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아련하지만 한 장면은 아직도 또렷하다. 1987년 6월 29일 영등포 로터리, 경찰의 곤봉과 최루탄에 기침 쿨럭이며 도망 다니다가 어느 순간……. 경찰과 시위대가 무방비로 도로에 철퍼덕 주저앉았던 그 광경. 시간이 멈춰버린, 세상 모두가 어디론가 사라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텅 빈 모습 그 자체였다.

어느 한 순간

시위대도 경찰도 무거운 어깨 내려놓고

체류탄가스에 쿨럭이던 무더위만

서성이던 영등포 로터리

위대하다 위대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길거리, 거리

돌멩이처럼 뒹굴던 외침과 각목처럼

부러진 청춘들이

주섬주섬 다시 일어나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우던 영등포 로터리

그 때 아련한 기억

- 김철환, 「기억」 부분

그때 나는 시골에서 갓 서울로 올라와 지하철을 타는 법조차 제대로 모르던 촌뜨기였다. 하지만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이한열열사의 죽음은 정치적인 현실에 문외한이었던 나를 낯선 서울의 길거리로 밀어넣었다. 무척 더웠던 것으로 기억되던 6월, 그때 나는 정치적인 상황도 핏발선 외침들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몇 차례 이 대열에 참여를 했다. 그때,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던 6∙10항쟁은 민중의 힘으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신군부의 독재정권을 끌어내리고 동토의 땅을 뚫고 움츠렸던 민주주의의 싹을 밀어 올렸다. 1987년 6월 29일, 그때 나는 영등포 로터리에 있었다. 그리고 21년이 지난 지금 2008년 6월 10일 저녁 7시, 나는 세종로 대로변에 있다.

6월 10일, 광화문을 가득 메운 민중은 종로 어귀를, 청계천을, 태평로를 가득 매우고 남대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민중은 도도히 흐르는 거대한 물 그 자체였다. 또한 거리마다 밝혀진 촛불은 발에 밟히고 채이는 민중이라는 땅에 박힌 수많은 별빛 같았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은하수와 초롱초롱한 별들은 이미 지워버린 하늘이기를(이명박 정권을 하늘로 비유한 것이 아닌 지도자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 뿐이다) 포기한 이 정권에, 오히려 땅에 박힌 별빛이 어둔 하늘을 비추는 정권에 대한 질타 그 자체였다.

세종로를 중심으로 대로를 가득 메운 촛불 물결. ⓒ김철환

어둠 물컹 배인 세종로

차가운 길바닥에 하나, 둘 박히는 붉은 별

거대한 물결이 되어 도도히 흐르고

광화문으로, 종로통으로, 청계천으로, 서대문으로……

골목골목 불빛은 흐르고 흘러

별빛 지운 하늘 대한민국의 하늘을

하나의 횃불로 활활 밝히고

- 김철환, 「촛불」 부분

한 달을 넘기고 있는 촛불문화제의 시작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제는 쇠고기 수입의 문제를 넘어서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인터넷과 방송 등 언론을 장악하려는 음모, 공공영역을 사유화 하려는 정책을 비판하고 이명박 퇴진까지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점점 다양하고 거칠어가는 구호와 달리 비폭력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세대를 뛰어넘는 참여와 온라인에서의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면서 진정한 민주주의,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는 찬사들도 이어지고 있다. 이미 낡을 대로 낡아버린 21년 전 쟁취했던 민주주의라는 상자에 민중들이 참다운 민주주의의 내용물을 만들고, 채워 넣고 있다.

이 거대한 항쟁의 대열에 지난 6월 10일 장애인단체와 장애인들도 많이 가세했다. 한 달 넘게 진행된 촛불문화제에서 간혹 장애인들이 참여를 했지만 조직적으로, 많은 장애대중이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비장애인들이 피와 땀으로 만들어 놓은 민주주의의 단 열매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따먹기만 한다는 것은 얌체 같지 않는가, 이런 의미에서 늦은 감이 있지만 장애인들이나 장애인단체들이 공식적으로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어린이들. ⓒ김철환

서대문 방향 차로 중앙선에 시민들이 놓은 촛불들. ⓒ김철환

하지만 아직도 많은 장애인단체와 장애인들이 촛불문화제 현장에 나오지 않고 있다. 촛불문화제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로 편의시설 문제도 있겠고, 이동에 대한 어려움도 있겠고, 정보전달, 의사소통에 대한 문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촛불문화제에 참여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서도 현실적인 한계로 장애인 편의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미안해하고 있다. 현재는 일부 촛불문화제에 수화통역만 지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돌아가서, 촛불문화제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장애인단체들이 정권에 대해 싫은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처사이거나 눈앞에 이익만을 쫓아가는 행위라고 보는 나의 시각은 잘못된 것일까?

이제는 장애인단체들도 적극적으로 촛불을 들어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의 경우 30개월 이상, 위험물질이 포함된 소의 부산물을 수입할 경우(학교나 군대에 질 낮은 고기나 부산물이 공급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낮기 때문에) 최대의 피해자는 장애인 등 경제적 약자가 될 것이다. 돈이 없기 때문에 질 낮은 고기를 먹어야 하고, 질 낮은 고기의 부산물로 가공한 식품을 사먹어야 한다.

또한 촛불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문제만이 아니다. 추진을 준비 중인 공공부분의 민영화와 인터넷과 방송 등 언론을 장악하려는 정부의 정책이나 조·중·동 보수 언론의 방송시장 진입과 언론독점 음모, KBS2, MBC등 방송의 민영화 추진 등도 장애인들에게 좋지 못한 결과가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뿐이겠는가? ‘경제제일’ 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될 각종 정책은 자기 합리화를 위하여 장애인에게 달콤함을 던져주겠지만 결국 장애인의 목소리를 틀어쥐어 장애인들의 권리를 억압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한 시민이 경찰차에 올라가 국화꽃을 꽂고 있다. ⓒ김철환

장애인단체나 장애인들이 촛불을 들어야 할 이유가 또 있다. 장애인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 촛불이 필요하다. 그리고 변화하는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장애인단체나 장애인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장애인계 내부의 민주화를 위하여 촛불을 들어야 한다. 경직된 상하관계, 아직도 존재할지 모를 약육강식의 구조, 장애민중을 착취하거나 억압하는 장애인계 내부의 문제에 맞서기 위하여 촛불을 들어야 한다.

21년 전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의 아련한 기억을 되새기며 오늘도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곳으로 가려한다. 그리고 주저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장애인단체에 이제는 용기를 내어 촛불을 들라고 권유하고 싶다. 앞으로 13일에는 故 효순·미선 양을 기리기 위하여, 14일에는 故 이병렬씨의 자례식으로, 15일에는 6·15 남북선언 8주년을 기리기 위하여, 광우병대책위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재협상을 요구한 20일을 전후하여 커다란 촛불문화제가 열릴 가능성이 많다.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 방어벽으로 설치한 콘테니어에 불여 놓은 구호가 적힌 종이 사이로 장미꽃이 꽂혀 있다. ⓒ김철환

매일매일 촛불문화제에 나오기는 어렵지만 많은 민중이 모이는 날만이라도 장애인들이 촛불문화제 현장에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의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심판하고, 장애인을 억압하는 외적인 상황과 혹여 있을지 모를 비민주적인 장애인계 내부의 모순의 껍데기를 걷어내기 위하여 많은 장애 민중이 촛불을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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