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얘 너 너무 힘들겠다!"

"너 몇 살이니?"

"교통사고로 다쳤니?"

"소아마비? 그럼 엄마가 예방주사 맞추지 않았구나!"

"집은 어딘데?"

"엄마는 뭐하시는데 너 혼자 다니니?"

"집에 가만히 있지 않고 왜 힘들게 돌아다녀?"

"너 공부 잘하니?"

목발을 짚고 힘겹게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 사람들의 궁금증은 끝이 없다. 어릴적 내가 살던 동네에는 장애인이 없었다. 있어도 나처럼 집밖을 돌아다니며 학교에도 가고 친구집에도 놀러다니는 장애인이 흔치 않았을 것이다. 나는 누가 봐도 튀는 조건을 갖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내게 궁금증을 갖는 것쯤 당연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어린 내게도 사적인 영역이 있기에 상대방이 아무리 궁금해해도 그걸 꼭 시시콜콜히 밝힐 필요는 그다지 느끼지 않았다. 즉 남과는 다른 조건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이유가 없어보였던 것이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어른들의 질문이 가끔 귀찮았다. 늘 그랬던 건 아니지만 걷는 것도 힘든데 질문에 일일이 대답까지 해야 하는 게 무척 힘이 들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늘 신경이 쓰였다.

"쯧쯧, 참 안됐구나."

"너 참, 대단하다. 그 몸으로 학교에 다닌다니... 공부 잘해야 한다."

나를 지나치게 불쌍하게 여기거나 실제 이상으로 대단하게 여기는 태도 둘다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난 그냥 나일 뿐인데...

가령 위에서 예로 든 질문의 경우 어린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몇 살이냐, 집이 어디냐는 정도로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차원의 질문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진지하게 대답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힘들어요."(왜 당연한 걸 묻는지...)

"교통사고가 아니라 소아마비에요."(그땐 내 장애명을 거론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바빠요. 다섯 아이의 엄마인데다 시부모와 군식구들까지 거느린 맏며느리거든요. 그리고 난 엄마와 같이 다니는 게 불편해요. 힘들어도 나 혼자 다니는 게 편해요."(우리 엄마가 마치 장애가 있는 딸을 방치하고 있는 것처럼 비난하는 투라 기분이 나쁘다.)

"난 집에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아요. 왜 나 같은 아이들은 집에만 있어야 하나요?"(학교에 다니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잘 모르겠어요. 1등 하면 공부 잘하는 거고, 10등 하면 공부 못하는 건가요?"(어디까지가 공부 잘하는 것의 기준인지 잘 모르겠다.)

어른들의 질문은 대부분 대답하기 곤란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지극히 사적인 부분이라서 굳이 대답할 필요를 느낄 수 없는 질문이 많았다. 혹시 잘못 대답이라도 하면 곧장 '몸이 불편하니까 마음도 비뚤어졌다'는 비난이 되돌아올까봐 걱정스럽기도 했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한 애늙은이였던 난 그런 질문에 늘 웃음으로 대답하였다. 특히 곤란한 질문의 경우 그저 씩 웃어주기만 하면 대부분 해결되었다. 웃음은 쓸데없는 비난을 감수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전한 방편이었다. 비난은커녕 으레 칭찬과 축복까지 뒤따르는 좋은 매개체가 바로 웃음이었다.

"너 참 잘 웃는 아이구나!"

"몸은 불편해도 밝아 보여서 좋다, 얘!"

"넌 커서 분명히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웃음 덕분에 난 사람들의 덕담을 들으며 자랄 수 있었다. 난 참 잘 웃는 아이였다. 기뻐도 웃고 슬퍼도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어른이 된 뒤 더 이상 '착한 장애인'이기를 거부하게 될 때까지 내 삶의 전략은 웃음이었다. 그럼, 그때 그 웃음은 거짓이었을까? 그 웃음은 적어도 진실했으며, 다만 웃음의 의미가 매우 복잡했을 뿐이었다고 생각된다. 내 스스로 보통의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수시로 깨닫지 않을 수 있도록 어딘가 숨고 싶은 마음, 스쳐지나가는 짧은 만남에서 나를 속속들이 이해시키고 내 심정을 낱낱이 드러내지 못하는 곤혹스러움, 아무리 힘들어보여도 제발 불쌍하게 여기지만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내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해 미안한 마음까지...

나는 생각한다. 웃음은 진정한 내 목소리를 갖게 되기까지 내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었고, 나와 세상과 세상사람들을 이어주는 가느다란 끈이었다고.

김효진씨는 현재 한국장애인연맹 기획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지체 3급의 장애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을 '자기결정권'이라는 한마디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바 있어 DPI에 입문한 대책없는 센티멘탈리스트라고 소개했다. 또 그녀는 섹시하지 않다느니 의존적이라느니 무능력하다느니 하는 허위의식을 유포해 장애여성을 화형(?)시켜버리는 폭력적인 세상에 도전하는 백발마녀(일명 흰머리소녀)라고 덧붙였다. 그녀의 특기는 독설이며, 특히 편두통이 심할 때는 굉장한 마녀로도 변신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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