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은 작 - 초원. ⓒ정재은

대관령하면 떠오르는 푸른 초원은 생각만 해도 아련하고 싱그럽다푸른 초장 위에 누워 뭉게구름 바라보는 하이디를 생각하면 마음마저 초록빛이 될 것만 같다.

대관령 전경 - 푸른 초장위의 변덕스러운 구름과 햇살이 숨박꼭질한다. ⓒ정재은

영동고속도로를 넘나들다보면 민둥산같이 생긴 낮은 산봉우리가 겹겹이 펼쳐지는 초원이 눈에 띈다. 나는 이곳이 대관령일거란 생각을 해보지도 않은 바보였다. 그러나 더 바보스러웠던 대관령의 추억이 떠오른다. 무작정 대관령을 향했으나 구제역 파동으로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는 필자는 다시 대관령 목장 입성(入城)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 사이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곳은 푸른 초원이기 전에 이미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세로 타고 있었다. 어쨌거나 대관령 목장은 대중 앞에 서기 위해 새롭게 단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관령 목장은 오대산 국립공원의 동쪽 경계를 이루는 소황병산(1,400m) 정상에서 완만한 경사로 흘러내린 구릉지에 조성되었는데 그 넓이는 무려 600만 평이나 된다.

햇살아래 빛나는 길 - 저길들이 합해지면 무려 20 km나 된다. ⓒ정재은

골짝에 있는 목장이니 만큼 잘 포장된 길을 기대하기는 어려운데 비포장도로는 목장입구에서부터 바로 시작되어 가는 이를 당황케 한다. 삼양목장으로 가는 길은 좁은 마을 도로와 비포장도로로 이어져 있었는데 농부들의 정성으로 가득한 정다운 당근, 감자밭, 들꽃과 어우러진 동네어귀를 따라가다 보면 길은 목장입구에 이른다. 목장의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관광코스는 승용차를 이용하게끔 순환도로가 조성되어 있다.순환도로는 20여 km가 되고 연장도로의 합이 100km를 넘는다니 정코스로 경치 구경하며 사진을 찍다 보면 대략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차를 몰고 잠깐이면 ‘가을동화 촬영지’라 하여 곳곳의 이정표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준서와 은서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갑자기 애잔하게 밀려오고 나무가 되겠다던 은서의 나무도 시야에 들어온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관광객들을 뒤로 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면 1단지 축사를 지나 경사가조금씩 급해지면서 본격적인 고원지대가 시작된다. 포장되지 않은 길은 진짜 전원같아 반갑기만 하고 길 옆으로는 무릎 정도까지 오는 초원이 펼쳐진다. 1단지에서 5분쯤 달려 올라가면 ‘중동’이란 팻말이 있는 곳이 초원 풍광이 특히 뛰어나다. 차를 세우고 풀밭에 우뚝 서니 푸른 초장은 하늘 밑까지 차고도 모자란 듯 구름 밑에서 아른거린다.중동을 지나 목장 북동쪽 ‘동해전망대’란 팻말이 붙은 곳에 올라서면 초지는 물론 강릉과 동해 바다까지 바라볼 수 있어 비로소 이곳이 바로 태백산맥의 줄기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대관령에서 동해를 관망하고 차를 돌리니 2단지 분만동이 눈에 띤다. 이곳에 와서야 처음 소를 구경한다. 사실 소들을 방목한다고 하나 600만 평의 너른 대지에 퍼져있다보니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때문에 초원 위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만을 상상하고 온 필자는 이제야 임자 만난 듯 반갑기 그지없다.

ⓒ정재은

2단지 축사 앞에서 산봉우리 아래의 계곡을 따라 난 급경사길을 달려 오르면 정상인 소황병산이 보인다. 대관령 고개가 해발 832m인데 그보다 600m 더 높은 곳이기 때문에 남한에서 승용차로 오르내릴 수 있는 최고지점이라 하는데 덕분에 한여름에도 추위를 느낄만큼 시원하다.소황병산 정상 동쪽 끝쪽 전망대에 서면, 너무 넓어 눈이 저절로 가물가물 감기는 광대한 초지 풍광이 발아래 펼쳐진다. 푸른 초지와 더불어 대관령의 명풍경 중의 하나는 구름과 바람이다. 고지(高地)의 초지인지라 바람과 함께 불어온 구름은 앞을 분간하지도 못하고 온몸을 휘감더니 어느새 구름 사이로 햇살과 함께 초원이 언뜻언뜻 보인다. 한여름의 초원에서 맛보는 시원함이란 눈앞에 펼쳐지는 신록의 초원뿐 아니라 온몸으로 느껴지는 바람과 구름의 감촉이리라. 수십 번도 더 변하는 대자연의 변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 그리고 하늘 아래, 초원 위에 인간의 초라함을 숙지(熟知)하게 되는 곳. 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이 동화처럼 아련한 곳, 이곳이 대관령 목장이다.

아련히 빛나는 저 길은 어디까지일까? ⓒ정재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경기지사에 재직 중이다. 틈틈이 다녀오는 여행을 통해 공단 월간지인 장애인과 일터에 ‘함께 떠나는 여행’ 코너를 7년여 동안 연재해 왔다. 여행은 그 자체를 즐기는 아름답고 역동적인 심리활동이다. 여행을 통해서 아름답고 새로운 것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우리네 산하의 아름다움을 접하는 기쁨을 갖는다. 특히 자연은 심미적(審美的) 효과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정화시켜 주는 심미적(心美的) 혜택을 주고 있다. 덕분에 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장애라는 것을 잠시 접고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받아온 자연의 많은 혜택과 우리네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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