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한 번이었는지 두 번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체육수업 대신 정립회관에 갔었다. 그 때 양호선생님은 나 같이 장애가 있는 아이도 체육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면서 적극 권했지만, 난 정립회관에 가는 게 영 싫었다.

첫째는 장애가 없는 친구들은 수업을 받고 있는데 나만 특별한 취급을 받는 것이 싫었다. 친구들은 철없이 수업 빠지고 놀러간다며 부러워했지만…. 둘째는 일년에 한두 번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해도 체육활동이 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셋째로는 정립회관에 가서 바로 내 모습과 똑같이 비틀어지고 흔들리는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철들기 전 나는 거울에 비친 내 전신을 제대로 주시한 적이 없었다. 장애가 없는 다른 아이들과는 철저히 다른 나에 대한 자기부정이었던 셈이다. 심지어 꿈속에서조차 나는 목발을 짚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런 내가 나와 비슷한 아이들과 마주하는 일이 달가웠을 리가 만무하다. 나는 장애인인 것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매번 비참한 심정으로 정립회관에 갔었다. 내가 속하기를 거부하는 바로 그 집단과 억지로 마주쳐야만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정립회관은 참 넓어 보였다. 체육관에서 수영장, 수영장에서 양궁장까지의 거리가 꽤 멀게 느껴질 만큼….

양궁, 사격은 그럭저럭 할 만했지만, 물을 무서워했던 나는 수영이 정말 하기 싫었다. 아무리 같은 장애아들이라고는 하지만 수영복을 입고 왜곡된 내 몸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 더욱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못해 수영복을 입고 물 속에 들어가서도 물 위로 얼굴을 빼꼼히 내놓고 수영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았다. 구슬리기도 하고 얼르기도 하던 선생님은 얼마 안가 포기하곤 했다. 어차피 1년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하는 학생을 두고 씨름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레크리에이션 시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그 레크리에이션이라는 게 영 마뜩치가 않다. 레크리에이션 지도하는 선생님들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레크리에이션을 할 때마다 늘 대상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취지야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서겠지만, 나로서는 아무 계기도 없이 처음 만나는 사람과 손도 잡고 노래와 게임을 해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1시간 정도 신나게 놀아도 늘 그때뿐이지 다음 번 만남과는 무관한 게 레크리에이션이 아니던가! 레크리에이션이라는 게 늘 짜여진 프로그램이 있고 지도하는 강사선생님이 주도하는 대로 그저 따라만 하면 되는 것이기에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하기야 가기 싫은 곳에 억지로 갔으니 어떤 프로그램인들 달가웠으랴만….

지금 돌이켜보면 열심히 지도하는 강사들은(대부분 자원봉사자일 것이다) 나를 포함해 언제나 수동적인 장애아들 때문에 무척 힘이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키는 대로 따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놀이 프로그램이었더라도 우리가 마음을 열지 못했을까? 물론 개중에는 레크리에이션을 좋아하는 활달한 아이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생각해보니 난 무척이나 까탈스러운 아이였다. 하지만 어른들이 잘 모르거나 모르는 척해서 그렇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표현을 하든 안하든 나름대로의 욕구와 취향이 있으며, 반항을 할 때도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있다.

어린 마음에도 나는 일년 내내 체육활동에서 소외되면서, 단 하루나 이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으로는 왠지 만족이 되지 않았던 듯 싶다. 또한, 스스로를 장애인으로 정체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 그 특별한 날을 받아들이지 못한 보다 근원적인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김효진씨는 현재 한국장애인연맹 기획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지체 3급의 장애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을 '자기결정권'이라는 한마디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바 있어 DPI에 입문한 대책없는 센티멘탈리스트라고 소개했다. 또 그녀는 섹시하지 않다느니 의존적이라느니 무능력하다느니 하는 허위의식을 유포해 장애여성을 화형(?)시켜버리는 폭력적인 세상에 도전하는 백발마녀(일명 흰머리소녀)라고 덧붙였다. 그녀의 특기는 독설이며, 특히 편두통이 심할 때는 굉장한 마녀로도 변신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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