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로 분장한 탤런트 배용준

“無恒産而有恒心者 唯士爲能 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 苟無恒心 放僻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然後 從而刑之 是罔民也”

“경제적으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도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뜻있는 선비만 가능한 일입니다. 일반 백성에 이르러서는 경제적 안정이 없으면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부정하고 허황되어 이미 어찌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들이 죄를 범한 후에 법으로 그들을 처벌한다는 것은 곧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편에 나오는 말로, 맹자가 어느 날 제(濟)나라 선왕(宣王)의 정치에 대한 물음에 대답한 이야기이다.

‘쌀독에서 인심난다’라는 말이 있다.

맹자의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의 교훈이 담긴 우리의 속담이다.

이는 누가 봐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세상에는 항상 쌀독이 채워져 있는 상황만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쌀독이 비워진 상태, 즉 ‘무항산’의 상태에서, 모든 백성이 바른 마음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꿋꿋이 바른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선각자(先覺者)로서의 ‘선비’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가끔 중증장애인들로부터 ‘저도 지금 자립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여기서 ‘자립한다’는 것은 대개 ‘집이나 시설로부터 홀로 나와 살아갈 수 있는가’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중증장애인이 집이나 시설로부터 홀로 나와 살아가려면 참으로 많은 것이 필요하다. 이 질문은 그런 것들을 지원해줄 수 있겠는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개 ‘지금은 어렵습니다’가 되고 만다. 경우에 따라서 가능한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그 경우는 현재 실험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각종 시범서비스를 모으고 모아서 지원하는 몇몇 사례에 불과할 뿐이고, 그나마 언제 서비스가 끊길지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점차 확대가 되어가겠지만, 아무튼 현재는 자립생활을 가능케 하는 지원 서비스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립을 원하는 중증장애인을 모두 지원할 수 없는 형편이다. 또, 앞으로도 이러한 지원이 일개의 민간단체나 기관을 통해서 임의적으로 시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상황에 있는 중증장애인이라고 할지라도 모두다 똑같이 자립생활의 기회가 공적으로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적인 지원체계가 없는 ‘무항산’의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 중증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성취시키기 위해서는, ‘무항산 유항심자’, 즉 ‘선비’와도 같은 역할을 해줄 자립생활의 ‘선각자’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는 ‘무항산 무항심’을 비난하고 ‘선각자’가 아닌 보통의 중증장애인들에게도 ‘무항산 유항심’을 강요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이어령교수는 예전에 ‘문화’를 주제로 한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사람이 시인이 되고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창조적 욕망을 갖고 있다면 좀 더 나은 그림을, 좀 더 나은 음악을 원할 것이고 당연히 그것을 충족시켜 줄 훌륭한 예술가가 탄생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중증장애인들이 다 ‘선비’가 될 필요는 없을 테지만, 모든 중증장애인들이 진정으로 자립생활을 원한다면, 반드시 그것을 충족시켜줄 ‘선비’가 탄생할 것이다.

공적인 자립생활 지원체계가 전혀 없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무항산 유항심자(無恒産 有恒心者)’인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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