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든, 무얼 하든 사람들의 눈에 띨 수밖에 없다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특히 어릴 적엔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고 싶은 충동이 있는 게 당연한데 난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조그마한 일탈이라도 감히 시도해보질 못했다. 어떤 행동을 하든 내가 가진 장애라는 조건과 연관지어지곤 했으니까. 난 말 잘 듣는 아이, 착한 아이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속으로는 그게 아니면서도 어른들의 뜻에 맞도록 행동하는 게 편했다. 학교에 다녀오면 책가방부터 풀어놓고 숙제를 다 마치고 나서야 놀았고, 부모님과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만화책을 좋아하면서도 만화방엔 한번도 가지 않았고, 뽑기를 좋아해도 불량식품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뽑기집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만화책을 절대 안보거나 뽑기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만화방에 가고 뽑기를 사러 가는 건 언제나 여동생의 몫이었다. 말하자면 겉으로는 어른들의 뜻에 따르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할 짓을 다하는 모범생이었던 것이다. 여동생은 고맙게도 어른들의 비난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였다. 언뜻 보기에도 내가 만화방을 기웃거리는 모습과 여동생의 그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만일 내가 만화방이나 뽑기집을 드나들었다면 어른들은 내게 몇 배의 비난을 퍼부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제 몸 하나 추스리지 못하면서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짓은 빼놓지 않고 하는 대책 없는 아이로 취급했을 것이 뻔했다.

나의 어떤 행동으로 인해 보통 아이들보다 몇 배 더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그래도 나은 경우였다. 실제와는 아무 관련도 없이 무작정 비난을 받을 때면 정말 하늘로 솟아오르든지 땅으로 꺼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사람들은 자꾸만 나를 쳐다보며 힐끗거리곤 했다. 그리고 가끔 내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어른들로 인해 황당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엄마, 쟤 왜 저래?"

"넌 몰라도 돼. 빨리 걸으라니까 쓸데없는 건 왜 보고 그래?"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황급히 피하려는 어른으로 인해 난 졸지에 벌레나 괴물처럼 피해야 할 존재가 되었다.

"공부 못해서 그래. 너도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 저렇게 되면 거지밖에 할 게 없으니까 알아서 해!!"

아이들에게 '장애인=거지'라는 등식을 만든 어른들의 무지함 덕분에 난 졸지에 공부 못하는 아이, 나중에 거지밖에 할 게 없는 아이가 되곤 했다.

"엄마, 저게 뭐야? 나도 저거 사줘."

가끔은 내가 짚은 목발이 신기했던지 자기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도 있었다. "쟤는 아파서 그래. 저건 파는 게 아니란다. 병원에 가야 있지. 너 병원 가는 거 싫지?"

벌레나 괴물, 거지보다야 환자는 훨씬 양호한 편이니 이 정도는 그래도 애교로 봐 줘야 하나?

한동안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땅만 보고 다녔다. 그리고 길을 가다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말을 시킬 것 같으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딴짓을 하거나 빙 돌아다니곤 했다.

"이모, 왜 사람들이 자꾸만 이모를 쳐다봐?"

어른이 된 뒤 어린 조카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렇게도 부담스러웠던 사람들의 시선에도 어느덧 적응을 하게 되었음을 그때 새삼 깨달았다.

"사람들이 이모를 쳐다보면 난 기분이 나빠."

"그래? 이모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정말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게 된 자신이 새삼스러웠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를 낯설어하는 사람들의 시선보다 더욱 냉혹한 세상을 뼈저리게 경험한 탓일까?

김효진씨는 현재 한국장애인연맹 기획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지체 3급의 장애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을 '자기결정권'이라는 한마디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바 있어 DPI에 입문한 대책없는 센티멘탈리스트라고 소개했다. 또 그녀는 섹시하지 않다느니 의존적이라느니 무능력하다느니 하는 허위의식을 유포해 장애여성을 화형(?)시켜버리는 폭력적인 세상에 도전하는 백발마녀(일명 흰머리소녀)라고 덧붙였다. 그녀의 특기는 독설이며, 특히 편두통이 심할 때는 굉장한 마녀로도 변신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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