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패/sbaby98 님의 포토앨범

1)책방이란 사또가 부임할 때 데리고 온 전용 비서로 향리 출신인 다른 아전들 하고는 달랐습니다. 책방은 사또에게 뭐라고 한참동안이나 소곤거렸는데 사또는 연방 고개를 끄덕이더니 드디어 입이 함지박만해졌습니다. 과연 사또와 책방은 뭔가 좋은 수를 찾아 낸 모양입니다.

"내일 모레 오시에 송사를 열 것이니 그 때까정 도화동에 사는 여덜살에서 열다아살까지의 머시마들은 모다 동헌마당에 모이라 캐라"

"열 다아살이라 캤심니까?"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지 못해 어리둥절한 형방이 물었습니다.

"그래, 설마 2)호패를 찬놈이 그런 장난은 안했을끼고."

요즈음처럼 전화나 인터넷이 없어도 소문은 빨랐습니다. 밤새 소문은 바람을 타고 이집저집 돌아 다녀 아침이 되자 온 동네가 술렁거렸습니다.

"머시마들은 모다 동헌마당에 모이라 카던데 도대체 무신일고?"

"와? 또 왜놈들이 쳐들어 왔다 카드나?"

"아이고 또 군포 매길랑갑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모르기에 불안해하면서도 저 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사또의 명에 진저리를 쳤습니다.

"난리 났다는 소문 몬 들었는데 모다 병정 내보내는 거 아이가?"

마을사람들은 만나면 쑤군거렸지만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사또의 명이었습니다. 사흘 뒤 남자애들은 혼자서 또는 부모들과 함께 동헌마당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김붇돌의 아들 갑진생 김막동"

"이덕만의 아들 임인생 이진수"

"최수성의 아들 신축생 최만돌"

3)육방관속이 다 모여서 들어오는 아이들의 이름과 출생연도 그리고 아버지 이름을 적고 아이들은 동헌 마당에 차례로 앉혔습니다.

오시가 되자 의관을 정제한 현감이 대청마루에 나타났습니다.

"그래 다 모있나? 빠진 아아들은 없겠제?"

"저짜 안골 사는 백정 아들은 뱅이 들어서 몬 온다꼬 기벨이 왔심니더"

"백정 아들은 안와도 개안타."

다른 때 같으면 사또의 명을 어겼다고 불호령이 내릴까봐 주저주저하는 아전에게 웬일로 사또는 너그러웠습니다. 동헌마당을 둘러 본 현감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도화동에 아아들이 이리 만터나? 모다 멧맹이고?"

"총 쉰 여섯임니더."

아이들, 부모, 구경나온 사람, 동네 조무래기들까지 동헌마당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조용히 해라 캐라"

"모다 조용히 하랍신다"

동헌마당이 잠잠해지자 사또는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큰기침을 하였습니다.

"에헴, 우리 도화동에 이렇게 건장하고 씩씩한 남아들이 만타는 거는 참말로 자랑시러븐기라. 모다 나랏님과 이 고을 수령의 은덕인기라"

여기저기서 쑤군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현감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너거들을 이리 모이라 한 거는 다름이 아이라 우리 마실에서 씨름을 젤로 잘하는 아가 눈지 그 아아를 한분 찾아볼라꼬 그란다."

"상을 줄랑가?"

"어데 씨름대회 있다 카더나?"

"소문 몬 들었는데 무신 일고?"

사람들은 술렁거렸지만 아무도 영문을 몰랐습니다. 사또는 이방에게 명했습니다.

"우리 마실에서 씨름을 젤로 잘하는 아는 앞으로 나오라 캐라"

"우리 마실에서 씨름을 젤로 잘하는 아는 앞으로 나오랍신다."

사또가 명령하고 이방이 받아서 외치고, 이방의 고함소리에 서너명의 아이들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자치기를 젤로 잘하는 선수 나오랍신다."

"돌메이를 젤로 잘 던지는 아아들 나오랍신다."

"다음 새총을 젤로 잘 쏘는 아아들 나오랍신다."

이방의 호령에 따라 열댓명의 아이들이 나왔는데 모두들 일등을 자랑하며 의기양양했습니다.

"너거들 중에서 대장은 누고? 손들어 보거라?"

현감의 말에 앞에 나온 아이들은 모두가 자기가 대장이라고 손을 들었는데 자치기를 잘한다는 갑수 만은 손을 들지 못했습니다.

"모다 대장이라, 무신 대장이 이리 만노?"

현감은 아이들을 훑어보고는 눈짓을 하자 이방이 갑수는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지금부터 누가 일등인지 내기를 한번 해보거래이. 내기는 돌메이하고 새총으로 한데이"

씨름이 아니라 돌메이하고 새총이라니, 씨름대장 병식이는 입이 부르퉁 해졌습니다.

"대장은 뭐든지 잘 할 줄 알아야 하는기라. 앞에 있는 아아들 애비나 에미도 나오라 캐라"

원님 덕에 나팔 분다더니 선수를 뽑는다하니 부모들도 우쭐해서 앞으로 나왔습니다. 책방이 동헌마당

에 작대기로 금을 긋고 열 발을 재고 다시 금을 그었습니다.

"제일 먼첨 누가 해볼래?"

"지가 해 볼람니더"

순돌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니 이름이 머꼬?"

"순돌임니더"

"순돌 아비는 이리 나오시오"

"너거 애비 맞나?"

순돌이는 아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때까지도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건지를

몰랐기에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지켜보았습니다.

책방이 첫 번째 금에 순돌이를 세우고 두 번째 금에 순돌 아비를 세웠습니다.

"책방은 자 애비 머리 우에 능금 하나를 언져 놓거라"

사또의 명에 따라 순돌 아버지의 머리 위에 얹혀진 빨갛게 잘 익은 주먹만한 사과 한 알이 햇빛에 반짝거렸습니다.

"순돌이는 돌메이나 새총 중에서 자신 있는 거로 4)너거 애비 머리 우에 있는 능금을 마치거라"

그제서야 사태를 짐작한 사람들은 신음소리를 내며 웅성거렸고 순돌이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습니

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순돌 아비는 사시나무 떨 듯 했는데 턱을 어찌나 심하게 떨던지 덕덕덕덕

이빨 부딪히는 소리가 멀리서도 들릴 지경이었습니다.

*****

1)책방 : 비장(裨將) 또는 막비(幕裨)라고도 한다. 지방 수령의 수행원으로 상당한 행세를 하였다.

제주목사의 수행원 배비장은 유명하다.

2)호패(號牌/戶牌) : 조선시대 16세 이상의 남자가 차고 다닌 패. 조선시대 호구(戶口)를 명백히 하

여 민정(民丁)의 수를 파악하고, 직업.계급을 분명히 하는 한편, 신분을 증명하기 위한 것 이었다.

3)육방관속(六房) : 중앙부서의 육조를 모방하여 군현의 행정부로 육방을 두었다. 이방, 호방, 예

방, 병방, 형방, 공방의 총칭으로 실무는 외아전(外衙前)의 이속(吏屬)인 향리가 담당하였다.

이복남 원장은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는 결코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이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원장은 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마음 밭을 가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일성은 이 원장이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장애인이 받고 있는 불이익을 현장에서 몸으로 뛰며 실천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이복남 원장은 현재 장애인 상담넷 하늘사랑가족<하사가>를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 홈페이지: http://www.988-7373.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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