사회에의 통합을 지향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자립하는 경우가 타인의 통제를 최소한에 그치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자립하는 것은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알아서 선택할 일이지, 자립생활 여부를 규정짓는 조건이 아닌 것이다. 또한,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타인의 통제로부터 온전하게 자립할 수 없는 경우에도, 그 상황 하에서 타인의 통제를 최소한에 그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자립생활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다. 타인의 통제로부터 온전하게 자립할 수 없다고 하여, 자립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성취하려면, 정말 넘어야할 장벽이 너무 많다. 그러한 장벽들 중에는 ‘이해의 부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기득권을 가진 재활전문가들의 소외감’ 같은 것이 장벽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정말 기우에 불과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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