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식물도감.

간간이 물한모금으로 목을 추기며 몇 시간을 뛰고 있는 봉화네 얼굴은 밤바람이 싸늘했음에도 땀으로범벅이 되었습니다. 심씨 가문 그리고 곽씨 가문에 한 맺힌 귀신이 무에 그리도 많은지 굿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습니다.

온갖 귀신이 봉화네의 몸을 빌어 한마디씩하고 갔습니다. 심지어는 곽씨 부인이 어릴 때 물에 빠져 죽은 옆집 동무까지 찾아와서 잘 먹고 간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봉화네는 겅충겅충 뜀을 뛰는데 그녀의 외씨 같은 하이얀 버선발은 사뿐사뿐 가뿐 가뿐 붉은 치마단을 날렵하게 들락거렸습니다.

그러면서 봉화네는 할머니 말씀을 전하고 옥황상제의 목소리로 명하고, 덩덩 덩더쿵 덩덩 덩더쿵 온갖귀신을 달래어 물리고, 천상을 왔다갔다, 지옥을 왔다갔다, 몇 번을 그랬는지, 드디어 봉화네가 멍석 위에 나둥그러졌고 비로소 굿판은 끝이 났습니다.

"인자 저 양반 눈 뜰란갑다."

"자슥도 주고 복도 준다 카데?"

"아이고 얄궂어라. 그 양반 눈 띠는 굿 함씨로 우째 자슥 달라카는 소리가 나왔을꼬?"

'그케, 그 기 다 조상이 시킨 기라."

"그카지만 생전에는 안 된다 안 카더나."

"생전이라 카믄 누구 생전 말이고?"

"아이구짜꼬. 양반이 눈 띤다카믄 양반댁이 목심하고 바꾼다 말 아이가"

"설마 그러키야."

"모리제. 오늘 봉화네 굿판 보니께 영락없더이만."

"그래도 그런 소리는 함부로 하는 기 아인기라?

"두고 보믄 알것제. 우리사 굿이나 보고 떡이나 묵으믄 그마이께."

그야말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는 동네사람들은 제각기 한마디씩 굿구경 값을 거들면서 떡이며 전이며 과일들을 한웅큼씩 집어서 치마폭에 사들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굿이 소엄이 있을라나. 할매가 돌봐 주신다 켓서이 기둘리 보믄 알것제."

곽씨 부인은 긴가민가하면서도 굿에 대한 한가닥 기대를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귀신을 달래어 원을 풀어 주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구신도 체민이 있으마 그냥 있지는 않을끼라."

그렇지만 굿에만 메 달릴 수는 없었습니다. 곽씨 부인은 더욱 부지런히 약을 찾아 다녔고 심학규는 지게 작대기를 더듬으며 조심조심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갔습니다.

"산딸이 눈을 밝게 하고 원기를 도둔다 하데예. 오늘은 산에 한번 가볼람니더"

곽씨 부인은 눈에 좋다는 1)산딸기를 찾으러 산으로 갔습니다. 심학규는 거의 날마다 홀로 남겨졌지만 그날 따라 산딸기를 찾으러 산으로 간다는 아내 곽씨 부인을 얘기를 듣고 나니 웬지 부아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눈 뜬다 카더이만, 복주고 명주고 자슥 준다 카더이만"

심학규는 사람일도 모르는데 귀신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는 공자님 말씀을 배운 유학자로서 애초 부터굿판을 반대했었고 믿지도 않았지만 아내가 하도 조르기에 모른 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 해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거금을 들여 굿을 했음에도 별로 효험이 있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 대명천지에 구신이 어데 있따꼬. 그 딴 굿이 무신 소용이 있을끼라꼬. 아이고 굿을 믿다이. 믿은 내가 바보 등신 축구지"

굿판을 생각하니 생각할수록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우짜다가 내가 이꼬라지가 됐을꼬"

심학규는 자신이 눈을 감아 다시는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정말로 밑기지가 않았습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눈이 번쩍 떠져서 예전처럼 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 뿐. 아무리 눈을 비비고 끔벅거려 보아도 앞은 여전히 깜깜 절벽이었습니다.

"이래 눈을 감고 평생을 우째 산다 말이고"

지난번 아내 곽씨 부인이 눈감은 것이 다행이고 벼슬 안한 것이 잘한 일이라 했지만 어디 말이나 될 법한 소립니까.

"머라꼬. 내가 눈감은 기 차라리 잘 된 일이라꼬. 그라믄 이녁이나 눈 한분 깜아 보지."

심학규는 제풀에 감정이 격해져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그것이 선녀 같은 아내 곽씨 부인을 원망하는 소리임을 뒤늦게 깨닫고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이기 누구 잘못이라고 내가 이녁을 원망하다이. 내가 미쳤제 내가 아무래도 미친 기라."

심학규는 벽에다 머리를 찧으며 울부짖었습니다.

"내가 죽어야제. 내가 죽어야 임자라도 팬히 살 끼 아이겠소. 나를 너무 원망하지 마소."

지난 번 잿물 실패로 아직은 명이 다하지 않은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으나 아침나절 그놈의 산딸기에서부터 시작된 2)분노가 바글바글 보글보글 조금씩 속을 헤집기 시작하더니 이제 분노는 저 혼자 살아 꿈틀거리며 부글부글 아니 펄펄 끓어올라 천방지축으로 날뛰며 가슴속을 마구 후비고 할퀴더니 급기야는 머리속까지 뒤집어 놓는 것 같았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한분 죽기는 마찬가진데, 다 지 복이고 지 팔잔 기라"

심학규는 죽기로 작정을 하자 칼이라도 들고 나와 가슴을 푸욱 찔러서 이 고통 이 분노를 한순간이라도 빨리 멈추게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양반이고 배운 선비인지라 차마 그리 할 수는 없었습니다.

심학규는 방문을 열고 마루를 거쳐 축담에 내려섰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 마당으로 구르고 말았습니다. 마당에 나둥그러진 심학규는 자신의 신세가 참으로 처량하여 그대로 퍼더버리고 앉아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한참을 울고 난 심학규는 더듬더듬 헛간으로 가서 새끼줄 한 토막을 찾아들고 삽짝을 나섰습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니 얼굴에 비치는 햇살이 따가웠고 그 어디쯤에 해가 있는지 희미한 빛이 보였습니다. 그 빛을 어림잡아 방향을 잡고 길을 나섰는데 한 손에는 새끼줄을 들고 또 한 손에는 작대기를 들고 두 팔을 벌려서 조심스레 저으며 더듬더듬, 돌부리에 부딪히고 풀뿌리에 걸려서 넘어지고 자빠지며 그렇게 길을 찾아드는데 어디인고 하니 심학규가 처음 눈을 다쳤던 바로 그 곳이었습니다.

산속은 적막강산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더듬더듬 두 손으로 땅바닥을 더듬어서 자신의 머리통 만한 바윗돌 하나를 찾아 안고 다시 새끼줄을 찾아 들고 겨우겨우 더듬어서 소나무 한 그루를 찾았습니다. 소나무 밑에 바윗돌을 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자신의 손목만큼이나 되는 가지 하나를 골라서 소나무 가지에 새끼줄을 묶고 남은 한쪽으로 올가미를 만들었습니다.

준비가 끝나자 심학규는 올가미에 고개를 들이밀어 목에 걸어 놓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바윗돌에서 뛰어 내리며 한 많은 이 세상에 작별을 고했습니다.

*****

1) 산딸기 : 산딸기 열매를 한방에서는 복분자(覆盆子)라고 하는데 간신(肝腎)에 좋고 허약체질을 보

하며 특히 눈을 밝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2)분노(憤怒) : ?장애인의 정신적 충격과 혼란 과정에서 두번째 단계

*장애인 자신의 문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체 장애가 발생하면 정신적으로 큰 충격과 혼란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이 충격과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생을 어둡고 우울하게 사는 반면, 어떤 이들은 이 과정을 빨리 끝내고 자신의 상태를 잘 받아 들여서 적극적이고 활기찬 생활을 하게 됩니다.

최초의 정신적인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야 적극적인 재활 치료가 시작되며, 얼마나 빨리 충격에서 벗어나느냐가 결국 환자 및 보호자에게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 1 단계 : 충격 / 부인

최초에 겪게 되는 정신적인 충격입니다. 이때는 본인에게 발생한 상황에 대해서 놀라고 부인합니다.

'아니 이럴 수가?' '아니야, 이건 아니야, 이건 꿈이지 현실이 아니야.' 이 시기에는 의사의 진단을 무시 하거나 듣지 않으려고 하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제 조금만 지나면 다시 옛날로 되돌아갈 수 있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 2 단계 : 분노

자신에게 닥친 일을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상황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화를 내거나 좌절을 하게 됩니다. '아니 왜? 하필이면 이 세상 수많은 사람 중에 내가 이런 일을....'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거야?' '그 사람이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도 나에게 이런 일이 안 생겼을 텐데, 나쁜 자식....'

이때는 자신 안에 생기는 분노를 억누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쉽게 주위사람들에게 화를 폭발하게 되지요. 특히 옆에서 도와주는 가족이나 의료진에게 화살이 돌아가기 쉽습니다.

* 3 단계 : 협상

이 시기에는 절대자와 타협을 하려고 하는 시기입니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지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신이시여, 저를 고쳐주세요. 그러면 이 남은 삶을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 '어차피 의학적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야, 신에게 매달릴 수 밖에 없어'

이때 종교적으로 매우 심취하게 되는데, 신앙을 갖는 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잘못하면 치료를 거부하고 종교적인 데 매달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주위에서 보면 한참 재활치료를 받아야할 시기에 기도원이나 절에 들어가서 중요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4 단계 : 비탄, 우울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 봐도 해결되는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현재 상황에서 도피하려고 하게 됩니다. 이때 모든 치료, 대인 관계를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귀챦아 합니다.

그래서 집안에서만 지내고 사람도 만나지 않고 전화도 하지 않으며 지내는 것이지요. '이젠 틀렸어. 다 귀찮아요.' '나 좀 그냥 혼자 있게 내버려둬요'

* 5 단계 : 수용

오랜 갈등과 방황을 끝내고 상황을 현실적으로 대하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활기차게 운동도 하고 대인관계도 새롭게 만들어가고, 앞으로의 미래의 삶을 건전하게 준비하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만 생각하는 자기연민에서 벗어나는 시기입니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과감히 받아들이는 거야.' '운명이여 나에게 오라! 나는 싸워서 이기리라'

* 국립재활병원 척수손상재활과장 이범석 /'성생활에 미치는 심리적 요인'에서 발췌

이복남 원장은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는 결코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이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원장은 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마음 밭을 가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일성은 이 원장이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장애인이 받고 있는 불이익을 현장에서 몸으로 뛰며 실천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이복남 원장은 현재 장애인 상담넷 하늘사랑가족<하사가>를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 홈페이지: http://www.988-7373.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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