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발한 복숭아꽃/영덕군 홍보자료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심청이의 고향도 봄은 복숭아꽃으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뒷산에 복숭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봄이면 복숭아 꽃내음이 천지를 진동하는 아름다운 마을이라서 이름도 복숭아 꽃동네 즉 도화동(桃花洞)이라 불렀던 모양입니다. 예로부터 복숭아 꽃이 피는 곳은 무릉도원이라 하여 지상낙원 이라 했으니 황주고을 도화촌은 말 그대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우리 마실요? 참말로 살기 좋은 마실이지예.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고. 그케사도 그기 우리 하고 무신 상관이 있겠능기요. 그건예 다 팔자 좋은 양반님네들 자테나 소양이 있는 기지 우리 같은 무지랭이야 그저 하루 세끼 배 안 골고 똥 잘 싸믄 그마인데 그기 마음대로 안되는기라예. 그기 다 몬난 팔자 때문 아이겠능교?"

사람들은 지금처럼 평등하지 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평등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나라에서는 사람들을 1)네등급으로 갈라 놓았는데 첫째 등급은 벼슬 즉 정치를 할 수 있는 양반이었고 둘째 등급은 중인으로서 아전 같은 하급관리나 역관같이 기술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셋째 등급은 농사를 짓거나 수공업에 종사하거나 상업을 하는 농공상(農工商)인으로 보통사람이라하여 상민 또는 양인이라 했습니다.

양인과 천인과의 구별은 양인이면 누구나 과거도 볼 수 있다했지만 엉감생심 현실적으로는 꿈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등급은 노비 무당 광대 백정 등인데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천민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엄격한 네등급 신분사회였지만 같은 등급중에서도 특별히 낮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여자와 2)서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왕후장상이 씨가 있나'며 울분을 토로 하기도 했지만 이른바 3) 사대부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매겨놓은 등급을 어쩌겠습니까? 지금도 그 시절의 신분계급은 별로 변하지 않은 것같군요.

첫째 계급은 정치가와 고위공직자이고 둘째 계급은 전문직 즉 의사 변호사 교사 기자 그리고 일반공무원 등이며 셋째 계급은 옛날의 농공상 그대로 농민 노동자 상공인이지요. 넷째 천민이란 계급은 사라졌지만 장애인이나 빈민 등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이 여전히 천민 취급을 받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 하나 달라진 것이라고는 그 옛날 천민 신분이었던 무당 백정 광대 등인데 돈만 있으면 그들도 천민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벗어나다 뿐이겠습니까. 광대의 경우는 천민이 아니라 몇 계급을 훌쩍 뛰어 넘어 첫째 계급과 맞먹는 스타로 온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금도 가끔 어르신네들이 버릇없는 아이들을 '상놈'이라고 욕을 하는데 상놈이란 보통사람들이고 특별한 사람이라 과시하는 양반들이 보통사람을 얕잡아보는 이 못된 습관을 보통사람들끼리 쓰고 있으니 참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렇지만 일국의 대통령도 보통사람을 자처하는 시대니까 끼리끼리 욕좀 하면 어떻겠습니까?

각설하고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는 그래도 제일 높은 계급인 양반이었으나 양반등급 또한 천차 만별이었습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정승이 있는가하면 시골 촌구석 에서 빌빌거리는 몰락한 양반도 많았던 것 입니다.

양반이 그 가문을 유지하려면 과거에 급제하거나 임금의 특별채용이나 4)음서제도로 관직에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방법이 더 있기는 했는데 이건 비밀이지만 뇌물이라는 것을 주고 관직을 사는 것 즉 매관매직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찌해서 되었던 관직 즉 정치에 입문만 했다하면 백성이야 죽든말든 자기네들끼리 찌지고 볶고 굽고 삶아서 온갖 요리들을 다 해 먹고, 그리고는 그 동안 들인 본전을 찾기 위해 열배 백배 천배로 불려 나가는 기막힌 재주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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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농공상[士農工商] : 고려 후기에 중국에서 유 교(儒敎)가 전래되면서부터 명확해졌는데 귀천은 선비․농민․공장(工匠)․상인 등의 순으로 되었다. 이러한 신분차별은 수 백년 동안 계속되다가, 1894년(고종 31)의 갑오개혁 이후 점차 그 질서가 무너졌다.

2)서얼[庶孼] : 서는 양인(良人) 첩의 자손, 얼은 천인(賤人) 첩의 자손을 말한다. 고려시대에는 서얼에 대한 차별이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들어와서 주자학의 귀천의식과 계급사상이 지배계급의 생각으로 자리잡게 되자 서얼의 등용에 제한을 두기 시작하였다.

서얼은 가정에서도 천하게 여겨 재산상속권이 없었고 관직에 등용되기도 어려웠다.

3)사대부[士大夫] : 중국에서는 고대 사회에 그 신분층이 천자(天子)․제후(諸侯)․대부(大夫)․사(士)․서민 등 5계급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 중 천자와 제후는 황제 및 왕을 뜻하여 이들 군주를 제외하면 대부와 사가 지배계급이었으며, 피지배자인 서민과 구분되는 계층이었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송나라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때 귀족 외의 높은 벼슬아치나 문벌이 높은 사람을 지칭하였고, 그 가문을 사대부 집안, 그 가족을 사족이라 해서 일반인과 구별 하였다.

고려말에 정치 정상에 두드러지게 두각을 나타낸 사대부들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주로 현.전직의 관리를 중심으로 한 유교적 지식계급을 지칭하게 되었다.

4)음서제도[蔭敍制度] :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관직생활을 했거나 국가에 공훈을 세웠을 경우에 그 자손을 과거에 의하지 않고 특별히 채용하는 제도.

이복남 원장은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는 결코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이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원장은 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마음 밭을 가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일성은 이 원장이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장애인이 받고 있는 불이익을 현장에서 몸으로 뛰며 실천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이복남 원장은 현재 장애인 상담넷 하늘사랑가족<하사가>를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 홈페이지: http://www.988-7373.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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