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집을 지켜야 하는 명절의 비애를 간직한 장애인들의 삶은 언제쯤 종료될까? <이미지 다음커뮤니케이션>

명절이 다가오면 바깥에서는 아해들의 북쩍거림이 난리다. 무슨 소동이 일어난 것 처럼 떠들썩이다. 설날이 되면 세뱃돈 받으러 이곳 저곳을 무리지어 다니고.

추석이 되면 송편 얻으러 뛰어다니는 아해들의 모습은 바로 천국의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많은 사람들(여기서는 친척들)이 집으로 찾아온다. 인사하느라고. 나도 그들과 인사한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도 친척들을 찾아간다. 그리고 텅빈 우리집. 나는 집을 지킨다.

"계윤아 집 잘 지켜라"

"알았어!"

퉁명스럽게 뱉어진 나의 말은 공중에 솟아 올라 산산히 흩어지고 만다. 그렇게 쏟아진 그 말, 사실은 나 자신 조차 듣기 싫은 말이다. 가끔 생각한다. 방 한 구석 쳐박혀진 채, 강도가 들어오면 이 부실한 몸으로 어떻게 싸우라고. 내가 과연 이 집을 지킬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면서 집을 지킨다.

TV도 없던 그 시절 나는 혼자 노는 법을 강구해냈다. 조그만 정구공을 가지고 벽에다 부딪치도록 손바닥으로 공을 쳐낸다. 오른손과 왼손의 대결! 발을 못쓰는 나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놀이이다. 오늘에 와서 보니 멀쩡한 사람들이 "스쿼시"라는 게임으로 놀더구만. 사실 이 게임의 원조는 나 이계윤인데….

명절만되면 새로운 게임을 상상한다. 조용한 방 구석에서 홀로 고독을 씹는 것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집을 지키는 아이. 바로 그것이 나였다. 왜 나는 많은 아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놀던 그 날에 방을 홀로 지켜야하는가?

나의 형제들도 그것을 나의 숙명으로 간주했다. 나의 부모들도 그것을 나의 사명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것을 절망적인 의무로 받아들였다. 저항할 수 없는 나의 의무. 명절의 고독. 차라리 이 정도는 다행이리라.왜냐하면 우리집은 방 한칸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할 정도의 가난한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방이 두칸 이상 되었다면 손님이 왔을 때 옆 방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10여년 전 전화가 왔다.

"때르릉!"

"누구세요?"

"저에게 한 번 찾아와 주세요!"

"어디 사시는데요?"

"저는 ....에 삽니다."

집주소를 받아들고 그 집을 찾아갔다. 초인종을 누르고 전화를 했던 그 친구 이름을 댔다. 그러자 스피커 폰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런 사람 안 살아요!" 이것이었다. 대궐 같이 큰 집이라서 이 친구가 살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착찹했다. 다시 전화가 울렸다.

"왜 안오셨어요?"

나는 무슨 쑈를 하고 있는가 으아했다. 다시금 확인했다.

"정말 그 집에 살아요?"

재차, 삼차 방문을 해서야 간신히 그 집 안에서 그 친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궐 같은 집에서 외롭게 바깥구경 한 번 못하고 사는 장애 친구의 삶. 얼마나 기가막혔는지 모른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장애인들은 이렇게 지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장애인에게는 유사한 명절풍스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한편에서는 장애인 수당, 장애인 연금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새로운 단어들이다. 참으로 낯설은 단어들이다. 그만큰 세상은 변했다. 그러나 여전히 명절은 장애인에게는 외로움이 그득히 몰려오는 날이다.

"집 잘 지켜라."

부실한 몸으로 오늘도 집을 지켜야 하는 명절의 비애를 간직한 장애인들의 삶. 언제쯤 종료될까?

"네, 집 잘 지켰어요." 이는 비명이다.

이계윤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과 사회사업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밀알선교단과 세계밀알연합회에서 장애인선교현장경험을 가졌고 장애아전담보육시설 혜림어린이집 원장과 전국장애아보육시설협의회장으로 장애아보육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예수와 장애인, 장애인선교의 이론과 실제, 이삭에서 헨델까지, 재활복지실천의 이론과 실제, 재활복지실천프로그램의 실제, 장애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펴내어 재활복지실천으로 통한 선교에 이론적 작업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이 칼럼난을 통하여 재활복지선교와 장애아 보육 그리고 장애인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자와 함께 세상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